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틈새마다 테이프를 붙이던 퀸즈의 방구석
인간의 정신은 정말 신체의 결과값이어서, 다 때려치고 안정만을 추구하겠노라 내게 선언했던게 한 달 전인데, 힘이 생기니까 하고싶은게 많아진다.
시도하고 실패할 수 있다는 것, 그 중에서 작은 성공들과 내게 있었던 행운들을 기념할 수 있다는거, 이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번 생이 아니면 내가 어떻게 퀸즈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바퀴벌레 나올까봐 덜덜 떨며 테이프로 온갖 구멍을 막고 있었을 것이며, 혹은 중고장터에서 싸게 라탄 체어를, 하얀색 테이블을, 딱 맞는 사이즈의 큼직한 거울을 살 수 있었을 것인가. 언제 맨하탄 한복판에서 세계여행을 앞둔 사람의 집에 들어가 의자를 짊어지고 그들이 이제 쓰지 않는 간장종지를 갖고 롱아일랜드까지 기차를 타고 올 생각을 하겠는나 말이다. 그런게 없는 대신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삶을 사는 것보다, 가능성과 소소한 만족감과 기대치 않은 행복과, 뼈저린 실망과 후회를 오가며 저런 특별한 기억을 콥콥 주워서, 낮에 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 삶이란 것의 모양을 조금 더 알게되는게 좋지 않을까. 물론 이건 내가 방학동안에 엄마 집에 살 수 있어서 할 수 있는 생각이겠지만서도.
창으로 바람이 들면, 하얀 린넨 커튼에 동글동글 부피와 주름이 생겨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펑펑 울고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다녔더니 내 안부를 물어봐주는 한국인 사장님이 있는 동네 가게도 좋았다. 친구가 약속에 늦어서 시간을 때우러 갈 수 있는 곳이 고흐와 모네의 작품이 걸린 미술관이라는것도 행운이었다. 지진이 난 날에 온갖 사람들의 알람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맨발로 페달을 밟는 빨간 드레스 입은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있을 수 있었다는 것도, 생애 처음으로 일식을 본 것도 좋았다. 뉴욕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낸 곳이 되었다. 뉴욕의 탓은 아니지만 뉴욕의 탓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윌리엄스버그와는 다르게 미워할 수 없을 것 같은 도시이다.
일년쯤 더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