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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련 Jul 28. 2022

강원도 촌년이 서울에 오면 뭐라도 될 줄 알았어요.

서른의 회고록 (1)

‘서른이 되면 뭐라도 됐을 줄 알았다.’


20대에 책속에서 만난 저자들은 가끔 이런 말을 했다. 나 역시 서른이 된지 7개월이 지났다. 나는 그런 말을 하기 싫었는데, 결국엔 한다. 정말 서른이면 내가 뭐라도 됐을 줄 알았다. 내 사업을 한다거나 멋진 비즈니스 우먼이나 그냥 하고 싶은 일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 돈도 꽤 벌어서 가족들에게 좋은 거 많이 해줄 수 있는 사람. 금전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사람.


스물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그건 내 자신도 너무나 인정하고 주변 사람들도 가끔 ‘좀 쉬어라.’라고 할 정도였다. 친동생 중 한 명은 ‘누나 대학생 때부터 공부, 대외활동, 알바, 취업준비, 어학연수에 출판도 하고 빈틈없이 살아온 거 알아. 그거에 많은 영향 받아서 나도 열심히 살잖아.’라고 했다. 8년 넘게 나를 겪은 연인이자 남편은 갑자기 밥을 먹다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자기는… 진짜 꾀가 없는 사람이야. 꾀를 못 피워. 매사 정직하고 열심히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말하는 ‘나’는 왜 그렇게 맹렬하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왜 지금 그 기세가 다 사라진 걸까. 그 질문이 폭풍우처럼 몰아치던 날들, 대답에는 참 많은 것들이 엮여있지만, 그것에서 공통점이 몇 가지 보였다. 


일, 관계, 도시생활

그럼 이 3가지에서 내가 겪은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




일이라고 하면 크게 조직에 소속되어 하는 일과 내가 혼자 하는 일로 나눌 수 있겠다.

- 조직에 소속되어 한 일 : 출판, 여행, 교육, 전자 홍보 마케터

- 내가 혼자 하는 일 : 블로그 글(정보, 일기), 유튜브 영상(책 소개), 인스타그램(글) 등 작가&콘텐츠 크리에이터


1. 매년 내가 쓴 일기를 읽으며 한해를 회고하고, 새해를 계획하는 시간이 있다. 약 10년 동안 이어오는 나만의 리추얼인데, 그 속에 아주 큰 게 빠졌다. ‘조직에 소속되어 하는 일’에 대한 회고.


2. 나는 내 사업을 하고 싶어했기에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는 단지 나의 경제적 안정과 경험을 쌓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겪고, 배웠던 것들을 각잡고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과 나의 삶을 너무나 동일시해서 올해 초 그 사건을 겪었을 때 직장을 잃고 내 삶을 다 잃은 마냥 큰 우울과 좌절에 빠졌다는 아이러니.


4.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사업이란 존재가 서서히 흐려져갔고, 퇴근 후에는 꾸준히 운영하던 SNS마저 손을 놔버린 현실이 되었다. 그건 업무 강도가 최고였던 전 직장 스타트업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5. 하고 싶던 게 너무나 많았던 나인데 지금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상태가 너무 적응이 안 된다. 배우고 싶고, 가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은 게 수만가지였는데… 지금은 텅 빈 상태.


6. 내가 혼자 하는 일이 있음에도 회사 일을 잃어서 크게 흔들린 이유는 5번과 직결되는 것 같다. 왜냐면 5번 상태가 2020년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게 없으니 어떤 마음이 들기까지 직장 소속으로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하고픈 것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던 것.


일에 대한 어려움과 문제는 더 집중적으로 내게 질문하고 깊이 들여다볼 예정이다. 



관계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나와의 관계인 듯하다. 그렇게 철벽 같던 일들을 하나씩 깨부시며 살았던 이유는 내 욕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1. 나는 타인을 많이 신경쓴다. 그렇기에 더 세심하게 챙겨주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단점을 고치고 싶어 생각해봤다. 그러다 일기장을 봤는데, 내가 행복한 이유는 ‘타인의 인정’에서 오는 일들이었다. 프로젝트 칭찬을 받아서, 블로그 글 반응이 좋아서, 책 1쇄가 다 팔려서…


2. 직접적으로 SNS를 팔로우하고, 직접 만나 커피나 술을 마시는 것 외에도 어떤 연결지점이 있으면 그것이 관계라고 생각한다. 온/오프라인상으로 어느 순간 나는 사람들 눈치를 너무 많이 보게 되었다. 그 이후 SNS에 글 하나 올리는 것도 조심스러워졌고, 결국 피드 게시물은 방치된 상태다.


