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생일때나 직원일때나
지금의 학교에 발령받은지 벌써 3개월하고 11일이 지나고 있다. 지옥같은곳에서 나와 이제 숨좀 쉬겠거니 했지만 오산이었다. 내 나이 불혹에 이르러 이 바닥에서 경력도 이제 모든 손가락을 다 세고도 넘었는데 세상에나 부장도 아니고 막내자리로 들어오게 된것이다. 지난 6개월간 나의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학교로 발령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축하를 건넸지만, 곧 이어 내가 막내자리에서 새삥이들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고 하니 딱 축하해준 만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1월이 시작되었다. 지금생각해보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는 1월, 어떻게어떻게 업무를 처리해나갔지만 참 울기도 많이 울고 그냥 애초 계획처럼 휴직을 할것을 멘탈도 다 무너진 상태에서 그깟 돈 얼마나 벌어보겠다고 내가 휴직을 철회하고 여기에 왔나, 후회를 정말 백만스물 두번정도 했다.
그리고 찾아온 2월. 2월이라고 뭐 별다를게 있나. 내 모든경력을 합쳐 1년도 채 안해본 업무는 한달만에 손에 익지 않았고 역시나 눈물과 후회로 보냈다. 진짜 그렇게 두달이 흘렀다. 그리고 3월, 예정되어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다가 올줄 몰랐던 이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급속도로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행정실에 정원이 줄었고, 결국 3월 1일자로 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했던 모든 업무중 대부분이 나에게 넘어왔다. 아직 내 고유의 업무도 적응 못한 나에게, 한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들이 우르르 쏟아진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는다면, 이 바닥은 다 이렇다고 밖에 답을 할 수가 없다. 행정실장은 어떤 업무를 하고, 행정부장은 어떤 업무를 하며, 막내는 이런 업무를 해야한다고 확정된 법령은 없지만 모든 학교에서 관례적으로 이루어진 사무분장이 있고 그 중에 막내는 실장도 부장도 하지 않는 거의 모든 잡무를 떠맡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는 내가 그 당사자가 된것이다. 물론 내가 받은 업무가 모두 잡무라는 것은 아니지만, 내 경력에 부장의 자리 혹은 실장의 자리에 있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업무라는건 확실하다. 그렇게 나는 거의 1.5명의 업무를 떠맡은 채 3월을 보냈다. 그래도 한번 해봤다고 어느정도 손에 익기는 했지만, 앞으로 또 어떤 해보지 않은 일들이 사무분장의 이름으로 다가올지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물론 부장자리에 갔다 해도 학교 규모가 있어서 만만치는 않았을테고 이 자리 업무가 절대적으로 하찮은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자꾸 현타가 오는건, 아마 동기들이랑 싸이클이 안맞는것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돌이켜보면 신규때부터 동기들과는 전혀 다른 업무를 하긴 했다. 동기들끼리 만나서 업무에 대해 하소연도 하고, 고충을 털어놀때 나는 무슨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 업무를 말한들 아무도 모를것같아서 그저 듣고 힘들겠다는 말을 하며 자리를 지켰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지금 만나도 그렇겠지, 어디서부터 꼬인걸까.
그래서 그런지 말 그대로 막막하다. 어떻게 주말빼고, 공휴일을 빼고도 사천번 넘게 반복한 일상인데 여전히 이렇게 암담할 수 있을까. 언제나 마음이 좀 편안해질까. 불안하지도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고 버겁지도 않고 진짜 잔잔한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일과시간을 보내고 퇴근을 할 수는 없을까. 정녕 출퇴근이라는건 그럴 수 없는걸까.
오늘은 출근을 하며 문득 이런생각을 했다. 학교라는곳은 참 한결같이 불편하구나, 학생으로 다닌 12년도 교직원으로 다닌 그만큼의 시간도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은 정말 한여름밤의 꿈처럼 찰나의 순간일 뿐, 늘 버티고 깨지고 가라앉는 일상이 반복되는 아주 불편한 장소구나. 학생때 그렇게 처절하게 느꼈음에도 나는 왜 이 자리를 선택했을까. 왜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걸까.
이 불편한 곳을 말이다. 이 불편한 곳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