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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Apr 02. 2020

(22) 긴급 보육과 엄마의 글쓰기

매일 아지트에 출근합니다


이게 다 망할 '코로나 19' 때문이다.


둘째의 출산 예정일은 4월 26일. 워킹맘인 나는 연차를 다 당겨 써서 대략 한 달 전쯤 '출산휴가'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법정 출산휴가는 총 90일로, 최소 45일 이상을 산후에 배정해야 한다. 즉, 아기를 낳기 전까지 일을 하다 출산휴가에 들어갔다면 산후에 90일을 쉴 수 있고, 나처럼 한 달 전에 휴가를 신청했다면 산후에는 딱 당겨 쓴 만큼 차감되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휴직을 서두른 가장 큰 이유는 '집필' 때문이었다. 작년에 출간된 '시리즈 장편동화'의 2편을 어서 빨리 완성해서 출판사에 넘겨야만 했다. 시리즈 특성상 후속 편을 너무 질질 끌면 독자들에게 잊히기 쉽다.(이미 잊힌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기분 탓만은 아닐 거야.) 정석대로라면 시리즈의 1편을 출간할 때 2편 정도는 미리 완성해둬야 한다. 그러나 나는 곳간이 빈 채로 1권을 출간했고 어리석게도 시간에 쫓겨 허덕이는 중이다.(나처럼 하지 마세요.)


매거진에서 누누이 얘기했듯, 갑작스러운 '재취업'으로 1년 간 '작품'을 쓰지 못했다. (이걸 자랑이라고 계속 얘기한다 흑흑.) 그래서 글을 쓰던 루틴이 무너졌고, 다시 습관을 들여야 하는 마당에 2편에 대한 부담까지 얹어서 무진장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기 낳기 전에 꼭 2편 다 써서 출판사에 넘기렴.  아니면 독자들에게 네 작품은 잊히고 말 거야."


은사님이 보내주신 문자메시지에 정신이 번쩍 났다.(부드러우면서도 촌철살인을 잃지 않는 우리의 왕 선생님) 그래서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출산휴가를 서두르기로 했고, 시일을 보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007 작전'처럼 급작스럽게 재택근무에 돌입했고, 상황이 악화되자 바로 연차를 당겨 '사실상 휴직'에 돌입했다. 그게 3월 초의 일이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작업에 돌입............. 하기는커녕, 육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새삼 전업 엄마들의 힘듦에 십분 공감하며.



꿀순이는 첫 돌이 되었을 때부터 어린이집 '종일반'에 다녔다.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어린 핏덩이를 두고 돌아설 때마다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급작스럽게 결정된 엄마의 '재취업'으로 온 가족이 오랫동안 고생했다. 콧물 한 번 흘리지 않던 꿀순이는 감기, 독감, 수족구 등을 달고 살았고 엄마와 아빠는 주말마다 몸살이 나 드러누웠다. 온 가족이 티는 내지 않았지만 '악악'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다행히 기질이 순한 편인 꿀순이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주었다. 아마, 어린이집을 또 다른 집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선생님들을 가족 중 한 명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눈을 뜨면 어디론가 가야 하는 게 세상의 법칙이라 여겼을 것이다. 아직 무언가를 분간하고 결정할 수 없는 나이이므로 그렇게 적응하는 것 외엔 도리가 없었을 거다.(이런 생각을 하면 안쓰럽다.)


가끔씩 뉴스에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보도할 때마다 불안감은 커졌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선생님들을 믿고 맡기는 수밖에. 꿀순이의 적응력 덕분에 엄마 아빠도 일상에 적응했고, 바라던 꿀꿀이가 생겼다.


꿀꿀이까지 낳고 나면 글과는 더욱 멀어질 것이므로 더욱더 출산 전에 집필을 끝내야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잘 운영되던 어린이집이 휴원에 돌입하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그리고 망할, 휴업 연장은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 이를 어째.



