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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Jul 08. 2021

그리스에서 낭떠러지를 만났다

[은유카드] 비행기, 낭떠러지

매일 두 개의 단어를 뽑아 은유 문장을 짓고, 떠오르는 이야기를 두서 없이 옮깁니다.

인생의 낭떠러지를 만났을 때 비행기를 타보는 건 어떨까? 비행기가 착륙한 그 곳에서 다시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딱히 인생의 낭떠러지에 몰려서 비행기를 탄 건 아니었다. 회사 생활이 지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탈출해야 할만큼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막연히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그리스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만 서른 살을 두 달 남긴 10월 초의 일이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한 달 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여행경비는 퇴직금이 있으니 걱정 없었다. 나 혼자, 그것도 한 달 씩이나 여행을 떠난다니! 겁도 났지만 그보다는 설렘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짱도 두둑하다. 영어도 못하는 주제에 어찌 홀로 떠날 생각을 했을까? 그만큼 젊었단 뜻이다.


경로는 '그리스 in, 터키 Out' 이었다. 사실 내가 여행을 택한 이유는 터키의 '가파도키아'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외근을 마치고 혜화역에서 늦은 점심을 먹을 때였다. 김밥을 우걱우걱 입에 넣으며 신문을 펼쳤는데 '위클리 주말판'에 가파도키아 사진이 대문짝하게 실려 있었다. 


영화 스타워즈 촬영지로 알려진 그 곳은 뭐랄까... 지구상에 현존하지 않는 외계행성 같았다. 삐죽 빼죽 솟은 지형들, 모래로 지은 성처럼 온통 진흙 빛이 넘실댔던 그 곳이 나를 잡아끌었다.


여깁니다. 카파도키아.


어차피 퇴사할 생각이지? 여행할 생각이라면 터키는 어때?


또 다른 내가 속삭였다. 그래! 터키에 가자! 예나 지금이나 즉흥적인 나는 그날부터 여행 계획을 짰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정하고 나니 터키에만 머물기 아쉬웠다. 그래서 터키에서 가까운 나라를 여행지에 넣다보니 그리스를 빼놓을 수 없었고, 그리스에 입국해서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를 훑는 코스를 짰다.



여행을 준비하며 또다른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내가 굉장히 즉흥적인 인간인 줄만 아니었는데 여행에 있어서는 꽤나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숙소와 여행지에서 이동할 차편, 비행기 티켓, 페리 티켓까지 미리 끊어뒀다. 표 하나를 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모아야 했는지, 그 수고로움을 생각한다면 내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지금은 안다. 당시의 내가, 원래부터 계획적인 사람이었다기 보다는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불안함을 줄이기 위해 만전을 기하는 중이었음을. 막상 여행지에 가자마자 즉흥적으로 코스를 짜고 마음대로 돌아다닌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자신감이 생기니 본성이 나온 것이다.


여행지의 다양한 정보를 모아 모아 노트 한 권 분량의 책을 만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노트를 보고 얼마나 감탄을 하는지, 놀랍게도 막상 여행지에서는 노트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다. 아 물론, 숙소 이름과 각종 교통수단 정보를 적은 건 유용했지만 말이다.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에티하드 항공 티켓


그리스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도심 아테네로 들어갔다. 드디어 낯선 곳에 떨어진 것이다. 숙소를 찾아가야하는데 길눈이 어두운 나는 결국 택시를 탔다. 나중에서야 숙소가 가까운 곳에 있었고, 택시 기사가 주변을 빙빙 돌아 숙소에 데려다줬음을 알게 됐다.


숙소는 아크로폴리스와 가까운 도미토리였는데 내 자리는 다인실 2층 침대의 1층이었다. 그곳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한 외국인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기에 '사우스 코리아.'라고 '사우스'에 방점을 두고 대답했다. 예상했던 질문이라서 자연스레 답이 나왔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벙찐 내 얼굴을 보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일행들과 자리를 떴다. 살면서 이토록 답답한 순간은 없었다.


그러게, 영어 공부 좀 할 걸.


영어 회화 앱을 들여다보는데 왜 그렇게 슬프고 외로운지. 터덜터덜 걸어 나와서 아크로폴리스에 갔다. 형태만 간신히 보존하고 있는 허물어진 신전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숙소로 와서 피곤한 척 침대에 들어갔다. 절대 내게 아무도 말을 걸지 말라는 듯, 이불로 꽁꽁 감싼 채.


다음 날 새벽, 페리를 타고 산토리니로 들어갔다. 산토리니는 꼭 제주도 같았다. 운전면허가 없는 나는 걸어서 산토리니를 여행할 생각이었는데 나중에야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왜냐고? 아까 말했듯, 산토리니는 제주도 같았으니까. 꽤 컸다는 뜻이다.



같은 숙소에 묵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아울라가 내게 말을 걸었다. 자기는 국제면허증이 있으니 함께 차를 렌탈해 산토리니를 돌아보자고. (당연히 대번에 이해한 건 아니고 발짓 손짓 번역기를 돌려가며 대화한 것이다.)


