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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ra the Twinkling Mar 10. 2017

사지말고 입양하세요. 십사

응석받이 어깨냥의 정석. (심장 폭격 주의)

똥똥이를 데리러 H양이 와있는 동안 신기하게도, 정말 신기하게도 땅콩은 나에게 안겨있었고 똥똥이는 H양에게 안겨있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똥똥이는 사람에게 안겨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말이지. 마치 뭔가 눈치를 챈 듯이... 내 솔직한 심정이 그랬거든. 말썽쟁이 똥똥이가 땅콩보다 덜 이쁘다고... 그 아인 왠지 알았을 것 같아. 조금 미안하고 조금 짠하고 떠나는 아이를 행복한 기분으로 보내주지 못했던데 대한 약간의 죄책감과 약간의 동정,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저 작고 불쌍한 아이 하나 품어주지 못하는 내 작은 그릇에 대한 반성...

난, 참, 속도 좁은 사람이구나. 똥똥아, 잘 갔어. 오래 있지도 않았는데도 자그마한 너 하나 마음으로 온전히 품어주지 못한 사람에게 오히려 네가 많은 깨달음을 주고 가는구나.


H양이 가게로 데려가서 보내 준 똥똥이의 사진.

엄마 사료그릇이 너무 커서.. 가 아니라 너무나 작은 똥똥이어서 엄마의 밥그릇이 세숫대야만큼 큰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고.

아담하고 작은 H양 무릎 위에서 조차도 작디작게 웅크리고 있는 똥똥이. 가자마자 엄마 냥이가 알아보지 못하고 하악질과 솜방망이 구타를 선사하셔서 ㅠㅠ H양도 마음이 짠해서 하루 종일 끌어안고 있었다더라고.

혼자 잠든 모습도 외로워 보여 왠지 쳐다보고 있는데 마음이 더 짠해지네 ㅠㅠ

괜히 보냈는가 하는 마음이 너무나 날 괴롭혀서 다시 데려와야 하는가 좌불안석


그럼 땅콩은 잘 있는가 하면 그것 역시 아닌걸.

땅콩도 아깽이답게 하루 종일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며 온갖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다가 지치면 제 형제와 찰싹 달라붙어 몸싸움과 발톱질을 하며 체온을 나누며 잠이 들었었는데...

똥똥이가 사라진 하루 종일 내 어깨에 달라붙어서 마치 원래 거기서 서식했었던 것 마냥...

어깨 껌딱지. 어깨 서식 냥이. 짠해도 귀여워 ㅠㅠ 색색거리며 졸고 있어.


어쩜 이렇게 귀엽게도 어깨에 걸쳐져서 엉덩이는 내가 당연히 받쳐줄 거라 생각하고 잠이 들어버렸어;;



발밑에서 찡얼거리길래 안아 들고서 한 손으로 일을 하다가 보니, 안긴 채로 분명히 불편한 자세인데도 불구하고 꼼짝 안 하고 색색거리기만 하다가 조용해서 보니 그대로 또 잠들어버렸어.



깨 발랄 똥꼬 발랄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어리광과 응석, 생떼만이... ㄱ-;

품에 안겨서 잠투정을 부리며 옹알옹알... 졸리면 안아달라고 발밑에서 옹알옹알 발 깨물기 시전

엉성하게 앉았다 떨어질뻔해서 한 손으로 잡았지만 정작 땅콩 놈은 태평하심. 마치 잡아줄 줄 알았다는 듯이...

무릎 위에서 이리저리 몸부림을 쳐대면서 요란하게도 주무심



하루 이틀 지나니 똥똥이도 이제 엄마한테 안 맞는다고 H양이 보내준 사진ㅎㅎㅎ

엄마가 워낙에 질투쟁이라서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제법 엄마와 딸 같아 보여 마음이 놓이네

잘 때도 쭉 뻗고 자는 게 왠지 매번 그랬던 건 아닐 테지만 서도 쪼그리고 자던 그 전과 비교도 되고 심적으로 편해진 것 같고 느긋해진 것 같아 보여서 괜히 흐뭇해.

이 사진들을 보는 자체 만으로도 누구에게나 흐뭇한 엄마 미소와 따뜻함을 주기만 할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 '그래 잘 보낸 거야, 나 보단 엄마랑 둘인 게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더 좋은 거야'라는 자기 합리화와 안도감도 선사해줬던 사진들


자, 이제 어리광이 늘었지만 아가이고 귀여우니까 용서하고, 심리적으로도 안정되었고 묽은 변도 어느덧 잡혔는데 이 아가들을 어디로 누구에게 보내야 할까? 누구하고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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