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소나아무나 다하는 그것
7월 19일자로 퇴사를 했으니 벌써 퇴사한 지 3주차가 되었다. 무료해서 시간이 잘 안간다 생각했는데 벌써 3주라니 역시 퇴사란 시간이 빨리 흐르게 하는 마법인가보아. 앞으로의 계획은 캐나다 학사 편입이다. 이 계획의 무모함을 혼자서 생각해 볼때마다 입안이 씁쓸하기도 하고 몸 한구석이 찌릿찌릿하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감정일까? 내 앞날에 대한 기대와 무서움과, 확신과 걱정이 한꺼번에 몸 한구석으로 몰아치는 그런 기분이다.
복직 후 일년 반이 채 되지 않는 시점에 퇴사를 했다. 예정된 퇴사였고 휴직도 한번 해 봤기 때문에 어느정도 아는 감정이 들지 않을까 했는데, 휴직과 퇴사는 꽤나 다르다. 휴직은 그저 달콤한 꿀맛이었고, 출근하지 않는 그날부터 바로 편안함과 행복함이 몰아쳤다면 (ㅎㅎ) 퇴사는 행복함이 오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느낌, 회사를 안 가도 되는 나에게 적응하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속이 없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꽤나 큰 막막함과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얼마 전에 캐나다에서 쓸 은행 계좌를 만들었는데, occupation 란에 조금 망설이다 student라고 적어넣을 때의 그 오묘하고 막막한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건 좋지만, 게을러도 된다는 점은 꼭 좋지만은 않은 일인 것 같다. 딱히 집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으므로 집 안에만 있다 보면 이것이 가택연금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ㅎㅎ 갑자기 미친듯한 속도로 회사원이었던 나의 삶과 자아가 지금 만 서른 백수인 나의 삶과 자아로부터 멀어지는데, 그 속도와 거리감이 장난없어서 그토록 회사가 싫었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아.. 자.. 잠깐만'을 외치게 된다고나 할까. 또한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 혈육들이 모두 방학+퇴사로 낮시간 동안 나와 함께 집에 있게 되어, '세상사람들 모두 일하는 데 나 혼자 안 일하는 꿀맛같음'을 느낄 수 없는 중이기도 하다. (휴직중에는 문정동에 있어서 몰랐는데, 부천 상동은 진짜 낮에도 사람이 한가득 많다..)
나는 퇴사 전에 퇴사 이후에 내게 찾아올 감정들이 좀 궁금하긴 했더랬다. 정말 엄청나게 후련하려나? 혹은 엄청나게 막막하려나? 아주 많은 삶의 일들이 그렇듯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바뀐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계속해서 이어지는 별 것 없는 일요일을 사는 느낌이다. 친구 만나러 가는 토요일이 아니라, 내일 회사 가야되니까 집에서 체력을 비축하며 별 특별한 일을 하지 않는 그런 일요일. 퇴사 후 말레이시아로의 가족여행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19일부터 30일까지의 시간은 대부분 숙소 예약하고 여행 계획 짜며 지냈다. 그저께 돌아와서 '이제는 미뤄둔' 일들을 하려고 하니 피로감과 무서움이 다가온다. 돈 주는 것도 아닌데. 했다가 망하면 어떡하지. 엉엉.
이제 당분간 통장에 들어올 돈이 없다고 생각하니 허탈하다. 월급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몇시까지 회사에 가서 몇시까지 앉아있다가 오는 그 사이클이, 드디어 변할 시점이 됐다. 내가 하고싶은 것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서,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시간에 무엇인가를 하다가, 그래도 되지 않는 시각에 잠을 잘 것이다. 그 시스템이 변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당장 통장을 볼 때마다 뜨끔 하고 무서운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래도 되나? 라는 이 마음은, 아무래도 내가 하고싶은걸 하는 동안에 조금이나마 사라지겠지. 기다려도 그렇게 되지 않으면 다시 돌아와서 역시 돈을 벌어야 할 것이다. ㅎㅎ
요새는 정말 엄청나게 덥고 (말레이시아/싱가포르가 진짜 선선하고 시원했다. 비교 우위가 아니라 정말 이상할정도로 선선했음..) 습해서 그런 것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이 더 몰아치는지도 모를 일이다만, 우선 희한하게도 퇴사 후 3주간 나의 퇴사에 대한 감정은 그저 홀가분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다른게 아니라 나의 감정조차도 예견이 안 된다는 것은 (유사한 사례를 많이 겪어봤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결정을 내릴 때 있어서 알고있으면 좋을만한 팩트인 것 같다.
카페에서 앉아있어야 뭐라도 하겠지 하고 나왔는데, 평일 저녁에 사람이 항상 없었던 던킨도너츠는 평일 낮에 사람이 많고, 말레이시아에서 먹었던 코코넛을 기대하고 시킨 음료수는 사기죄로 고소해야 할 만큼 코코넛과는 거리가 멀고, 생각보다 던킨도너츠가 꽤나 시끄러운 관계로다가 일찍 집에 돌아가야겠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무슨 문제 나오는지 좀 보고 ㅎㅎ 학점은행 쪽지시험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