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브레이커, 윌터 아이작슨
이 책은 수십 억 년의 진화가 만들어낸 자연의 신비로서의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의 발견과 이를 활용하는 분야에서 활약한 과학자들의 오랜 이야기다. 이제 크리스퍼-CAS9을 생명체의 유전자 가위로 활용할 수 있음을 발견한 제니퍼 다우드나와 에메뉘엘 샤르팡티에라는 이름을 다윈과 멘델처럼 생물학 교과서에 실어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유전자 조작의 시대가 열렸다. 이 책은 아마도 의도적으로 '유전자 편집'이라는 중립적 용어를 쓴다. 유전자 편집이라고 하면 '조작'이라는 용어보다 부정적인 느낌이 상당히 줄어든다. 과학적 현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선입견을 지우고 중립적 태도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표현을 들으면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거부감이 되고 거부감은 현실을 보는 눈을 인지부조화에 가둔다. 과학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감정적 태도로 입장을 결정하면 두려움 때문에 눈을 감고 걷는 것처럼 위험하다.
용어가 무엇이건 간에 과학적 기술(記述)은 동일하다. 이제 DNA를 인위적으로 수정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자연적 돌연변이와 오랜 세대의 흐름을 기다리지 않아도 생명체의 유전적 조건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우리가 알 수도 없고 조절할 수도 없는 돌연변이가 아니다. 인간이 원하는 유전자를 의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혁명적 변화다. 인류가 결국 금기를 넘어 서는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알고보니 유전자 편집은 신비롭지만 그리 어렵고 복잡한 현상이 아니었고, 생명의 진화에 수십 억 년 동안 일어나고 있었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일종의 코딩이고 생명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컴퓨터다. 유전자 하나하나가 고유한 코딩으로 프로그램되어 있고 코딩된 문자의 배열이나 접힘의 오류는 돌연변이나 병의 원인이 된다. 자연은 유전자 코딩을 꾸준히 변화시켜왔다. 자연의 의도와 방향은 알 수 없다. 우리가 보기에는 랜덤이지만 랜덤에 신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자연이 만드는 유전자 편집은 다윈의 자연선택에 따라 더 유리한 유전자가 살아남는 과정을 거친다. 요컨대 유전자 변화는 생명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던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연이 수행하는 유전자 편집은 오랜 세대에 걸쳐 천천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한 세대의 육체 내에서도 일어난다. 바이러스는 DNA 또는 RNA의 유전자만 가지고 있고 세포라는 보호막이 없다. 스스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고 에너지를 만들수도 없다. 반드시 세포를 가진 숙주에 감염해야 자기 유전자를 복제하여 퍼뜨릴 수 있다. 그래서 바이러스는 세포에 침입한다. 일반적으로 바이러스의 침입을 받은 세포는 바이러스의 DNA 또는 RNA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기능수행에 방해를 받는다. 숙주 세포가 바이러스의 침입을 겪고 나면 자기 DNA에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기록한다. 세포는 "크리스퍼"라는 반복된 염기서열을 이용해 바이러스의 침략 경험을 기록하고 크리스퍼와 맞아 떨어지는 바이러스가 재침입하면 즉시 파괴한다. 이것이 면역 체계다. 세포는 이 경험을 유전자에 기록하여 기존에 면역이 없던 DNA를 면역이 있는 DNA로 편집한다. 그러므로 유전자 편집의 발견은 엄밀히 말해 금기를 넘어선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처럼 자연의 신비로움을 발견한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에서 mRNA 백신이 처음 등장했을 때, DNA에 직접 면역 기억을 기록한다는 말에 놀라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다. 인간 유전자를 조작하기 위해 빌 게이츠와 모종의 세력이 만든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다는 괴담도 퍼졌다. 이 백신은 바이러스를 직접 경험한 후에야 DNA에 기록되던 자연적인 면역 기전을 바이러스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 크리스퍼를 활용하여 DNA에 정보만 기록해주는 방식이다. 컴퓨터 코딩과 흡사하다.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생명체는 기존에 알고 있는 모든 항체를 동원하여 제거하려한다. 이 싸움의 과정에서 몸이 아프거나 열이 난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꼭 맞는 항체가 없다면 이 싸움의 승부는 쉽게 결정되지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에게 패배하면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하거나 심하면 죽게된다. 항체는 바이러스에게 일종의 천적이다. 항체는 잡아먹을 수 있는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바로 알아보고 제거한다. 그러나 낯선 바이러스는 잡아먹지 못한다. 소가 쥐를 봐도 먹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열쇠와도 비슷하다. 침입한 바이러스 자물쇠를 열 수 있는 항체 열쇠가 있는 몸은 바로 자물쇠를 해제하여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 유전자 편집 방식의 백신은 열쇠 제작 방법을 DNA에 기록한다. 열쇠에 딱 맞는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즉시 그것의 유해성을 판단하고 그 항체를 생성하여 세포를 안전하게 지킨다. 그러므로 소량의 바이러스나 죽은 바이러스를 미리 경험하게 하던 기존의 백신 방식보다 더 안전할 뿐만 아니라, 자연을 위배하는 이상한 조작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목표하는 타깃의 정확한 편집이 중요하다.
