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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Apr 23. 2020

(23) 코로나 시대의 출산

이건 뭐 자가격리 수준

병실에서 그림 그려 폰으로 찍어올려유

"4월 16일 9시 55분, 3500g 남아입니다."


꿀꿀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첫째 꿀순이를 제왕절개로 낳은 탓(?)에 꿀꿀이도 수술로 낳았다. 꿀순이를 출산할 때는 진통을 6시간 겪다가 수술을 했다면, 이번에는 약속된 날에 맨정신으로 걸어가서 배를 째고 낳았다. 이 두개의 경험은 차원이 달랐다. (다음번에 꼭 소개할게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또르르)



8시 30분까지 병원으로 가야했기에 전날 트렁크를 꾸렸다. 시어머니가 꿀순이를 이틀간 맡아주기로 했다.


고통 여행 시작.,.,.

수술 당일 아침, 꿀순이와 시어머니께 인사하고 남편과 함께 여행가듯 길을 나섰다.


진짜 여행이면 좋으련만...또르르


병원은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천천히 걸었는데도 20분이나 일찍 수술실에 도착했고,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간호사 선생님 안내에 따라 속옷을 모두 벗고 입원복으로 갈아입었다. 항생제 알레르기 검사를 한 후, 제모를 하고 관장을 했다. 수술이라 내진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랄까.


침대에 누워 있으니 선생님이 오셨다. 빨리 준비가 되었으니 지체하지 말고 수술에 들어가자신다. 어차피 철학관 같은 곳에서 좋은 날을 받아둔 게 아니었으므로 시간은 상관 없었다.


수술을 준비하는 사이, 남편이 내게 왔다.


"꿀순이 때도 겪었지만 제왕절개는 무시무시한 거구나. 선생님께 주의사항 들으니 무섭다."


병원에서는 언제 닥칠지 모를 1%의 불운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 제왕절개는 피부 조직을 째고, 그 속의 자궁까지 몇겹의 조직을 째는 꽤 위험이 큰 수술이다. 그러니 행여 과다출혈 등의 문제가 생긴다면 목숨을.,..잃을 수도 있다.(실제로 우리나라의 출산시 모성사망율은 OECD국가중 높은 편이다)


덤덤하게 남편과 기도를 하고, 1인실과 2인실 중 어디에 묵을지 등의 이야기를 하며 수술을 기다렸다.(경험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작고 차가운 수술실로 들어섰다.

안경을 벗은 탓에 시야가 흐릿했다. 다행이었다. 천장에 있는 불빛, 의료진들의 얼굴이 모두 흐릿해서 두려움도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새우처럼 구부린 상태에서 척추 마취를 했다. 뻐근하더니 이윽고 차가운 기운이 다리로 이어졌다. 몸이 묵직했다.


순간, 마취가 잘 된 건지 걱정됐다. 곧 배를 가를텐데 아프면 어쩌지? 다리를 움직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엄지 발가락은 꼼지락 거리는 듯 했다.


"항문에 힘 들어가나요?"


간호사의 질문에 괄약근을 꽉 조였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 마취가 잘 된 것이다. 눈 앞에 초록색 커튼이 내려왔다. 수술이 시작된 것이다.


'꿈이야 생시야?'

정신은 멀쩡했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마취 기운 때문인지 비몽사몽했다. 다행히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간호사가 내 손을 다정히 잡아주었다. 어찌나 큰 힘이 되던지.


의사 선생님이 헙헙 거리며 힘겨워했다. 배가 덜컹덜컹 거리더니 아기 울음소리가 났다. 눈물이 절로 흘렀다. 간호사가 휴지로 눈물을 닦아줬다.


이윽고 내 눈앞에 악을 쓰며 울고 있는 시뻘건 핏덩이가 놓였다. 잘 놀고 있다가 불쑥 세상에 나온 게 기분이 나빴는지 목청이 보이게 우는 꿀꿀이.


'네가 사랑이구나. 반가워.'


꿀순이를 낳을 때는 마취가 너무 잘 되어서 꿀순이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주 제대로 꿀꿀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며, 수면마취 덕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봉합이 끝날때 즈음,  잠에서 깼고 이어지는 고통.


