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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exandra the Twinkling Mar 05. 2017

사지말고 입양하세요. 십삼

함께 사는 마지막 날

드디어 마지막 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꼭 끌어안고 낮잠을 잔 마지막 날의 여유롭던 오후


마지막 날에 둘이서 같이 찍은 사진은 이상하게 요거 단 한 장뿐이네...


아무 생각 없던 무지한 임보 주인 덕에  좋지 않은 국산사료를 먹는 바람에 둘 다 심하게 설사를 하기 시작했었고, 형제들보다 유독 약하고 엄마의 보살핌을 거의 받지 못했던 무녀리인 똥똥이는 그 덕에 3주 차 때 매일 엄청난 양의 유산균과 비타민을 먹었고 지금은 오히려 장 상태가 덜 민감하고 튼튼한 거 있지!! 형제들 중 범백 증상이 가장 심각했었고 피 점액질을 줄줄 쏟아내던 땅콩은 허기와 싸우느라, 엄마의 빈 젖을 과감히 버리느라 엄마젖도 가장 적게 먹었고, 또 사람 음식에 엄청난 식탐을 보였다는 이유로 우린 5형제들 중 땅콩 돌보기를 제일 소홀히 했었던 거야ㅠㅠ... 유산균이나 비타민도 먹이는 둥 마는 둥 했었고, 알아서 닭고기를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돌봐줄 필요 없다 생각했고. 그 결과, 지금 땅콩은 후유증이 가장 심하고 위장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 흑흑. 미안해라... 장 상태도 엄청나게 민감한지라 안 좋은 사료의 영향은 어마어마했지. 하루에 변을 6-7번씩 보며 그것도 매번 물똥을 발사해댔어.ㅠㅠ


또한 아무리 상태가 좋은 똥똥이라 할지라도 꾸준한 성장을 보이다가 사료로 인한 설사 때문인지 성장 정체기를 보이며 살짝 모질 상태도 좋지 않았던 거야. 왜 데리고 있는 동안 잘 자라주고 별일 없다가 막바지에 와서 이러는 거지? 너무 속상한데... H양도 아가들 상태 때문에 절절매면서 나보다 아가들에 대해선 더더욱 소심하기 때문에 아가들 분양을 보류하기로 했고 똥똥이를 엄마와 같이 당분간 놔둬야겠다고 결정했어. 엄마가 그루밍도 해주고 정서적으로 안정도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라고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약 800g까지 나가던 아이가 설사 때문에 700g대로 몸무게도 줄었고 사진에서도 보듯이 팔다리가 여리여리하고 땅콩에게 약간 치이는 느낌도 있었고, 사이즈도 여전히 불안 불안했던 거지.


곧X 보임 주의. 마냥 긔엽기만 한 궁디 씰룩씰룩 땅콩과 땅콩에게 치이는 여리여리한 똥똥이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가 쉽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아가들이라서 우리 둘은 엄청나게 고민을 했지.

당분간 똥똥이는 엄마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고, 땅콩은......... 땅콩은?

땅콩까지 보내면 또 혹시 모르는 단체 감염의 우려도 없지 않고, H양에게도 버겁기도 할 것이고. 또한 비타민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고, 걸핏하면 설사를 해대는 아가의 상태 때문에 엄청 소심한 H양에게 땅콩을 맡기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어. 설사 한번 할 때마다 부들부들하면서 카톡이 날아오고 짐작되는 증상 수가지를 꼽으며 예측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나열하는데 매번 진정시킬 것이 엄두가 안 났지ㅋㅋㅋㅋ 


한 번은 아이에게 붉은색 상처와 땜빵이 생긴 것을 보고 곰팡이성 세균일 거라고 했다가,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럴 것 같다고 했다가, 다른 냥이가 심하게 깨물거나 심하게 그루밍을 한 결과일 것이라고 했다가, 범백 치료 때 사용한 항생제의 결과라고 했다가, 결국은 홀리스틱급 사료에 'grain free'라는 문구가 붙어있지 않다면서 분명히 곡물 알레르기일 거라고 혼자 결정을 내리더니, 품절사태가 진행되는 와중에 그 비싸고 어렵게 구한 홀리스틱급 사료를 모조리 길냥이에게 줘버렸더라는 일화가...ㅎㅎㅎ;;;


여하튼, 결론은 땅콩은 우리 집에서 좀 더 데리고 있기로 했어.

이 두 냥이가 이렇게 꼭 붙어서 살다가 헤어지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ㅠㅠ 헤어져도 이 때를 과연 기억할수 있을까?


땅콩도 민감장 때문에 당분간 유산균과 효모와 레시틴 등 보조제 급여를 멈출 수가 없고 그런 제품들을 계속 급여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좀 더 땅콩의 하루 종일 계속되는 설사에도 무던해 할 수 있고(설사만으로도 요즘엔 빨리 동물병원에 가볼 것을 권하는 분위기니까), 그리고 이 장트라볼타군의 방귀 냄새를 견뎌 줄 사람을 찾아야 하니까ㅋ

그 냄새는 정말... 계란 한판을 다 먹고 과식한 냄새라고나 할까?? 실제로도 식탐을 이기지못해 과식을 하니까...ㅠㅠ 민감한 장에 식탐으로 인한 과식까지 더해져서 정말 그 냄새는... 이렇게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핑크 핑크 한 코와 주댕이로 계집애같이 이쁘게 생기고 자그마하니 가냘프게 생긴 땅콩의 몸에서 나왔을 거라곤 절대 믿을 수 없는ㅎㅎㅎ;;;


어찌 됐건 설사로 인해 아가들의 분양은 미뤄졌고, 똥똥이는 몸무게를 늘리고 살을 찌우는 것이, 땅콩은 살도 찌우고 설사를 잡는 것이 급선무였지.


똥똥이 잘가. 비록 땅콩보다 더 이뻐해주진 못했지만, 매일 품에 안고 잔건 기억해주겠니?


땅콩을 더 이뻐한 건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렇다고 똥똥이 너를 안 이뻐한 건 절대 아니었어. 매일 엄마 대신이라고 품에 안고 잔 걸 기억해주겠니?ㅎㅎ


잘 가 똥똥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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