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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련 Sep 29. 2018

고향에 가면 듣는 뻔하지 않은 말

보고 싶은 말들


1. ‘그래도 아직 넌 20대가 맞구나.’

가족과 떨어져 도시에 산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설날, 추석은 무조건 고향에 가지만 집에 중요한 일이 있거나 할머니 생신이면 되도록 가는데 참 힘들다. 일단 나이가 조금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직 20대긴 하다.- 버스에서 3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는 게 힘들다. 1시간만 지나도 무릎이 아프다. -왜일까?- 그리고 또 힘든 건, 내가 아직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보기엔 어린 나지만, 사남매의 장녀라는 건 늘 책임감이 붙는 삶이기도 하다. 직장에 다니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고, 결혼자금도 안 모으고 여행을 다닌다고 하니. 어른들이 말하는 ‘현실’적인 생활과 거리가 멀기에 매번 갈 때마다 혼이 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그래서 고향에 가면 가족 외에 친구들보단 선배나 동호회 언니, 오빠들을 자주 만난다. 더 나이가 있으니 내 얘기도 잘 들어주고, 잘 헤아려준다. 그런 편안함과 아늑함, 그리고 재미에 반해 그들을 매번 만난다.


늘 그들은 ‘수련이가 올해 몇 살이지?’ 물어본다. ‘스물여섯이요.’라고 하면 ‘얼굴이나 드립 치는 건 아닌데..’ 라면서 놀림을 받는다. -19금 드립을 잘 친다.- 그러다가도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들,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입 밖으로 꺼내면 조용히 듣고 조곤조곤 조언해준다. 경험을 곁들여서 참 맛있게도 맘을 차분하게 해 준다. 그리곤 꺼낸다.


‘수련이, 그래도 아직 넌 20대가 맞구나. 그런 고민에,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우리는 30대고 또 40을 바라보면 그런 고민을 하기엔 지났고, 또 이미 했었거든.’     

그렇다. 아무리 얼굴이 삭아도, 언니 오빠들이 좋아하는 19금 드립을 치더라도, 마음과 생각은 내 나이에 맞게 하나보다. 그 말에 나는 위로가 된다.


나보다 나이가 든 사람이 봤을 때, 별 거 아닌 일들로 더 고민하고 더 아파하고 더 힘들어하고 그러다 슬퍼해도 충분하다는 것에.


아직 20대니까.



2. ‘네, 수련이 아빱니다.’

자, 그 20대가 아닌 언니 오빠들과 술을 즐겁게 마시고 난 다음 날. 우리 아빠의 ‘아침 먹어라~’라는 소리에 깬다. 아직 위는 알코올로 가득하고. 머리는 숙취로 어질한데 말이다. 하지만 한 숟갈이라도 먹어야 예의니 겨우 일어나 밥을 먹는다. -진짜 죽을 것 같다.- 그러다 잘 먹었다는 말과 방에 다시 드러누우면 저 건넛방에서 아빠 벨소리가 울린다.


‘네, 수련이 아빱니다.’


우리 아빠는 아직도 본인 이름보단 ‘수련이 아빠’라고 소개를 한다. -전화상으로. 업무 중에 그러면 큰일이다.- 그런 전화를 받는 걸 들을 때마다 여전하구나 싶어 기분이 묘하게 편해진다. 진짜 고향, 진짜 내 집, 진짜 가족들과 함께 사는 느낌. ‘수련이 아빠’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 또한 든다.


다른 부모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보통 첫째 이름을 붙여 본인을 말하곤 한다. ‘네, 유진이 엄만데요.’, ‘네, 수빈이 아빱니다.’ 라고 가끔 내 친구 부모님이 하는 말은 들었다. 그건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교복을 입고 멋도 모르고 까불대며 다녔을 때였는데. 이젠 나이도 어느 정도 들고, 멋을 조금 알면서 까불대는 건 차분해졌는데도 그 말을 들으면 시간이 정지된 느낌이 든다. 우리 아빠랑 나는 10년 전 어딘가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땐 그 말에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나이가 드니 책임감이 생긴다.


아빠가 말하는 ‘수련이’는 아빠가 어디 가서 딸 자랑을 할 때 더 당당해지려고, 더 멋있어지려고, 그렇게 좁은 방에서 아빠 전화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을 잔다. -멋있어지기 위한 휴식이다.-


아빠를 소개하는 ‘수련이 아빠’ 이 대명사를 더욱 자랑스럽게 만들기 위해, 오래 안고 가야 할 책임이다.



