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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란 Nov 25. 2024

그만둘 수 없는 마음

김가지, 책폴(2024)

# 10년 차 청소부, 진로 고민은 영원히


‘진로 고민’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학업이나 직업 같은 업(業)의 문제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사실 진로라는 단어는 ‘나아갈 진(進)’에 ‘길 로(路)’가 결합한 한자어로서, 앞으로 나아갈 길 자체를 의미하는 광범위한 말이다.


이 책에서도 진로 고민이라는 문제를 비단 ‘일 이야기’로만 풀어내지 않는다. 직업의 의미를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직업에 대한 태도를 고찰하고, 자기다운 일의 방향을 모색하고, 자신이 선택한 일을 삶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솔직담백하게 풀어놓는다.


자신이 나아갈 길을 고민하는 일이란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나 다름없기에,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나’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나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답게’ 살고 싶다면 무엇을 그만두고 시작하고 계속할지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


그만둘 수 없는 마음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마음을 인지하지 못하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가치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지 알 길이 없다. 물론 그것을 안다고 해서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부득이하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자신이 뭘 그만두고 싶은지 깨달을 수 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구체화하면서 더 자기다운 삶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다움’은 그만둘 수 없는 마음의 영역에서 온다, 라고. 


그만둬 버리면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없는 것, 그걸 빼 버리면 내 삶의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 것. 다시 말해 본질은, 그만둘 수 없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 그러니 작가가 고민 끝에 기존 필명(코피루왁)의 사용을 그만두고, 현재 필명(김가지)을 쓰기로 한 선택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본질이 지향하는 길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지어 “이게 나!”라고 선언하는 모습이 반짝반짝 빛난다.


작가가 필명을 새로 지었듯 새로운 직업을 발명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신개념을 만드는 사람들. 획일화된 삶의 기준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이 세상에서 정의 내리기 어렵거나 생소하거나 획기적인 일을 하며 “이게 나야! 그만둘 수 없어!”라고 선언하는 사람들. 그들이 마음에 품은 ‘그만둘 수 없음’은 외부적 요인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못 그만두는 견딤이 아니다. 그만둘 수 없을 만큼 자신에게 소중하기에 그만두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일까? 책 제목이 ‘그만둘 수 없는 마음’이라는 점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그만두지 않는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꿋꿋이 전자를 택했다는 것이 퍽 좋았다. 세상이 어떻게 생겨 먹었든 “아, 나는 이런 사람이래도! 나답게 살게 좀 냅둬요! 그만둘 마음 없다고요!”라고 호쾌하게 외치는 느낌이라 나도 덩달아 배짱이 두둑해진다.


이토록 명랑하고 애틋한 에세이를 만나 기쁘다. 질풍노도의 10대, 20대를 지나 “언제나 나로 잘 살아갈 미래의 나”에게 제 삶의 방향을 담담히 일러주는 30대의 김예지, 청소부 아닌 김예지, 작가 김가지가 그려낼 다음 여정의 이야기도 무척 기대된다.



# 책 속 문장


이름을 바꿨습니다

어느 날 마주한 사실.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삶. 그 둘이 충돌하고 말았다. 고민이 깊었다. 이미 안착된 그 필명을 바꾸기에 리스크가 있었다. 전에 작업했던 모든 곳에 일일이 수정 요청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충돌한 세계에선 함께 할 수 없었다.


직업의 귀천

나는 스스로 세계를 선택했고,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할 수 있다.

"제 세계에는 귀천 같은 거 존재 안 합니다. 청소일이든 대통령이든 그냥 자기가 선택한 일의 결과일 뿐이라고요. 알겠어요?"


직업은 나

우리는 직업을 선택할 때 오롯이 좋아서만은 아닌 다양한 조건이 충족되는 일을 원하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 청소일을 선택한 나는 아이러니하게 주목을 받았다. 수많은 욕망이 담긴 명사, 직업. 거기서 나는 계급장보단 나다운 것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누군가에겐 용기가 돼 주었다.


발전과 욕심 사이

욕심이 아닌 배움으로 자주 모드 전환을 해주고,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나길 독려한다. 결국은 마음 잘하고 싶은 마음이니까!


청소부 말고 김예지

이제 나는 내가 닿은 또 다른 세상을 말할 차례가 됐다.

"그래... 이런 세상도 나에게 있었지."

청소일보다 덜 흥미롭더라도 내가 나아가고 싶은 세상을 요기 내어 말하고 그려낼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어졌다. 이 일을 사랑하고 계속해 나가고 싶은 마음으로 말이다.


40대의 예지에게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어줘.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삶의 한 부분으로 갖고 가면 좋겠거든. (...) 그리고 고마워. 언제나 나로 잘 살아갈 미래의 나야.


에필로그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태도. 일이라는 거대한 자아를 삶의 한 조각으로 치환하는 의지. 나의 품에 맞게 일하며 적당한 노동을 찾아가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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