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다. 지구는 종말까지 멀었다. 그러나 생태계는 언제 멸망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멸망의 한계를 넘어섰는지 아니면 아직 경계를 넘지 않은 아슬아슬한 상황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 자연이 드러내는 수치는 생태계가 멸망을 향해 전속력 직진하고 있음으로 보여주고 있다. 둘째, 생태계 멸망의 현상을 온 인류가 명확하게 느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지구의 "거대한 생화학적 순환이 망가진다면, 우리가 아는 유형의 생명은 존재하기를 그칠 것이다." 셋째, 인류와 생태계의 멸망 원인은 인간이다.
인간이 종말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기후 온난화만이 아니다. 인간의 선택적 재배와 사육으로 야생의 동식물은 멸종되거나 심각한 멸종 위기로 내몰렸다. 생물 다양성의 감소는 유전자의 위기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설명문적 표현은 멀게 느껴지나보다. 사람들의 위기의식은 평균적으로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전파 해야한다. 자연은 우리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아니라 우리 생명 그 자체임을 깨달아야한다.
해양의 규조류는 적절하게 번식하여야 한다. 우리는 흔히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실 해양 규조류는 아마존 보다 훨씬많은 산소를 생산한다. 우리는 바다를 플라스틱과 기름과 쓰레기와 독성물질로 오염시켰고 해수온도 상승은 규조류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을 방해한다. 인간이 지구 생태계의 허파를 파괴하고 있다. 아마존을 비롯한 숲의 무분별한 벌목과 개발은 덤이다. 또다른 예로 상어를 들고 있다. 상어가 잡아먹는 물고기 가운데 창꼬치가 있다. 창꼬치는 돔을 잡아먹는다. 돔은 산호에 기생하는 조류를 갉아 먹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매년 1억 마리의 상어를 잡아 죽이고 있다.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처먹는' 허세를 부리는 자들이 그렇게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상어 고기를 모두 식량으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상어를 잡아 지느러미만 자르고 바다에 그대로 내버린다. 그 상어들은 서서히 죽을 것이다. 어부들의 잘못일까? 아니다. 사 먹는 자들이 더 큰 죄인이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는 법이다. 자본주의의 탐욕은 수요에서 시작한다. 포식자 상어가 줄어든 덕에 창꼬치의 개체수가 증가한다. 창꼬치가 증가하면 돔은 줄어든다. 돔이 줄어들면 조류가 증가하고 조류가 지나치게 증가하면 산호초가 질식한다. 산호초가 죽는 것은 물고기들의 생활 터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바다는 무진장한 식량의 보고에서 죽음의 바다로 변할 것이다. 폭풍과 파도가 천연 산호초 방파제가 사라진 해안도시를 쓸어버리는 것은 덤이다. 대멸종은 현재 진행중이다. 인간은 알지만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생물학자 마티아스 글라우프레히트가 "우리는 영리하게 생각하고 멍청하게 행동한다."라고 한 딱 그 모양이다. 과학자들은 21세기 말까지 100만 종의 생물이 절멸할 위험이 있다고 보고한다. 생태 다양성의 파괴는 수십 년 내로 "인류가 직면할 최대의 난제다." 대멸종은 비밀이 아니다. 이제 몰랐다는 변명은 아무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알아보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의 오류는 우리가 자연보호를 이야기 하고 자연이 우리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고 믿을 때부터 시작된다. 자연은 보호가 필요없다." 보호가 필요한 쪽은 인간이다. "자연은 협상하지 않는다. 말미를 주지 않으며, 무자비하고, 어떤 거래도 하지 않는다." 자연이 그렇게 흘러가면 인간은 그 물결에 휩쓸려 흘러갈 뿐이다. 다만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자연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일이다.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의 말을 빌려 인류 생존의 "관건은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태도로 마주하는가" 이다. 그것은 자연과의 공명(resonance)이다.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은 자연이 무엇을 보여주는지 잘 보아야한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숲으로 가고 강으로 가고 바다로 가고 산으로 가면 된다. 자연으로 들어가서 자연에 머물면된다. "호기심을 내어 바람이 어떤 냄새를 실어 오는지, 빛이 겨우 15분 만에도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가 어떤 색들을 보는지, 어디에서 동물들이 태어나는지, 자연이 어떤 모양의 꽃을 피웠는지 관심을 기울여라." 호모사피엔스 30만년의 역사 가운데 문명의 시간은 길어봐야 1만년이다. 인간에게만 일어난 동물과 다른 진화의 궁극은 기계와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자연에 감동하는 능력이다. 현세인이 그런 능력이 있다는 말은 10만년 전의 조상들도 밤하늘의 별을 보고 아름다운 산과 들을 보며 감정에 북받쳐 노래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인간은 자연에서 심리적 평화를 얻고 호흡과 맥박이 안정된다. 우리는 그렇게 지어진 존재다. 자연과의 공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다. 자연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일, 그것이 멸종을 멈추는 첫걸음이다. 사랑하는 것을 파괴할 리는 없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발명했다. 작가 박진희의 말마따나 "지구에는 돈을 사랑하는 자들과 자연을 사랑하는 자들이 함께 산다." 이 둘은 싸움아닌 싸움을 하고 그 싸움의 승자가 인류 생존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