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중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새로운 부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고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것일까. 6개월 사이에 10번 넘게 이유 모를 고열이 났다.병원에 갈 때마다 코를 찌르는 게 힘들었다. 차라리 코로나였으면 싶은데 어김없이 아니었다.(그러다 올해 1월 초, 기꺼이 코로나 재확진이 되었다.)
회사 근처 내과에 가서 피검사, 소변검사를 했는데 '방광염'이 의심된다고만 하고 딱히 뚜렷한 증상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직장인 종합건강검진을 했는데도 잔잔바리 증세들은 많았지만 '염증' 관련 문제는 없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밤새 열이 올랐다. 언제부턴가 체온계를 안써도 열이 났다는 걸 알 수 있다. 발목, 손목이 아리고 온몸이 콕콕 쑤시며 몸살 증세가 생기면 바로 너낌이 오는 것. 또 열났구나!
일주일 전에 코로나를 겪었기에 코로나일 리는 없지만 병원에 가면 또 코를 찔러댈 것 같다. 가봤자 타이레놀이나 줄텐데, 싶어서 출근부터 했다. 몸이 천근만근 아팠지만 "내 휴가~" 어쩔 수 없는 워킹맘의 비애.
sns에 열이 난다고 글을 올렸더니 친구 신샤님이 또 비뇨기과를 추천했다. 작년부터 날더러 대학병원 비뇨기과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했다. 본인이 나처럼 이유없이 열이 나서 대학병원에 갔더니 신우신염이었고 바로 입원을 했단 거다. 어른이 열이 나는건 심각한 일이라고 ... 그래, 미루지 말자.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대학병원에 전화했더니 하위 진료기관 진료 의뢰서가 있어야 예약이 가능하단다. 그래서 동네 비뇨기과에서 진료를 받기로 했다.
고백하자면... '비뇨기과'는 남자들만 가는 곳인줄 알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도 죄다 이랬다.
전립선, 정관수술, 발기부전, 조루증, 요로결석
어찌 생각나는 게 이것 뿐일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절규) 막상 들른 비뇨기과 진료과목에는 '만성 방광염'을 비롯해 '요실금'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아, 나의 빈곤한 상상력이여. 무식한 자여, 고개를 들라. 그리고 대기 중인 환자들을 보라.
쭈뼛거리며 비뇨기관에 들어갔는데 웬걸!
젊은 남성들이 꽤 많았고 여성들 비율도 꽤 됐다. 내 상상 속에서 비뇨기과를 찾는 건 중년~노년 남성이었다. 그러나 환자를 살폈다니다양한 성별과 연령대가 섞여있었다. 비뇨기과, 너 다시 봤다.
비뇨(泌尿)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오줌을 만들어 배설한다는 뜻이다. 오줌은 남자만 누는 게 아니다. 인간이라면 모두오줌을 눈다. 아아, 왜 이걸 몰랐을까.
한 시간이나 대기한 끝에 진료를 봤다.(비뇨기과는 인기도 많다!) 의사 선생님이 그간 나의 '고열 이력'을 듣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고열이 나는 건 어딘가 안좋단 뜻인데, 소변검사에서 염증수치는 약간 나왔거든요."
그러면서 옆구리를 툭툭 치며 아프냐고 묻는다. 하나도 안 아프다했더니 그럼 신우신염 증상은 아니랬다. 방광염이 심하면 염증이 신장으로 퍼질 수 있다고, 그래서 고열이 나는 건 위험한 거라고.
의사 선생님은 내게 약을 지어주겠다며 당분간 5가지를 하지 말랬다.
1. 과로 (회사 다니면 절로 과로하는데요...)
2. 운동 (2월부터 운동 다니려고 끊어뒀는데...)
3. 음주 (와인 한 잔 정도도 안 되려나...)
4. 커피 (이거 없음 하루 시작이 안 되는데...)
5. 부부관계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까마득해서 원)
그리고 두 가지를 지키랬다.
1. 잘 자기 (새벽에도 말똥말똥)
2. 물 많이 먹기 (얼마나 더 먹어야 하죠...)
그동안 나는 내가 타고난 건강체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기막히게 39살 하반기부터 훅 꺾이며 골골이다. 그제야 느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그리고 마흔부터는 늙음과 죽음을 고찰해야할 나이라고.
그나저나 의사 선생님의 처방은 매우 훌륭하다. 왜냐고? 선생님이 말하는 대로만 하면 건강하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결국 모든 건, 기본이다 기본.
흠흠, 선생니임! 그러니까 저... 내일부터 도 닦으면 되는 거죠?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