거의 모든 것이 변화했던 나의 2020년을 돌아보며
모두에게 여러가지 의미로 특별했던 2020년이 저물었습니다. 이제 하룻밤 뒤면 우리는 2021년 새 해를 맞이하게 되겠지요.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로 세상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었던 2020년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제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한 해이기도 해서 더욱 특별합니다.
짧게라도 올 해의 회고는 하고 가야할 것 같아서 정리해보는 나의 2020년.
'노는 판'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2020년은 2019년을 마무리했던 큰 결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 대학생 때 시작해서 약 12년간 운영했던 광고회사를 2019년 12월로 마무리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대학생 시절에 시작해서 서른 여섯이 될 때까지 운영했던 회사이기에 제가 살아오던 세상의 전부이기도 했고, 제 자신이기도 했던 회사였습니다.
회사를 접겠다고 결정한 것은 '노는 판'을 바꿔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작은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분명 짜릿한 경험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면서 제가 하는 회사에서 보여지는 분명한 한계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도달하고 싶은 목표는 저 위에 있는데, 지금 제가 이 회사로 할 수 있는 수준은 그에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습니다. 구성원들은 힘들어 했고, 저는 저대로 불만이 쌓이는 상황이었죠.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데려다가 이렇게 힘든 시간들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큰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고, 구성원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제가 대표를 계속 하는게 제가 가장 원하는 바도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동료들과 치열하게 일하고 싶었는데, 지금 제 능력과 조직으로는 한계라는게 너무나 명확했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접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동료, 조직을 향해 제가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진짜 제가 지향하는 방향과 실력을 가진 곳에 가면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제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했거든요. 그렇게 2019년을 마감하고 2020년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가족들과 특별한 한 달을 보냈습니다.
회사를 정리하고 가장 먼저 했던 것은 그간 소흘했던 가족들과 한 달 살기 여행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목적지는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 영어권이기도 했고 다리 하나만 건너면 싱가포르여서 두 나라를 왕복하기도 편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어학원에 다녀와서 레고랜드에 출근하듯 다녔고, 아내와 저는 매일을 유유자적 한가롭게 보냈습니다. 가끔은 버스를 타고 말라카에 다녀오기도, 열차를 타고 싱가포르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정말 꿈같은 한달이었습니다.
다행히 돌아올 때 즈음 코로나가 터져서 여행에는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순간들입니다.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네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동안은 너무 몸이 근질거렸습니다.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성격이다보니 빨리 돌아와서 새 일을 시작하고 싶었죠. 떠나기 전에 2월 초부터 나름 입지가 탄탄한 중견 광고회사에 본부장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던 터라 빨리 돌아가 재밌는 일들을 많이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광고회사는 7개월을 다녔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자리였기에 회사에서도 좋은 대우를 해주셨고, 대표님도 저를 좋게 봐주셔서 많은 일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더 능력있는 동료들과 더 큰 광고주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일 자체가 크게 어렵진 않았죠. 그러나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몇가지 것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통 광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은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자주 야근했고 가끔 새벽퇴근을 하기도 했지만 배우는 것이 많았죠. 그러나 광고 아이디어를 내고 캠페인을 제안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일의 형태가 그동안 제가 원하고 하고 싶었던 일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제가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은 당황스럽더군요.
그러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했습니다. 저는 광고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조직이 어떤 곳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광고회사는 특성상 클라이언트 위주로 움직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각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기보다 각 광고주 업무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죠. 제가 회사를 접었던 이유 중 하나가 조직 문화와 리더십 때문이었기에 갈수록 파편화되는 조직 구성은 '원팀'을 중요시하는 제 지향점과 차이가 크다는 점을 점점 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반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구성원들이 충분한 열정과 동기부여를 갖고 한 팀으로 성과를 내는 조직'이 제겐 필요했습니다. 그냥 버티면서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불과 7개월만에, 제가 정말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회사를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뛰어난 동료들과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여파까지 생각해보니 제가 가고 싶은 회사는 크게 두가지 기준에 부합하는 곳이었습니다. 첫째, 사람이 있는한 절대 없어질 산업이 아닌 '관혼상제 의식주' 카테고리에 속한다. 둘째, 코로나 속에서도 성장하는 이커머스 기업이어야 한다. 이 두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새로운 회사를 고민하게 되었고, 운 좋게도 커머스와 앱 경험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가장 핫한 패션테크 이커머스 기업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와서 보니 가장 좋은 것은 '동료'였습니다. 커머스 기업이다보니 기술, 영업, 운영, 상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같이 리더급 이상임에도 부서 이기주의나 사일로 없이 겸손하고 적극적이며 열정적인 분들이었습니다. '와 이런게 인재밀도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훌륭한 동료들 덕분에 이커머스, 패션 문외한인 제가 회사의 일원으로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매일 치열하게 고민하며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잇습니다.
더욱 성장하고 싶어졌습니다
구성원들의 마인드도 더 프로페셔널했습니다. 더 좋은 MD가 되기 위해, 더 멋진 리더가 되기 위해 다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당장의 경험은 적을지언정 저보다 연차가 적은 친구들조차도 자신의 일에 진심인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동료들과 함께라면 더욱 성장하고 싶어졌습니다.
매일, 시간마다 찍히는 거래액이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수치를 올려나가는 느낌이, 성장을 만들어 나가는 느낌이 제가 추구하는 끊임없는 성장의 마음과 비슷해서 좋았습니다. 안팎으로 쉽지 않았던 한 해의 마무리가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가는 느낌입니다.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가진 것도, 한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긴 했지만 원하는 분야에서 원하는 일을 하게 되어 감사한 2020년이었습니다. 환경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기에, 스스로 원하는 것을 계속 묻고 그 쪽을 향해 나아갔기에 쉽진 않았지만 좀 더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