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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럼 Mar 10. 2016

디카프리오의 아카데미 수상소감을 보며

디카프리오와 플래시플러드달링스

"레버넌트의 제작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2015년에 우리 모두가 느낀 것은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다는 것입니다. 저희 제작사는 단지 눈을 찾기 위해 지구의 가장 남쪽 끝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기후 변화는 현실입니다.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직면해 있는 가장 긴급한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오염시키는 큰 단체나 기업을 위해 대변하는 사람이 아닌, 모든 인류, 토착민들, 기후변화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수십억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하는 세계의 지도자들을 지지해야 합니다. 우리 후손의 후손을 위해, 그리고 정치적 탐욕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가 삼켜진 사람들을 위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의 이 놀라운 상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이 행성을 당연하게 여겨선 안됩니다. 저도 오늘 밤의 이 상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큰 화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남우주연상 수상 여부였다.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로 10대의 나이에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후 다섯 번째 후보에 오른 그는 누구보다 오스카에 대한 욕망을 강하게 드러난 배우였고 드디어 올해 레버넌트로 첫 번째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단상에 오른 디카프리오는 그토록 바라던 수상 소감을 수상의 기쁨보단 환경보호와 올바른 대통령 지지를 호소하는 메세지에 대부분을 할애했다.

드디어 오스타를 거머쥔 디카프리오


미국에서 시상식과 같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에서 주변에 대한 감사가 아닌 사회, 정치적 메세지를 이야기하는 건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200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마이클 무어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시에게 부끄러운지 알라(Shame on you)고 소리쳤고 조디 포스터는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이 외에도 성적소수자, 여성, 흑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국가정책에 대한 반대, 특정 정당의 지지에 대한 정치적 이야기까지 스타들이 즐비한 화려한 시상식에서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곤 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메시지가 담긴 수상소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변호인으로 청룡영화상을 수상한 송강호가 모든 권력은 국민에서 나온다는 영화 속 대사를 인용했던 것처럼 작품의 주제의식과 닿아 있는 표현은 드물지 않게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결국 작품의 메시지에 기대는 표현일 뿐 스스로 화자가 되어 용기 있는 발언을 던지는 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 사회적인 이슈와 엮이는 것을 기피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라고 하기엔 10년도 전인 2004년 백상 예술대상에서 박찬욱의 과감한 발언은 큰 화제가 됨과 동시에 많은 지지를 받았다.
 
“폭력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었지만 영화에 담은 폭력은 그것이 얼마나 무용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미국의 명분 없는 침략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다.”



박찬욱은 올드보이로 2004년 백상예술대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대중의 지지로 먹고사는 공인들이 더 과감하고 용기 있는 발언을 할 수 있고 그 의제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벌어진다는 건 그 사회가 건강하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눈이 집중된 자리에서 사회 바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건 대중문화의 공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힘이자 책임이고 이를 의제로 이어질 수 있게 공론의 장으로 끌고 오는 건 우리가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일 것이다.


하지만 박찬욱 이후 이런 수상소감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지난 10년간 대한민국에서 표현의 자유와 올바른 의제 설정 기능이 얼마나 퇴행했다는 것인지를 새삼스레 느끼게 한다. 움츠려 드는 공인과 움츠리게 만드는 대중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유도하는 이해 집단들 모두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서 플래시 플러드 달링스의 수상소감은 눈부시다. 언론과 매체에 회자되지 않았지만 이 발언으로 인해 적어도 한 발자국은 대한민국이 움직이게 되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아주 커다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저는 어릴 때부터 제가 동성애자임을 알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더럽고, 이상하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제가 어렸을 때 누군가 그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해 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린 퀴어 여러분께 이야기하고 싶어요. 여러분은 아름답습니다."  


댄스&일레트로닉 노래상을 수상한 플래시플러드달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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