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뉘었네요. 잠들었구나 싶어 요 위에 누이면 등이 닿기가 무섭게 앵 울어대는 통에 몇 번을 다시 안아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팔이 저릿저릿하다 못해 어깨까지 뻐근해요. 양손을 교차해 어깨며 팔을 주물러 봐도 헛일이군요. 손아귀로 보낼 힘마저 쭉 빠져서 영 시원하지가 않아요. 어머나, 그새 창밖이 부옇게 밝았습니다. 오늘 밤이 이렇게 지나가려나 봐요. 고요한 어둑새벽…… 저만치 놓여 미풍으로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립니다. 새근새근 들고 나는 아기 숨소리가 미풍에 돌돌 섞여 들어가요. 후우, 하… 푸우, 하……
어쩌죠, 자꾸만 눈이 감깁니다. 아기가 잠든 틈을 타 쌓인 젖병을 소독해야 할 텐데요. 마지막 분유를 먹이고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더구나 한참을 잠투정으로 바동대다 잠들었으니 머지않아 아기가 눈을 뜰 것만 같아요.
분유를 타는 대신 후다닥 젖을 꺼내 물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역국을 몇 대접씩 들이켜고 유방이 아프도록 마사지해 물려 봐도 도통 젖이 돌지 않아요. 나오지 앉는 젖을 애써 빠느라 새빨개진 아기 얼굴을 보면 속이 문드러집니다. 젖은 구경도 못하고 기운만 쓴 아기가 칭얼거리다 그예 울음을 터뜨릴 때면 덩달아 나까지 울고 싶어져요. 꾸역꾸역 물려 빨게 한 젖꼭지가 아리다 못해 욱신욱신합니다. 내가 아픈 만큼 아기도 힘들었겠지요.
문화센터 복도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이 떠오릅니다. 아기띠 양옆으로 쏙 빠져나온 발들이 엄마 발걸음을 따라 달랑달랑 흔들리던 모습도. 강의실과 수유실이 같은 층에 있다 보니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들과 더러 스쳐 지나곤 하거든요. 이따금 수유실 내에 비치된 전자레인지를 이용하러 들어가면 소파에 흩어져 앉은 엄마 몇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하고요.
저마다 젖먹이를 품에 안은 엄마들은 내가 들어가도 개의치 않고 수유를 계속합니다.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동안 할딱할딱 젖 빠는 소리며 젖 넘기는 소리,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파도처럼 내게로 훅… 밀려들면, 그만 숨이 턱 하고 막혀요. 고작해야 일이 분, 길어봤자 삼사 분을 머무를 뿐인데도 그곳의 달짜근하고 물큰한 공기 때문인지 삽시간에 호흡이 가빠져요. 그런 나를 구원하듯 전자레인지가 삐, 삐, 삐, 삐… 너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라, 어서 네 자리로 돌아가라……
자리… 오늘 자리가 빌 텐데 수업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겠습니다. 수강생 한 명쯤이야 빠져도 차질이 없지만 강사가 없어서야. 언니도 알다시피 리본공예 수업이라는 게, 매듭은 어떻게 묶고 리본은 어디에 덧대어 붙이는지 일일이 보여 드려야 하잖아요. 더욱이 초급반 수강생들은 사소한 부분까지 세세히 일러 드려야 하고요.
그러고 보면 언니는 처음부터 솜씨가 좋았어요. 다른 수강생들이 갈피를 못 잡고 쩔쩔매는 동안 혼자서 뚝딱 완성해내는 손끝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초급에 이어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따기까지 채 석 달이 걸리지 않았죠. 언니가 마침내 1급 사범이 되어 교외 문화센터의 초급반 강사 자리를 맡았을 때, 그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은 나였습니다. 들뜬 목소리로 다 네 덕분이라며 고맙다던 언니.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그래. 언니가 잘해 놓고.
얘는, 그럼 날 이끌어준 수석 사범님은 도대체 누구니? 나는 너 아니었음 사범 자격은커녕 중급으로 넘어갈 생각도 안 했을 거야.
우리가 언니, 동생 하며 지내기로 한 날이 언제였죠?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래도 수강생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언니와 처음 마주친 날만큼은 또렷이 기억해요. 초급반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이었지요. 그날 갑자기 눈이 왔잖아요. 혹여 늦을까 출발을 서둘렀더니 공교롭게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괜히 아래층 쇼핑센터를 배회하다가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강의실 앞에 웬 뒷모습 하나가 서 있더라고요.
언니였습니다.
언니는 강의실 문을 살짝 열었다가 닫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어요. 나를 못 보고 지나친 언니의 고개가 천천히 오른쪽으로 향한 순간 왕, 우렁찬 울음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죠. 막 수유실 문을 열고 나오던 아기 엄마가 허둥지둥 다시 안으로 들어가더군요. 그때 무엇에 홀린 듯 아기 엄마를 따라 수유실로 들어가던 언니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나는 언니를 눈으로 좇다가 강의실 문을 열었지요.
강의실 안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어요.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불과 몇 분 새 눈발이 굵어지더니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준비해간 수업 재료를 꺼내다 말고 시간을 확인했어요. 과연 수강생들이 저 눈을 뚫고 이곳에 올 수나 있을까, 어쩌면 언니가 오늘의 유일한 수강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결국 정시가 지났는데도 강의실에는 누구 한 사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언니조차도. 잠시 망설이다 찾아간 수유실 안에는 아이와 어른이 각기 둘씩 있었습니다. 수유에 여념이 없는 앳된 엄마와 품속 젖먹이. 그 발치에 탈파닥 주저앉아 빵을 오물거리는 맏아이. 그리고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른 채 멀거니 그들 세 살붙이를 바라보던…… 내가 기척을 내자 화들짝 놀라 뒤돌아보던… 언니.
삐, 삐, 삐, 삐. 머릿속에서 전자레인지가 울렸습니다. 너희는 이 자리에서 벗어나라, 어서 너희 자리로 돌아가라. 그래요, 우리는 한 배를 탄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Happy New Year!
한 주 쉬고 돌아오니 2016년 새해 첫날이 밝았네요. 새해와 새 소설의 시작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새로 시작하는 이번 소설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는 총 6편으로 완결될 예정이에요. 모쪼록 끝까지 함께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어요. 놀러 오셔요!
귀여움이 나를 구원해요. 꿈은 명창정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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