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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08. 2024

살아남을 수 있을까. #1

11년간의 공무원생활중에 교육청에서 근무한 기간은 고작 1년 2개월이었다. 그것도 행정국이 아닌 교육국에서 근무했었고, 첫째아이라는 축복덕분에 조기종료 되었던 그 시절. 돌이켜보면 길지도 않았던 그 기간도 행복하지는 않았다. 입덧이 심했고, 허기를 참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밥을 혼자 먹어야 했던 나날들이 이어졌고 감정이 미친년 널뛰듯이 오락가락했는데도 단독 관사를 이용할 수 없었다. 우울했다. 분노했고 서러웠다. 여기 브런치 어딘가에 정제되지 않은 감정에 흠뻑젖은 글이 있을것이다. 


그로부터 9년 후, 나는 현재 도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발령이 나고 지원했냐는 질문을 참 여러번 받았는데 그 당시 근무지에서 유일하게 내 직속상사와의 트러블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기에 우스개소리로 나좀 여기서 꺼내달라고, 차라리 도교육청에 가는게 낫겠다고 떠벌떠벌했었다고 하면 답이 될까. 말이 씨가 되었나. 이정도면 답이 될까. 지원을 했든 안했든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었는데 그게 뭐가 중요할까. 


발령이 난 후로부터 잠을 제대로 못잤다. 수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자 당연히 먹는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금새 2kg가 빠졌다. 그 동안 내 삶에 낙이 되어주었던 식집사로서의 생활, 아이들과의 시간, 독서, 글쓰기, 여행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시는 것 외에 뭘 씹어 넘기려고 하면 속에서 거부를 했다.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은 느낌이 하루에도 몇번씩 나를 뒤덮었다. 


분명 그곳도 사람이 사는곳일텐데 왜이렇게 겁을 먹었을까. 마침 시들어가던 모든 화분들을 정리하고, 3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쓰고 있었던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도 내려놓았다. 가볍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 또한 가볍게 말했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결국 전 근무지 마지막 근무날, 눈시울을 붉히던 선생님들과 함께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 날밤 눈이 퉁퉁 붓도록 남편앞에서 울었다. 연애할때는 F인줄 알았던 남편은 살다보니 T로 밝혀졌고 극 F인 아내가 갑자기 오열하는 모습에도 여전히 차분했던 남편. 


위로를 바라고 그 앞에서 울었던건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무장해제되었던 것인데 다가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툴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남편을 보며 다시한번 좌절했다. 나의 절망이 너무 깊어 그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주일이 흘렀다. 어땠냐고 물으면 "캄캄"과 "소외"라고 하겠다. 분명 몇시간에 걸쳐 인계인수를 거창하게 받았음에도 분명 들었을때는 다 이해가 갔는데 첫 출근부터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옆에 계신 상사님께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을 들었지만, 그것도 딱 거기까지였다. 어쩜 이렇게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지. 몇년전에 첫 급여업무를 했을 때 느꼈던 "나는 멍청이인가."하는 데자뷰가 더 선명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좌절스러웠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이미 도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던 동기들이 있었고 그래서 사무실에 아는 사람 하나 없어도 덜 외롭겠지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사무실이 다르다는건 그만큼 보기 어렵다는 의미였기에. 일주일동안 거의 볼 일이 없었다. 옆에 계신 상사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시고, 같은 팀원들도 츤데레처럼 옆을 지켜줬지만 알 수 없는 소외감이 계속해서 마음을 점령해나갔다. 어디서나 당당하고 말하기 좋아하고 분위기메이커였던 나는 점점 벙어리에 멍청이에 찐따가 되어가고 있었다. 


벙어리는 어쩔 수 없다해도 멍청이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해도 자꾸만 나를 옥죄어오는 찐따같은 느낌은 어떻게 해야할까. 어제 너무 무리하게 첫째 아이 친구들 가족과 함께 바다를 다녀와서 몸이 부서지는것처럼 아픈바람에 하루종일 몸져 누워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잠에 푹 들지 못하고 꿈에서 계속 시달렸다. 아직도 어색한 내 업무에서 가장 많이 들려오는 단어가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뇌를 벗어나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누워는 있었지만 쉬지는 못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밤늦게 일어나 결국 또 남편앞에서 한바탕 울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마음을 추스리려했지만 일주일동안 하나하나 쌓아온 응어리가 연달아 터지듯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30분을, 아니 한시간을 그렇게 말하다 울고 말하다 울며 T인 남편을 괴롭혔다.  



내일 마주할 내 얼굴은 눈이 퉁퉁 붓겠지. 그럼에도 사무실에 도착하면 웃겠지. 여전히 찐따같은 느낌을 벗어던지지 못한채. 언젠가 휴직할 생각도 하고 들어온거냐는 질문을 받은적이 있는데, 사실 어차피 들어온김에 버틸 수 있을만큼 버텨야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점점 눈물이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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