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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럼 Aug 05. 2016

줄리아를 사랑하지 않았어요(영화 데몰리션)

영화 데몰리션

출근길 차 안 남편인 데이비스와 아내인 줄리아의 사소한 다툼을 벌인다. 2주전부터 냉장고를 고쳐 달라 말했다며 왜 내 말에 집중을 안 하느냐는 줄리아의 타박에 데이비스는 여느 때처럼 건성으로 대꾸하며 딴청을 피운다. 이때 데이비스의 시선 너머로 차량이 돌진하고 장면은 병원으로 전환된다. 작은 상처 밖에 입지 않아 의자에 앉아있는 데이비스에게 줄리아의 부모님이 그녀의 죽음을 알리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주인공과 이를 극복하기까지의 이야기. 채 3분이 되지 않는 오프닝 씬으로 관객들은 이 영화의 스토리를 짐작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관객의 예상을 배신하며 데이비스는 말한다 '난 전혀 슬프지 않아요'

 '아내를 잃었지만 전혀 슬프지 않아요'


데몰리션은 주인공 데이비스가 슬퍼하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는 영화다. 감정이 비어있는 싸이코 패스도, 아내에게 악감정이 있는것도 아니면서 슬퍼하지 못했던 그는 영화가 끝나기 전 마침내 아내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그를 슬픔으로 맞닥드리게 한건 두 가지다. 캐런과의 만남. 그리고 데몰리션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장인의 말을 떠올린 데이비스는 자신의 주변을 말 그대로 모두 분해하기 시작한다. 물이 새는 탓에 2주전부터 아내가 고쳐달라 했던 바로 그 냉장고를 시작으로. 화장실 문, 전등, 포장을 뜯지도 않은 커피 머신에 이어 이윽고 그와 줄리아가 함께 살던 집까지 분해하기에 이른다. 정확히 말하면 해체고 파괴다(demolition).


데이비스가 자신의 주변을 분해하는 모습은 다분히 상징적이면서 아주 직접적이다. 그는 자신의 주변을 최소단위의 구조물로 파괴하면서 비로서 그 물건의 실재성을 인식한다.(그는 아내가 죽기전까지 냉장고가 고장났다는 사실과 커피머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일상(회사 집 가족 그리고 아내)의 껍질을 해체시키며 그 안의 실체를 바람봄으로서 아내가 죽었어도 아무렇지 않은 자신을 비로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그러자 슬픔이 찾아 온다. 마침내 아내가 떠나간 슬픔에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그리워 한다.


데이비스가 슬프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줄리아 와의 관계가 이미 끝나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랑하고 있다 생각한 아내를 자신은 사랑하지 않고 있었고 아내 줄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의 부부생활은 껍질만 남은 상태였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 껍질이 해체되자 드러난 관계의 실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데이비스는 줄리아와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슬퍼하게 된다. 


슬퍼하라고 좀!!


데이비스와 캐런, 캐런의 아들 크리스까지 셋은 흡사 유사가족과 같은 정서적 공동체를 이룬다. 아내를 사별하고 아무렇지 않은 남자, 회사 사장과 연애중이나 그에게 아무런 위로를 느끼지 못하는 대마초 중독 싱글맘,'나이는 15살인데 외모는 12살이고 말하는 건 20살'인 크리스까지 확실히 어딘가 한가지씩은 비어있는 이 세인물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어떤 실존적 인물이 필요했던듯 하다.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마주치게 된 이들은 각자의 해체된 내면을 보여줌으로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우린 가끔 가까운 사이가 아닌 낯선 이에게 지나치리만름 솔직한 경우가 있다. 익명성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비로소 스스로도 보지 못했던 내면이 드러나는 것이다.


데이비스와 캐런에게서 성적 긴장감이 드러나지 않는건 매우 상징적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대상화가 되는 존재들이 아니다. 이들은 데몰리션 되어 드러난 내면을 스스로 새롭게 조립해 나간다.


결국 모두가 행복하게 된다는 평범한 해피엔딩은 아쉽다. 데이비스와 크리스에 비해 캐런의 실체는 그리 정성스럽게 분해되지는 않은 것 같다. 불쑥 불쑥 등장해 정서를 건드리며 화해를 시도하는 줄리아의 모습도 영화에 꼭 필요했을까란 의문이 든다.


하지만 큰 눈으로 내면의 껍질을 바라보는 제이크 질렌한의 연기는 영화의 울림을 더욱 깊게 만든다. 불안정해 보이던 눈동자가 점점 또렷해지는 과정에서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비로서 그녀를 슬퍼하게 된다는 아이러니를 완성시킨다.


그리고 이 영화 은근히 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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