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푸른 여름_네 번의 계절

해를 사랑한 달의 이야기 2. 달의 아이

by 소예

달은 언제고 해의 멀어짐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낮 달이 되어서라도 함께이고 싶었던 바램은 태양의 뜨거움과 바라볼 수 없는 눈부심에 온 몸이 붉어지도록 화인을 만들고서야 이루어질수 없음을 알았다.

달은 그저 온 마음을 감추어 어둠속에 숨는 것으로 태양보다 더 뜨겁게 해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어둠과 안온한 밤의 기운 속에서 달은 그저 시리게 웃을 뿐이었다.

해가 올 자리를 보드랍게 재우고, 해와 함께 살아갈 만물의 상처를 밤새 품에 안고 토닥였다.

행여나 어루만지지 못한 상처를 지닌 것이 해에게 다가가 짐을 지울까 싶어 달은 연신 품을 내어 손길을 준다.

달은 울 수가 없었다.

자신의 눈물이 밤을 적시면, 행여나 해가 오는 자리가 젖을까 싶어 차마 눈물을 떨굴 수가 없었다.


"컨디션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잠은 잘 자요?"

"아뇨"

"같은 시간에 자는 습관을 들여야 해요. 잠이 안와도 그 시간이 되면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요.

침대 근처에 책이나 핸드폰 두지 말고. 할 일이 생각나도 일어나지 말아요. 죽은 것 처럼 누워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어야 해요."

"생각이 많아서요"

"내가 11시쯤 전화할께요. 나랑 같이 해 봐요. 할 수 있어요. 내가 해 보자고 해서 안된거 없잖아요"

물끄러미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그는 하얀 얼굴에 해보다 더 환한 미소를 띄우고 눈을 맞춘다.

푸른 신록같은 그 미소를 보면, 마치 모든 것이 정말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시린 내 밤도, 오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아침도 그가 괜찮다고 하면 정말 아무일도 없는 평온한 날이 될 것 같다.

"또 생각 많은 눈빛이네"

"생각은 무슨..."

"가까이 와 봐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둘러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가 장난스럽게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앉아 볼래요?"

마치 불에 덴 것처럼 뒤로 물러나는 나의 손을 고요하게 당겨 그의 곁에 서게 한다.

"농담이야. 강도라도 만난 것처럼 놀라고 뒷걸음질 칠 건 뭐예요"

"그런 농담 재미 없어요. 갈래요"

그는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올려다 보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잔잔해 질 줄 모르는 내 심장의 고동과 떨림이 잡힌 손에 고스란히 실려 들킬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난다.

"달 같은 사람....당신은 달 같은 사람이야. 웃을 줄도 울 줄도 화낼 줄도 모르는 그저 은은하기만 한 사람"

"................"

"난 당신을 잡으면 죄 짓는 기분이 들어요. 꼭 겁 많은 아이를 놀라게 만든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런 게 아니예요"

"가요, 더 잡고 있음 울겠다 당신"

그의 손에 힘이 스르르 풀리고, 힘 없이 내 손이 툭 하고 떨어진다.

닿지 못한 내 마음이 땅으로 툭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걸어오는 짙은 밤, 밤바람이 뺨을 스치자 참고 참았던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서럽게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아픔이 눈가에 흐르자 달의 아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소리가 새어나가면 행여나 해가 들을까 두려웠다.

들킬 수 없는 마음이 아니 들켜서는 안되는 마음이 자꾸 해를 멀어지게 만든다는 걸 달의 아이는 잘 알고 있었다.

해는 낮 달이 된 달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달이 다칠 걸 알기 때문에 성큼성큼 다가올 수가 없었을 터였겠지만, 달은 두려웠다.

그 모든 화인을 흉터처럼 새기고 해를 잃어갈 어떤 시간이 두려워서 차마 마음을 보일 수가 없었다.

해는 모른다.

밤이 얼마나 시린지, 만물을 재우고 난 밤이 달도 외롭고 무섭고 차기만 했다는 것을 해는 모른다.

그 시간을 함께 하자고 달은 차마 말 할 수가 없었다.

달의 아이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무릎에 얼굴을 뭍었다.

초라한 어깨의 들썩임이 커져갔지만 그 고요한 어둠 속 어디에도 울음 소리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저 스산한 밤바람만이 달의 아이의 등허리를 쓸어줄 뿐이었다.


너무 많이 아프진 말거라.

너무 많이 마음 앓지 말거라.

조금은 너를 내보여도 좋으련만, 무엇이 그리 겁이 나는거니.

하지만 밤바람도 안다.

달은 어둠에 빛이 스미는 그 여명의 순간, 해를 놓아야 하는 그 순간이 두렵다는 것을.

애초에 한 하늘에서 살아갈 수 없는 숙명을 가진 이들.

그럼에도 안아보고 싶었던 그 눈부신 밝음이 가슴이 에이도록 놓아지지 않는 다는 것을 바람은 안다.


달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아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어둠속을 걸어간다.

찰방 찰방 눈물에 젖은 아이의 발소리가 처연하다.

달의 아이는 내내 생각한다.

내 발로 다 적신 이 길이 부디 해가 뜨는 아침엔 보드라움만 남아 있기를...

행여나 해의 걸음에 흙탕물이 튀는 일이 없도록.

이 밤 내 발을 다 적시고 그저 없는 일이 되기를.

keyword
작가의 이전글푸른 여름_네 번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