크리스퍼는 DNA의 정보를 직접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백신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질병과 장애까지 수정이 가능하다. 만일 크리스퍼를 수정 직후의 단계에서 사용한다면 한 생명의 모든 유전 정보를 원하는 대로 맞춰낼 수 있다. 이미 중국의 허젠쿠이 박사가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하여 '맞춤 아기'를 태어나도록 하여 큰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유전자를 조작하여 인간을 원하는 대로 조정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음모설이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론 그런 공상소설과 같은 방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분명히 부작용의 우려도 크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 기술이 어렵지 않다는 데 있다.
자연적으로 일어난 유전자 변화와 인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유전자 편집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인위적인 것은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일어난다. 자연적 변이에서는 어떤 특정한 목적이나 방향성을 발견할 수 없다. 진화는 더 뛰어나거나 더 아름다운 능력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게나 무작위로 일어난 돌연변이가 생존에 유리하면 살아남고 불리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방식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DNA도 마찬가지다. 더 뛰어난 유전자를 골라서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 유전자 중에 아무거나 무작위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제 정밀한 유전자 가위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인간에게 상황은 달라졌다. 미래에도 인류가 계속 존재한다면, 지능과 신체능력은 점점 좋아질 것이다. 인류가 신의 영역을 넘본다는 우려 섞인 평가가 학계와 세상을 긴장시키고 있지만 결국 인류는 이 새로운 경계를 넘어갈 것이다.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신의 불완전한 창조를 인간의 과학이 완전함으로 재창조하게 되었다고 평가 할 수 있을까? 유전자 편집의 윤리논쟁에서 찬성하는 의견은 진화가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왔는지를 지적한다. 모든 생명체의 유전자는 엄밀히 따져보면 불완전하기 짝이 없다. 특정한 병에 취약한 형질을 랜덤으로 유전하고 약한 육체와 떨어지는 지능을 후손에게 전파하기도 한다. 전통적인 생식 방법으로는 랜덤 선택을 막을 길이 없다. 랜덤 유전 시스템 자체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복권처럼 결정하게 하는 잔인한 시스템처럼 보인다. 반면에 유전자 편집은 좋은 유전자만 선택해서 후손을 만들 수 있는 놀라운 기술이다. 이제 인류는 완전한 유전자를 장착하고 신에게 도전하게 될까?
유전자 편집의 기술은 두 가지 큰 우려를 가지고 있다. 첫째, 유전자 편집이 자본주의를 만날 때 빈익빈 부익부의 불평등이 영구히 고착화 될 것이다. 값비싸고 뛰어난 유전자를 장착할 수 있는 부유층은 계속해서 더 뛰어난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금수저는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외모와 신체능력과 지능까지 타고나는 것이다. 둘째, 만일 인류의 유전자 편집이 보편화 된다면 선호하는 유전자들만 남게 될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가 다양성을 상실하고 모두 같아진다는 의미다.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완전함이란 결국 그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유전자적 계층이 명확해지면 누구나 자기 후손에게는 불완전한 유전자를 배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특정한 병에 취약하거나 더 키가 작거나 지나치게 크거나 시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떨어지는 유전자를 그냥 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같은 키에, 누구나 가장 아름다운 외모에, 누구나 같은 근육에, 누구나 같은 지능으로 수렴한다. 우리는 이렇게 가장 완벽한 인조인간을 후손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신이 창조한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유전시스템을 비웃을 완전한 창조 말이다. 그것은 성공일까? 다양성을 상실한 자연이 인간과 생태계에 얼마나 위험한지 인류는 이해할까?
과학 그 자체는 '선악과'가 아니다. 이성이 인간의 의식 위로 떠오른 이래로 언제나 인간의 태도가 '선악과'였다. 크리스퍼가 새로운 도약의 도구가 될 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시발점이 될 지 알 수 없다. 이 책에서 우리는 과학의 문제와 윤리의 문제를 함께 다루게 된다. 아예 사용을 금지하기에는 너무 쉬운 도구다. 절대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윤리적이고 위험한 사용을 사전차단하기 위해 인류가 무엇을 해야할지 어떤 이들에게 투표해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유튜브 '최재천의 아마존'에 출연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가 이렇게 말했는데 정말 중요한 생각이다.
"정치에 관해서든 과학에 관해서든 깊은 생각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다수의 결정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치 사회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러면서도 과학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거를 할 때에도 후보가 누군지를 알아보듯이 인류에게 중요한 문제인 과학기술의 이슈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이라도 자신의 의견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을 알아야 하고, 우리 과학자들은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생각하는 시민들을 전제로 하고 있어요. 저는 민주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맞는 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간도 짐승과 마찬가지로 자기 이익만 생각하죠. 전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하는 거는 정말 많은 교육과 깊은 생각을 통해서만 나오는 결론이라고 생각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는 것을 기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것이 두렵습니다."
크리스퍼는 인류를 새로운 도약으로 이끌 신의 선물일 수도 있다. 반면에 인류의 태도에 따라 윤리를 넘어 생존이 걸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해양 투기하려는 일본에게 대응하는 윤석열 정부를 생각할 때 김상욱 교수의 호소도 언제나 아전인수의 도구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분 나쁜 예감이 든다. 너무나 비과학적인 주장을 하는 그들이 오히려 '과학적'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구에는 지혜로운 이들과 어리석은 이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어리석은 이들은 지혜로운 이들의 도움 없이도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거나 심지어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본인들이 어리석은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면 최소한 인류의 지능과 선한 감정과 학습욕구를 담당하는 유전자는 의무적으로 강화시켜야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