3. ‘다음 작품은 우리 가족 얘기 써.’

온라인으로 글을 쓴지 5년이 지난다. -이전에도 썼지만, 싸이월드 감성글 정도- 그런 배고픈 일을 계속 하고 있는 내게, 가족이나 친척들은 진로를 바꾸라거나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주제를 던져준다. 늘 사랑, 이별 이야기를 쓰는 내게 더 다양한 소재를 제시하는 거다.


이번 추석엔 삼촌들과 술을 마시며 글을 쓰며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삼촌들은 이렇게 말했다.


‘다음 작품은 우리 가족 얘기 써. 어때? 우리 한씨 집안, 얼마나 웃기고 사건 사고가 많나.’

‘그래, 그거 재밌겠다. 드라마는 아니더라도 시트콤은 될 것 같은데?’

‘맞다야. 우리 한씨 술 마시고 제사 지내서 음식 어디 두는지 10년 째 말다툼하는 것도 쓰고, 너 맨날 술 취하는 것도 쓰고, 노래방 가서 노는 것도 쓰고.’


아빠 쪽 친척들은 내가 독립출판을 했을 때, 한씨 집안에 작가가 탄생했다고 되게 기뻐했다. -공식출판이 됐을 때는 더 좋아했을까?- 늘 농담식으로 얘기하면서도 든든하게 응원해주고 새로운 책들이 나오면 트렌드가 이렇다니, 저렇다니 설명해주는 가족들과 친척들을 보면 감사하다.


우리 가족 얘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으니, 한 번 써보겠다.



4. ‘가족 걱정 말고 너나 밥 잘 챙겨 먹고.’

이런 나레기는 가족들과 신나게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뚝 끊긴다. -자주- 주량을 넘은지 모르고 계속 신나서 마시다 눈을 뜨면 아침이고, 집이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면 눈에 수제비가 두 덩어리 얹어져 있다. 반년 동안 힘든 일 누적하고 명절에 신나게 울면서 푸는 건지, 술에 취하면 늘 운다. -이거 진짜 문제다.- 찌질하고 초라해지면서 점점 정신이 들 때, 술을 못 마시는 미성년자 동생에게 물어본다.


‘누나 어제 또 울었나?’

‘어.’

‘왜 울대?’

‘내가 아나.’

‘아이고.. 아무 말도 안 하고?’

‘몰라. 듣고 싶지도 않아서 안 들었는데.’

‘이 자식이...’


혹시나 아빠에게 말실수 한 게 있어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한다. 그냥 술 조금만 먹고 다니라고, 혼자 사는데도 이렇게 먹고 다니는 건 아니냐며. -도시에선 아주 가끔 그런다. 미안하다, 아빠.- 일단, 어제는 포기한다. 어쨌든 지나간 거고 뱉은 말이 있다면 돌이킬 수 없으니. 다시는 가족들 모일 때 술을 안 먹는다고 다짐하면서 또 마신다. -내년에도 그렇겠지?-


그리곤 이제 정말 집을 떠나야 해서 새벽 첫차를 탈 때, 늘 아빠가 데려다주고 캐리어를 내려주며 말한다.


‘가족 걱정 말고, 너나 밥 잘 챙겨 먹고 잘 지내. 아빠랑 동생 걱정 그만하고, 알았지?’

‘응. 알았다. 아빠도 밥 잘 챙겨 먹고, 건강 꼭 챙겨.’

‘그래, 얼른 버스 타라. 춥다.’


또 별 거 아닌 지나간 슬픈 가족사에 술상 앞에서 꺼이꺼이 울며 하소연을 했나보다. 보나마나 그랬겠지. 우리 가족 잘 살아야 하는데, 나 말고 다 잘 살아야 하는데. 엉엉. 하면서.


다시는 가족들 앞에선 취하지 않겠다고, 울지 않겠다고 마음 굳게 먹고 도시로 돌아왔다. 그런 나의 행동에 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다쳤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내 속이 뜨겁다.


모두 잘 살기 위해, 나 먼저 잘 사는 거.


그렇게 고향에서 선배들과 가족들, 친척들에게 특별한 말들을 선물 받고 온다. 그래서 또 가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보고 싶은 사람들, 보고 싶은 마음들, 보고 싶은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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