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서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니피캇 May 04. 2023

더 가치 있는 무엇

생택쥐페리, 야간비행

[생택쥐페리, 야간비행]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과 개인의 행복이 충돌할 때, 우리는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가. 더 나은 경제,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사회제도, 더 나은 무엇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위해 타의적으로 또는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참여하여 희생당한 이들이 있다. 그 개인들의 행복은 오늘날의 더 나은 그 결과들 보다 덜 귀중한 것이었을까? 심지어 각자의 삶을 덮친 우연한 환경 때문에 강제로 자유를 침탈 당하는 억압적 삶을 살았다면, 그들의 불행을 '역사적 의미'라는 건조하고 소시오패스적인 용어로 우리 마음에서 멀리 떼어 놓아도 되는걸까? 절대 왕권의 시대에 왕의 거대한 무덤을 짓는 일에 일평생 동원된 사람들은 자기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았을까? 원치 않는 전쟁에 동원되어 가족과 헤어지고 목숨을 잃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내세운 명분보다 더 못한 가치의 인생이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도록만 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세상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있다. 누구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현재를 만들 수 없다. 현재는 주어져 있고 우리는 거기에 던져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살아내야 한다. 아무렇게나 던져졌음에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아야한다. 아니 어쩌면 아무렇게나 던져졌기 때문에 의미있는 삶이 무엇인지 그토록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생택쥐페리는 세상이 더 나아지는 과정에서 개인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도식 자체를 깨고 싶은 것 같다. 개인의 희생과 사회의 발전을 하나의 인과로 설정하는 도식이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미덕으로 여기는 관념을 형성한다. 세상이 변하는 과정에 개인의 기여와 희생이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그 둘은 인과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개인의 보편적 행복 추구가 세상을 이롭게한다.


 강제로 제한된 자유는 희생이 아니라 억압이다. 희생이란 개인의 완전한 자발적 자유가 맺는 사랑의 열매여야한다. 부당한 억압과 위대한 희생이 뒤엉켜 때때로 사람들은 어느 것이 희생인지 어느 것이 억압인지 잘 분별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특정 이념이나 특정 대상을 지지하고 돕는 일을 공동체를 위한 희생이라 착각하기 쉽다. 식별의 근거는 보편적 사랑이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다움이다. 우주와 자연에 감동하고 새로운 하루를 주심에 감사하는 소박한 선함이다. 이런 이들은 언제나 자유롭다. 억압의 상황에서도 그들의 천부적 자유는 끊임없이 살아갈 용기를 일으킨다. 몸의 억압이 정신의 억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각자의 행복을 위한 도전을 멈추면 안 된다. 고통과 억압의 시스템에 놓여져도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만 가진다면 삶은 스스로 의지를 끌어낸다.


 인생에 해결책은 없다. 나아가는 힘이 있을 뿐.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가족과 동료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지만 자기 일과 삶을 사랑하는 일도 그치지 않는다. 억압적인 환경은 분명히 나쁘지만 인간은 자유로운 의지로 어떤 환경에서도 그 시간의 가치를 높이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은 전체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전체주의를 파괴하는 모든 인간 개개인의 천부적 인권이다. 생택쥐페리의 생각은 빅터 프랭클과 비슷해 보인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간 빅터 프랭클에게서처럼 삶의 고난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일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떤 악조건일지라도 분명히 무엇인가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은 더 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