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다른 인간을 판단할 수 있을까
처음 시작부터 묘사되는 인물은 인간이라고 보기엔 이상하리만치 특이한 인물이었다.
어찌 보면 주인공의 어린 시절의 ‘요조’에 대한 묘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법한 일들이다. 내면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 사이 속에서 그리고 현실에서 겪는 것과 책에서 펼쳐지는 현실과 이상의 고리 간에서 자신이 어느 경계에 있는지 고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상상 속 세계와 현실 속 자신을 매치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런 고민을 해본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다른 생명체가 아닐까. 잠시 인간의 몸을 빌리고 있지만 영혼은 어디선가 낯선 곳에서 왔기에 인간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작가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일생을 바라보는 것 같은 소설 <인간실격> 그는 최초 동반 자살했다가 혼자 살아남았던 경험, 정신병원에 갇혔다 완치되어 나온 후 이 소설의 집필을 완성한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작가의 이야기인 줄 몰랐다. 본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생생한 일인칭 시점의 심경변화와 생각을 글로 남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는데 다 읽고 작가 연보를 보고 나니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끝까지 읽기 전에는 설마 <인간 실격>까지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면서 선택한 수많은 선택의 결과는 일반인과 거리가 멀었고, 소위 ‘인간답게’라는 말의 본질에서 너무도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답게’를 규정짓고 정의할 수 있는가. 그가 살았던 삶 또한 한 인간의 선택으로 보였던 결과들이고 그것이 평범한 인간에게서 보일 수 없는 결과를 만들었다.
한 소년의 어린 시절 그는 상처 받은 영혼이었다.
그 당시 이미 저는 하녀와 머슴한테서 서글픈 일을 배웠고 순결을 잃었습니다. 어린아이한테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 가운데서도 가장 추악하고 천박하고 잔인한 범죄라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참았습니다. 그것으로 또 한 가지 인간의 특질을 알게 됐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힘없이 웃었습니다. 만일 제가 진실을 말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었다면 당당하게 그들의 범죄를 아버지 어머니한테 일러바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인간 실격>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429283
사람들이 앞과 뒤가 다른 행동에 그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는 인간과 자신이 다른 존재라고 선을 그으며 그들을 이해하라고 하기보다는 신경을 쓰지 않는 쪽을 택한다.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저는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 <인간 실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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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는 그나마 집으로부터의 서포트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으나 ‘평범한 인간’이기를 거부한 그의 성격 때문에 그는 일반적으로 돈을 벌고 살아가는 환경을 잘 구축하지 못한다. 그런 연유로 그가 가장 경멸하던 여자들에게 빌붙어 사는 존재로 전락하면서 그마저 있던 자존감마저 추락하고 그는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혼자만 살아남는다.
자살을 시도했으나 죽지조차 못한 그는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의 꼴을 하고 살다가 또 다른 여자 ‘요시코’를 만나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가장 순수하게 여겼던 요시코가 겁탈당하는 것을 본 그는 순수함이 더럽혀진 것이 자기 탓인지 그녀탓인지 분간을 못하며 순수함이 더럽혀졌다는 사실에 집착한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요시코가 더럽혀졌다는 사실보다도 요시코의 신뢰가 더럽혀졌다는 사실이 그 뒤에도 오래오래, 저한테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큰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저처럼 비루하게 쭈뼛쭈뼛 남의 안색만 살피고 남을 믿는 능력에 금이 가버린 자에게 요시코의 순결무구한 신뢰심은 그야말로 아오바 폭포처럼 상큼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룻밤 사이에 누런 오수로 변해 버렸습니다. 보세요. 요시코는 그날 밤부터 제 일비일소에조차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 <인간 실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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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면, 요조가 인간 실격이라는 사실에 누구나 동의를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진다. 그의 생애에서 내리는 결정과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감정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작가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그가 안쓰럽고 토닥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그의 모습 중 일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다자이 오사무는 애인이었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동반자살로 인생을 마감한다.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둔 채. 세상과 작별한 이유는 소설을 더 이상 쓰기 싫어졌기 때문이라고 유서를 남겼다.
쇼와시대, 금융공황, 군부독재, 만주사변과 2차 세계대전 발발 등의 경제 사회가 불안했던 시대적 배경에서 태어났던 작가는 어쩌면 그 불안한 사회적 배경을 자신의 일생으로 받아들이며 감당해내고자 했던 것이 아닐는지.
슬프고 안타까운 작가의 일생과 소설이지만 인간이라는 본질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게 되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