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커피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커피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희석시켜 먹던 더치커피 원액이 떨어지자 마음이 달아올랐다.
볼이 빨개지진 않았겠지?
옆 팀 캐비넷을 뒤져 미니 카누 두봉을 찾아 얼음물에 녹이고서야 다시 안정을 찾았다.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기분이 좋아지자 문득 지금의 내 표정이 궁금해졌다.
확실히 나조차도 낯선 안도감이었다. 이렇게 내가 커피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믹스커피가 아닌 아메리카노란것을 처음 접한 건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다.
삼수한 동기 형을 따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 한 뒤 추운 거리로 나왔다.
지금이야 능숙하게 캡을 열고 식혀 마시겠지만 아메리카노도 처음, 테이크아웃도 처음이었던 난 들고 있기도 뜨거웠던 커피를 혀를 데어가며 마셔댔다.
캡에 있는 구멍을 신기해 하는 나를 내려다 보던 형의 눈빛이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경남에 스타벅스 매장이 없던 시절이다.
제대 후 복학한 학교는 카페들이 점령해 있었다.
한 건물 건너 카페가 없는 곳이 없었다.
공강시간 등나무 벤치나 편의점을 헤매던 시간이 카페로 바뀌어갔다.
알바가 이쁘던 작은 카페를 자주 들렀지만 누구 하나 말도 붙이지 못하고 쿠폰 도장만 늘어갔다.
주말 슬리퍼를 끌고 기숙사를 나와 제육덮밥을 먹은 뒤에도 카페를 들러 커피를 마시곤 했다.
바닐라나 모카 같은것이 들어간 메뉴를 시키고선 담배를 피며 어제 마신 술의 숙취를 이야기했다.
다시 슬리퍼를 끌고 기숙사로 들어오던 주말 오후의 비생산스러움이 무언가 청춘인 것 같아 기묘한 위안을 주었다.
짧게 알바를 했던 어느회사는 커피 자판기가 공짜였다.
매일 세잔씩 뽑아 먹었지만 그땐 지금보다 10키로나 말랐었는데 지금은 어쩌다...
요즘은 더치커피를 내려 먹는다. 친구 따라 산 더치커피 기구는 내가 원하는 커피 기준을 모두 충족시켜 주었다.
내가 원하는 커피는 차갑고 진하면서 값이 싼 커피다.
조금의 수고스러움을 더하자 난 더치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회사에 커피를 갖고 오자 선임인 대리가 상상이상으로 좋아했다.
다른팀에 소문을 내서 부끄럽기까지 했다.
커피란 단어는 이제 부끄럽지 않지만 더치란 단어는 아직 부끄럽다.
인당 1만원씩 배정된 차대 예산을 더치 원두로 채웠다.
오늘도 차가운 더치 커피를 세잔이나 마셨다.
요즘 잠이 안오는 이유가 커피를 많이 마셔서 일까? 그러기엔 일단 술부터 줄여야겠지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원두의 맛과 향이 와닿지 않는다.
항상 그랬다. 좋아하는 것들이 어느정도까지만 좋고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았다.
게임도 만화도 영화도 그랬다. 그
래서 속으로 취향을 삼키곤 했다.
원두를 구별하지 못하면서도 커피를 좋아한다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니겠지, 하지만 이런 경계에 서있는 나를 긍정하게 되었다.
구분하지 못해도 즐겨하는 딱 이정도만 좋아하는 거겠지.
아마도 남들 앞에선 더치커피를 마신다고 얘기하진 않겠지만 추운 겨울에도 난 여전히 차가운 커피를 찾고 있다.
시원하게 드링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