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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럼 Jun 20. 2016

지하철에서 쉼을 찾다.

일상 시시한 이야기(에세이)

지하철에서 쉼을 찾다.

꽤나 땀을 흘렸던 것을 보아 여름이었던 것 같다. 모처럼의 외근 일정이 빨리 끝나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더위에 지쳤기 때문인지 그냥 회사로 돌아가기 싫었기 때문인지 어디서 딱 10분만 눈을 붙이고 싶었다. 딱 10분만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고민의 결론은 지하철이었다.


평일 낮이라 자리는 비어 있을 테고 시간을 맞추고 잠깐 졸은 뒤 다시 돌아오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에어컨도 시원하고 무엇보다 지하철에서 잠깐 눈을 붙인다고 이상해 할 사람은 없으니깐.

역시나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맨 끝자리의 안락함에 앉아 적절한 알람 시간을 맞춘 뒤 고개를 떨구곤 그렇게 잠깐 잠을 잤다. 이동이 아닌 쉼을 위해 지하철을 타다니 탁월한 선택에 감탄하며 생각해 보니 이런 작은 기행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렇게 삭막한데 쉼을 찾는다고???


학생 시절 무료한 주말에 지칠 때 혼자 지하철을 타곤 했다. 이름하여 나만의 2호선 도서관. 마실 물과 읽을 책, 이어폰을 챙기고선 2호선을 한 바퀴 돌며 내선을 순환하는 사이 책을 읽다 음악을 듣고 잠깐 졸다 한강 다리를 건너고 그렇게 무료함을 채웠던 나만의 2호선 도서관.


퇴근길 갑자기 잡힌 약속에 애매한 약속시간을 메우러 다시 지하철을 찾기도 했다. 지하철역 의자에 앉아 때론 음악을 듣다 때론 스마트폰으로 의미 없는 뉴스를 보다 시간이 다 되어 다시 계단을 올라 와 약속 장소로 향했다.


박민규의 소설이었나 하루 종일 지하철을 타는 남자 이야기가 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중간 여정인 지하철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 해도 아무도 그 남자가 가는 곳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어디론가 가고 있다란 합의가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거리감을 유지시켜주는 재밌는 아이러니가 인상 깊이 남았다.

2~3분마다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지하철에선 타인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어디론가 이동 중이고 언젠가 내릴 사람들이다. 나 역시 어디론가 가고 있고 어디에선가 내릴 것이다 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것이다.

박민규 소설 속 남자처럼 이러한 지하철의 삭막함과 무신경함에서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는 것 같다. 정해진 노선도만 반복되는 공간 안에서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오직 목적지만을 바라보는 무신경함이 편안함으로 다가오곤 한다.

애들이 울거나 싸움이 나는 시끄러운 상황들이 생기곤 하지만 지하철 안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리면 그만이니깐. 지하철은 내리면 모든 것이 리셋된다.

세상에나 지하철, 이 얼마나 완벽한 안식의 공간인가?


해피 해피 해피 지하철


이 기묘한 안락함을 긍정해야 할지 고민도 든다. 지하철은 답답해서 버스가 좋다 라는 말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니깐. 무엇보다 만원 지하철에서 맨살의 팔뚝끼리 닿는 건 정말 싫다. 다만 무신경함이 오히려 편안해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의 발견이 재미있다.


남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서 안식을 느끼다니 이러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걸까? 괜찮아 난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보여주며 얘기할 정도로 사회적인 사람이니깐. 오늘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는 부디 앉아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정말 완벽하게 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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