으아아아악. 살려줘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무통약을 넣는데도 이렇게 아파도 될까?첫째 때는 이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 절개했던 부위를 다시 째서 봉합하는 것이라 몇배는 더 아프다 들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눈물이 절로 나왔다. 아파서 울어본 게 얼마만이더라?


다행히 내 옆에는 보호자인 남편이 있었다. 내 손을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남편이.


1인실을 선택한 건 잘한 일이었다. 엉덩이 아래 패드를 깔고, 소변줄에 의지한채 이틀을 누워있었다. 뱃속에 있던 찌꺼기들이 핏덩이 모양으로 수시로 빠졌고, 간호사와 남편이 패드를 갈아주었다. 소변통은 남편이 수시로 비워주었다.


그런데.... 남편 동행이 딱 이틀 밖에 안된다 굽쇼?



코로나19 때문에 병실도 조리원도 위생이 엄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입원생활이 이어진 거다.


코로나시대의 출산 및 입원 풍경을 소개한다.


(1) 보호자 2박 동행 가능


보호자와 함께 병원에 들어오면 보호자는 딱 2박만 동행할 수 있다.(심지어 조리원은 출입자체 금지) 꿀순이를 출산했을 때는 6박 7일 입원생활동안 남편이 병실서 함께 먹고 잤다. 조리원에서 출퇴근을 했다.


그런데 2박만 있다가 나가라니요?


자연분만을 했다면 입원기간이 2박 3일이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지만 제왕절개를 한 산모들에게 2일은 소변줄을 빼고 고통스런 거동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다.


침대서 일어서는 것도,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 것도 거의 죽을듯 고통스럽다. 장기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깊숙히 베인 곳은 아물지 않은 상태.


"칼에 찔려 죽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며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에 신음했다.


"아프더라도 움직이셔야해요. 그래야 빨리 회복돼요."


간호사의 말이 야속했다. 이렇게 죽을듯 아픈데 어떻게 일어서서 걷냐구요. 상체를 일으키는 것도 불가능한데 말이에요.


신기하게도 시간이 약이었다. 이튿날 저녁이 되니 몇발자국 걷는 게 가능했고, 다음 날이 되자 입원실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은 집으로 갔고, 나는 2인실로 옮겼다.

 

2인실 침대는 1인실보다 작고 딱딱하고 심지어 수동이었다. 남편도 없는데 1인실에 그대로 있을걸... 후회가 됐다. 다행히 룸메이트가 털털해서 편히, 즐겁게 보냈다.


그러나...마음만은 지옥이었으니.


남편이 없는 그날, 열이 38도를 넘어섰다. 간호사 선생님이 나더러 찜질을 하라했다.


침대에서 일어서려면 몇 분간 낑낑대야 하는 내게, 링겔을 꽂은채 수건에 물을 적시고 짜서 찜질을 하라구요? 못해요, 못해.


말할 힘도 없어 그냥 포기. 결국 진통제와 항생제를 맞았고 그 덕에 열이 내렸다.


남편의 존재가 이토록 소중했구나. 그냥 눈물이 마구 흘렀다. 남편 없이 앞으로 사흘이나 버텨야한다니 콱 코박고 쓰러지고 싶었다. 코로나가 미웠다. 싫었다!!!!


(2) 아기 면회 제한


입원 3일째 되는 날, 드디어 꿀꿀이를 다시 만났다. 신생아실 복도에서의 면회 시간. 간호사가 꿀꿀이를 안아서 서있으면 우린 창밖에서 구경하는 식이다.

원래는 면회시간이 하루 3회인데 코로나 때문에 1회로 줄었다. 그마저도 정해진 시간이 없어 무조건 기다려야했다.


가족이나 지인 면회도 되지 않아 꿀꿀이를 볼 수 있는 건 부모뿐. 꿀순이에게 꿀꿀이 얼굴을 보여주려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입원 3일째 되는 날부터 젖이 돌더니 4일째는 직접 수유실에 가서 수유를 했다. 드디어 꿀꿀이를 품에 안은 거다. 아픔이 잠깐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퇴원을 하루 앞두기 전까지 척추를 펴고 걷는 게 불가능했다. 등에 손을 얹고 주춤주춤...등이 굽은 노인처럼 걸었다.