솔직히 말없이 여행할 생각을 하니 겁은 났지만 단번에 "오케이!"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22살 아울라는 핫팬츠에 검은색 나시티를 가볍게 입고 백팩 하나를 걸치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검정색 청바지에 꽃무늬 후드티, 모자....... 더는 말을 아끼겠다. 누가 보더라도 여행객 포스를 풀풀 풍기는 차림새였다.


(다음날 식사를 하는데 한국 아줌마 일행들이 날보고 반가워했다. 어머, 한국 사람이시죠? 어딜가든 눈에 띄는 꽃무늬 DNA)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울라와 나는 꽤 대화가 잘 통했다. 나중에는 우스갯소리 유머도 나눌 정도였으니까. 그 사이 내 영어실력이 일취월장 해졌을리는 없고, 그저 마음으로, 바디랭귀지로 통한 것이다. 그게 가능하단 걸 깨달았다.


아울라와 헤어진 후, 산토리니에 혼자서 하루 더 묵고 찾아간 곳은 그리스의 '메테오라' 였다. 007 시리즈를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수녀원이 있는 곳.


기차를 타고 산토리니로 향하는 동안 홍콩에서 왔다는 청년이 내게 말을 걸었는데 영어를 못해 그저 연락처만 주고 받고 급히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국제 연애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앞서갔나요? 네네.)


그리스 메테오라 수도원


메테오라에 도착한 후 숙소에 짐을 놓고 택시를 타고 수도원으로 향했다. '이번엔 택시에게 절대 속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에 꼭대기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했다. 각각의 수도원은 생각보다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하나씩 구경하려면 택시를 타고서는 힘들었다. 혼자 걸어서 여기저기 구경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곳은 오픈 시간이 한참 남아 있었다. 결국 다른 수도원으로 가야했다. 그렇게 길을 떠났는데 아무리 길을 걸어도 걸어도 목적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차선 도로 위를 아슬아슬 걸을 때마다 차들이 쌩쌩 달려가며 나를 한 번씩 쳐다봤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부러 당당하게 걸었다.


그때 저 멀리 들판에서 사냥개 한 마리가 나에게 뛰어왔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엄마아!!

아니, 그리스에서 제주에 있는 엄마를 찾다니. 이 무슨 코메디인가. 사실 '엄마'라는 말은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최초의 언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 속에서 엄마를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다행히 주인이 와서 개를 잡아주었다. 나더러 눈빛으로 무슨 말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어 그저 전진만 했다.


그때 막다른 낭떠러지를 만났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근육질 소들이 풀을 뜯어 먹으며 날 쳐다봤단 거다. 분명, 날 먹어버릴 기세의 눈빛이었다.


저거...맛있겠는데?


도망쳐야 했다! 살아야 했다! 우회전 하면 다른 길로 연결됐지만 느낌이 왔다. 더는 가면 안 된다. 이 길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이 길이 맞더라도 포기하자. 이렇게 먼 곳은 혼자 가서는 안 된다.


다시 뒤돌아서서 왔던 길을 내려갔다. 그때 저 멀리에 사람들이 있었다. 구원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반가운 마음과 달리, 나는 쭈뼛쭈뼛 다가가서 지도를 내밀었다.


여기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서툰 영어로 질문을 했다. 가만 보니 일행은 가족이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딸. 그들은 친절히 웃으며 내가 완전히 길을 잘못 들었다고, 우리랑 같이 가자고, 자기들도 거기에 가려던 참이라고 말했다.


모든 게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아까 나는 완전히 다른 길에 들어섰던 것이고, 자칫 고집 부리며 그 길로 갔다가는 아주 길을 잃거나 운이 나쁘면 무슨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국제 미아가 될 뻔 했다.


그리스인 가족이 보내온 사진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이 가족이 꼭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그날 처음 본 그리스 가족은 내게 한없이 친절했다. 자동차 뒷자리를 내어줬고, 수도원에서도 내내 나를 챙겼고, 내가 당황할 때마다 따뜻한 웃음을 지어줬다. 그리고 예쁜 자석을 선물로 사주었고, 헤어질 때는 동네 빵집에서 그리스 전통 파이를 내게 사주었다. 나를 껴안고, 행운을 빈다며 볼에 가벼운 뽀뽀를 해주었다.


수도원이 그려진 자석을 선물로 받았다.


딸과는 그 후로도 몇 번 연락을 나눴다. 알고보니 39살, 이름은 데스포니아. 나보다 9살이나 많은 언니였다.


언니는 나에게 메일과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답장을 보냈고, 몇 년 후엔 내가 펴낸 책과 간식들을 국제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다. 영어가 능통했다면 아마 자주 연락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연락이 끊겼고, 이렇게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누군가 내게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리스'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리스가 관광할 곳이 못 된다고, 신들이 지냈던 터를 복원하지도 않고 대충 놔두고 입장료를 받는다며 불평하지만 나는 옛 터 그대로의 가치마저도 숭고히 여기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나에게 친절을 베푼 그리스인 가족을 잊을 수 없다. 낭떠러지를 만났을 때 나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고, 낯선 여행객에게 애정을 베풀어준 그 가족을 생각하면 그리스가 또 다른 내 나라처럼 느껴진다.


살다가 인생의 낭떠러지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비행기에 올라탈 것이다. 그 곳에서  또다시 길을 찾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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