결국 내 앞에 놓인 선택지는 '긴급 보육' 밖에 없었다. 신청을 할까 고민하다가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건강과 직결된 바이러스로 난리인 시국에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게 마음에 걸렸고, 심지어 엄마가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보내는 게 더욱 미안했다. 또, 꿀순이가 엄마랑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떼놓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긴급 보육을 하지 않고 계속 미뤘다. 그대신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노트북을 켜기만 해도 꿀순이는 강렬하게 싫어했다. 엄마 손을 잡아끌며 '이리 와, 티브이 보자'하며 꼭 자기 옆에 나를 앉혀야 직성이 풀렸다. 엄마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욕구에 마음이 짠해졌다. 그러다가도 맥없이 침대로 파고드는 나를 발견했다. 아아! 나를 제발 이곳에서 구해줘요!


무엇보다 글을 써야 했다. 더는 미뤄서는 안 됐다.  글을 쓰지 않는 나를 계속 원망하고 미워했다. 실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인데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나를 미워하는 건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안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동안 쉼 없이 달렸으니 이제 좀 쉬어도 된다, 생각했다.


육아를 통해 깨달은 게 이거다. 내가 아무리 열의를 갖고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 즉, 내가 약한 인간이라는 깨달음.


포기하되, 완전히 포기하지는 말자. 출산 전까지 쓰자. 출산 후에도 쓰자. 쓰고 또 쓰자. 안 써지는 상황 속에서도 쓰자. 쓰다가 포기하다가도 쓰자.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쓰자. 다시 작심삼일이 되자.


결국 지난주부터 꿀순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하루 4시간. 긴급 보육을 신청했다. 물론, 가끔씩 땡땡이는 치지만 되도록 보내려고 하고 있다.




'긴급 보육'으로 달라진 나의 일과란 이렇다.


꿀순이는 아빠를 닮아 '아침형 인간'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덕에 다행히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해줄 수 있게 됐다.(꿀순이를 임신했을 때는 남편이 출근할 때 늘 자고 있었고, 그게 항상 미안했다.)


아빠를 배웅하고, 꿀순이 밥을 차려주면 어김없이 '무기력감'이 밀려온다.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집을 정돈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 입는다. 꿀순이에게 옷을 입히고 유모차에 태워 집 밖을 나선다. 20분 정도 걸어서 어린이집에 도착. 그리고 나는 아지트인 근처 카페로 출근한다.


놀랍게도 나는 운전면허가 없는 '원시인'이라서 이렇게 사서 고생 중이다. 그렇지만 꿀순이를 어린이집에 등 하원 시키는 '산책의 시간'이 무척 소중하다.


산책의 시간


유모차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엉덩이를 흔들며 장난치는 꿀순이를 지켜보는 일도, "벚꽃이 피었네"라는 나의 말에 "버꼬치 펴쪄?" 답하는 꿀순이와의 대화도 눈물겹게 행복하다. 살랑이는 봄바람, 흩날리는 꽃잎에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아, 나는 살아있다! 좀비가 아니란 말이다!



지금도 아지트에서 글을 쓰고 있다. 출산까지 D-14일.


출산과 육아만큼이나 끝을 알 수 없어 두렵고 막막한 게 '글쓰기'다. 14일 동안 얼마나 많은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매일 꾸준히, 습관을 들이는 것. 어떻게든 자리에 앉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노트북을 펼치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시간이라 여긴다.


나의 아지트

코로나 시국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건 참 죄스런 일이었다. 평소처럼 출근을 했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게 아니라서 더욱 죄책감이 든다.(...) 그리고 고민 끝에 엄마는 죄책감을 '글쓰기'와 바꿨다. 아지트에서 멍하니 창밖의 계절을 감상하고, 글을 쓰고, 공상에 빠지는 '커피 한 잔의 시간'. 이 시간 덕분에 나는 엄마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걸, 더불어 '작가'라는 걸 잊지 않는다.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된다. 그래, 이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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