(3) 가족 직접 접촉 불가


갑자기 꿀꿀이의 얼굴에 솟아 있던 빨간색 발진이 심해졌다. 여러가지 이유를 찾던 중에 혹시 모유와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직수를 끊겠다며 유축해서 모유를 얼려두라했다.


모유팩이 필요해서 남편에게 부탁했다. 짐을 들고 오는 김에 얼굴도 보고 싶었지만 웬걸, 절대 접촉 불가. 1층 원무과에 맡기면 간호사가 딜리버리 해준다는 게 아닌가. 간호사 선생님은 또 뭔 고생이람?


이건 흡사 코로나19  확진자의 삶 아닌가. ㅠㅠ


결국 5층 입원실 복도 창밖으로 남편과 재회를 했다. 손을 흔들며 통화를 하려니 눈물이 났다. 우리 앞에 3.8선이 놓인 것 같았다.


(4) 가족 면회 불가


꿀순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이 정도로 보고싶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코로나 때문에 어린이집이 강제 휴원에 돌입하며 꿀순이를 집에서 돌봤다. 힘들 때마다 꿀순이를 혼내기도 했고, 절로 불평다. 동화를 써야하는 일정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더 조바심이 일었다. 그때마다 남편이 얘기했다.


"출산하면 3주간 꿀순이랑 떨어져 있을거고, 나와서는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 쉽지 않을 거야. 추억을 만든다고 생각해."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불쑥불쑥 화가 나는 건 어쩔수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몹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병실에 누워 있으니 꿀순이에게 화냈던 게 후회돼 눈물이 나고, 꿀순이랑 등하원하며 보냈던 시간이 너무 행복해 눈물이 났다.


사람은 어찌 이리 어리석을까? 지나서야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는다.


아침, 점심, 저녁 수시로 오열했다. 자다 깨서 엄마를 찾으며 운다는 꿀순이, 엄마가 미안해.,.미안해. 엄마는 졸지에 죄인이 되어버린 것 같다.


망할.,.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만 아녔다면 면회가 가능해 하루에 한번씩은 꿀순이를 만날 수 있는데 이게 무슨 이산가족 상봉이란 말인가.


(4) 먹고 싶은 간식도 먹을 수 없다.


꿀순이를 낳았을 때는 남편 외출이 가능했기에 남편이 밖에서 간식들을 사다줬다. 이상하게 그때나 지금이나 요거트와 오렌지주스가 당긴다. 그런데 먹을 수가 없다.


심지어 회사에서 출산을 축하한다며 과일바구니를 보내왔다. 그런데 반입이 안된단다. 결국 집으로 보냈다.

먹지 못할 떡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사진으로 보며 군침을 흘리자니, 욕지기가 나왔다.


"망할 코로나야!!!"



어느덧 출산 일주일을 맞이했다. 


어제부로 조리원에 입성했고, 참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회복되어 지금은 잘 걷고 잘 눕고 잘 일어선다.


3시간에 한번씩 유축을 해야하는 삶에 돌입했지만 꽤 할만하다 느낀다.


꿀순이가 보고싶어 울기보단 사랑스러워 웃게된다. 꿀순이도 씩씩하게 적응한 모양이다. 엄마랑 영상통화할 때마다 "가!!" 소리치고 외면했는데 요샌 뽀뽀도 하고 손도 흔든다. 엄마가 자길 버려두고 도망간 게 아니란걸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리고..,  나의 힐링 포인트 꿀꿀이가 있다.


아주 작고 조그마한 생명체가 내 앞에서 꼬물대는 모습에...그만 감격하고 만다. 어찌나 사랑스럽고 예쁜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 볼수록 반한다.



저 작은 몸으로 이 세상에 적응해 나가려면 얼마나 힘들까? 짠하고 고맙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쁘다.


그렇게 지독한 짝사랑이 또 시작되었다.


코로나19 시대에도 삶은 이어지고 생명은 태어난다. 꿀꿀이의 출산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예쁜 나의 아가들, 지금 순간을 영원히 박제해놓고 싶다.


지금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몰골은 비참한 수준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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