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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l 23. 2019

홍콩의 밤


여유 있게 돌아다녔더니 저녁시간이 빠듯하다.

센트럴로 가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처음 미드레벨을 맞이한 나의 생각은


아...

중경삼림을 보고 너무 영화 속 이미지만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그야말로 길고 긴 무빙워크 같은 느낌이었다. 첫인상은 약간의 실망감이 있었지만

타고 올라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가게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데 묘미가 있었다. 그렇게 올라가다 원하는 곳에 도달하면 스컬레이터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인데 마지막 식사는 딤섬을 먹고 싶었다. 가까운 딤섬 맛집을 검색했다.

내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 타이청 베이커리 맞은편의 작은 가게 청힝키. 밥때를 조금 놓친 거 같기도 하고 혼자 먹자니 점점 입맛도 떨어지고 해서 기본 딤섬 4개를 주문해서 먹었다. 생각했던 부드럽고 촉촉한 아기자기 모양새의 딤섬이 아닌 빵처럼 두껍고 밑은 바삭한 투박한 모양의 딤섬.

기대 없이 무슨 맛일까 하며 한입 베어 물고는 흘러넘치는 육즙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맛이!!!

옆에 있는 빨간 소스를 찍어먹으니 고기의 느끼함까지 잡아주었다.

넘쳐나는 육즙을 어쩌지 못해 종이박스로 줄줄 새는데 그마저도 아까울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의욕과 식욕이 있었더라면 한판은 더 먹었을 텐데 다음에 오면 또 꼭 먹어야지라는 마음속 다짐만 하고 디저트를 먹으러 앞 가게로 건너갔다. 타이청 베이커리의 에그타르트는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약간 계란 비린 맛도 있는 것 같고 다음엔 다른 가게를 가보자 또 하나의 다짐을 새기며 하나만 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왜 이 시간만 되면 하루를 더 살고 싶어서 난리인지.

해가 지고 어둠이 깊어가기 시작하면 일상에서든 여행에서든 마음이 늘 조급해진다.

왜 이때가 돼서야 늘 하루가 부족하다고 초조해하는 걸까. 아직 소호는 둘러보지도 못했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지만 소호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벽화를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그곳을 찾아 주변을 빠르게 눈으로 스캔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떠민 것도 아닌데 혼자서 왜 이렇게 바빴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없는데 홍콩의 밤거리는 왜 이렇게 이쁜지, 한걸음 한걸음이 아쉬웠다.


소호는 생각보다 오르막 길이 많았고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며 조금은 어두운 뒷길을 걷는 게 무섭기도 했지만 흥미롭기도 했다.

커피를 한잔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왕 가는 거 유명하다는 스타벅스 컨셉스토어에 가볼까 해서 지도를 보고 걸어가는데 여기가 맞나 싶고 도착한 그곳은 생각보다 너무 후미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가게가 특별하거나 이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일요일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어 여유롭게 있을 수 있었다.


홍콩에 오기 전 유일하게 예약해서 온 투어가 있었다. 빅토리아 하버의 빈티지 스타일의 유람선 덕링크루즈.

공항에 가기 전 배를 타고 여행을 마무리하면 좋겠다 생각해서 여행 마지막 코스로 시간을 맞춰 예약을 했다. 그 시간을 맞추려고 스쳐 지나가듯 소호를 훑고 착장으로 걸어갔다.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소호에서 도대체 다짐을 몇 개를 한 건지...

그래도 훑는 그 와중에 소호의 상징이라는 스팟은 사진으로 너무 많이 봐서 바로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래!! 다음에 와서 다시 더 자세히 봐줄게.


선착장의 뷰도 아름다웠다.

홍콩은 야경이 정말 멋있다.

크루즈 시간까지 조금 남아 근처를 배회했는데 여기저기 스피커를 크게 틀고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게 웬 난장인가... 와... 크루즈를 기다리는 동안 시끄러워서 혼났다.


운이 좋았는지 탑승객이 많지 않았다.

2만원대의 배값에는 음료도 포함이 되어 있어 화이트 와인을 한잔 주문했다.

12월이라 그런지 배가 출발하자 크리스마스 노래들을 배경음악으로 틀어주었다.

안개가 끼긴 했지만 멀리 홍콩섬 빌딩들의 전광판에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알리고 있었다. 와인, 캐롤, 조명, 바람 모든 것이 조화로워 기분이 좋았다.

홍콩의 마지막을 보내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코스 선택이었으나 이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와 같이 있었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항공 출발 지연 문자가 왔다. 마지막 일정이 끝났는데 그럼 뭘 한담.

내 계획은 여기가 끝인데.

공항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엔 아깝고 루프탑 바에 가서 한잔 하자니 난 오늘 너무 레깅스에 캡 모자를 쓰고 나왔는걸. 뭘 하나 고민하며 홍콩역을 향해 걷다가 저 멀리 사람들이 많이 보이길래 방향을 틀어 그곳으로 걸어갔다.

인간의 의식의 흐름이란... 혼자서는 갈 계획에 없던 란콰이퐁에 내가 서 있었다.

가려고 한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술의 기운을 느꼈나. 이것은 데스티니.

구경하며 걸어가는데 라스트 해피아워를 외친다.

1+1!!

해피아워가 끝나기 3분 전 착석하여 마지막 해피아워를 즐겼다.

이번 여행은 +1의 혜택이 많네.

공항철도도 클룩 행사로 1+1으로 구매했는데

커다란 기네스 생맥주를 1+1에 또 먹게 되다니~

행운이 많은 여행이다.


항공 지연 덕에 혼자라서 갈 계획에도 없던 란콰이퐁에 와서 맥주까지 마시고 떠나기 전까지 알찬 하루를 보낸 것 같다.

생각보다 맥주 양이 많아 시간에 쫓겨 두 번째 잔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기분 좋은 알콜 기운에 홍콩 역으로 총총 걸어갔다. 트램 너도 다음에 꼭 타 줄게. 보기만 해도 이쁘니까 이번엔 보는 걸로 만족한다.

낮에 도심공항에서 체크인하고 짐도 부쳐놓은 상태라 공항에서 시간이 널럴했다.

돈도 남고 술도 오르고 해서 한국에선 먹지도 않는 시그니처 버거를 공항 맥도날드에서 먹었다.

야식은 왜 맛있나요. 햄버거는 홍콩 공항 맥도날드에서 먹으라며 친구들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시그니처 버거가 이런거였구나.

비행기 탑승 전 알콜도 채우고 배도 채웠더니 앉자마자 잠이 몰려온다.

그래도 주는 기내식을 안 먹기는 아까워서 가벼운 죽을 택했다. 하지만 너무 맛이 없다.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눈을 떠보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비는 귀찮긴 하지만 운치는 있다.

오랜만에 혼자 한 여행.

두려웠고 외로웠지만 다시 용기를 얻었고 나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또 혼자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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