3. 아무래도 나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된 사람들에게 멋지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역시 한수련이다!’ 라는 말을 항상 듣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 일이든 작은 이벤트든… 뭘 하더라도 똑부러지고 한수련답게 정성스럽고 기발하기도 하고, 섬세한 무언가가 딱 나타나야 한다는 강박. 이번 결혼식 청첩장 모임에서도 70명 정도 정성스레 손편지를 다 써서 줬는데, ‘역시 한수련이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왜 어깨가 올라가던지. 그런 목적은 전혀 없었고 순수한 고마움을 전하고자 했던 거였는데 말이다. 힘도 못쓰고 골골대는 지금의 모습이나 우울로 범벅된 상태를 들키면 관계가 위태롭거나 끊길 것 같은 이상한 겁이 있다.


4. 결혼 청첩장 모임을 하면서 관계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별일이 다 있었는데, 여기선 말하기 힘들지만 질리거나 실망한 상황이 꽤 있었다. 물론 고마운 사람들이 훨씬 많았지만.


5. 그러면서 왜 그런 생각을 자꾸만 할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답을 찾고, 내 자신과 관계를 탄탄하게 쌓아가야 한다는 걸 언제부턴가 깨달았다.


관계가… 쓰면서 가장 어렵다. 나와 연관된 사람들끼리 사이가 틀어지는 것을 보기 힘들어하고, 관계에 균열이 생기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과하게 챙긴다. 정작 나는 챙기지 못하는 상태. 이건 좀 더 깊숙하게 들여다봐야겠다.



도시생활

약 24년 동안 강원도 삼척, 현재 인구 6만명 조금 넘는 도시에서 살았다. 어렸을 때는 한다리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이라 그런 숨막히는 곳이 너무나 싫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곳이 아닌 곳’을 갈망했고, 대학생 때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시작으로 세계여행을 꿈꿨다. (연애, 현실 등으로 아직 이루지 못했다.) 대학교 4학년 하반기부터 운 좋게 광고 에이전시에 합격 되어 인턴을 시작으로 대도시인 서울생활을 할 수 있었다. 


1. 2016년 8월부터 지금까지 직장은 항상 서울이었는데, 나의 거주지는 인천과 부천에서 벗어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친동생의 대학교, 남자친구 고향, 비싼 집값, 현재 금전적 상황에서 살 수 있는 서울 집 조건이 너무 열악한 이유… 그런 것들로 나는 6년 정도 왕복 3시간은 기본인 출퇴근을 했다.


2. 숨이 턱턱 막혔다. 처음 2호선 신도림역에서 환승한 아침이 아직도 생생하다. 강원도 삼척시 시민들이 다 모인 줄 알았다. 휴대폰도 볼 수 없고, 내 가슴 앞에 팔을 엑스자로 한 상태로 이리저리 지하철 안을 굴러다녔다. 그러다 고래가 물을 뿜어내듯 역사에서 와르르 쏟아지는 사람들 틈으로 2호선 환승을 한다고 여기저기 치였다.


3. 직장 동료들은 정시퇴근 후 서울에서 하는 워크숍이나 운동, 취미생활을 위해 어딘가 다니고 있었는데 나는 집에 도착하면 8시, 야근을 조금이라도 하면 11시가 훌쩍 넘기도 했다. (배차간격도 길어진다.) 저녁 먹고, 집안일, 샤워를 하면 벌써 자정. 하루가 그렇게 끝났다. 새벽 6시 전에 일어나야 출근을 할 수 있으니 급하게 잠을 청하던 날들.


4. 일도 일이지만, 사회생활과 나의 프로젝트로 관계를 가진 많은 이들이 서울에 살았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선 무조건 서울로 가야했다. 예전엔 서울에서 문화 생활도 하고, 줄 서서 맛집이나 카페도 가는 걸 즐겼는데 점점 지쳤다. 막차가 끊기면 기본 3~5만원 정도의 택시비를 지출하며 귀가해야 했고, 점점 크면서 비싼 술과 음식을 즐기다보니 약속 한 번 나가면 기본 10~15만원의 돈이 사라졌다. 이제는 서울 외출이 내겐 큰 맘 먹어야 할 수 있는 게 되어 버렸다.


5. 문화 인프라는 너무 좋은 대도시, 하지만 태생이 강원도 핏줄이라 그런지 자연이 너무나 그립다. 산과 바다, 그뿐만이 아니라 오래된 것들의 풍경이 자주 아른거린다. 빽빽한 빌딩, 쉴틈없는 경쟁, 숨막히는 무언가가 나의 생활을 점점 옥죄어온다. 


이제는 결혼이란 걸 하니, 거주지를 쉽게 옮기거나 정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맘 같아서는 이번 달은 남해에서 살고 다음 달은 여수에서 살고 싶은데… 도시의 장점을 잘 이용해보는 방법, 도시 외에도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일치하는 다른 것을 모색하고 싶다.


이 3가지 외에도 다른 크고 작은 문제가 나를 괴롭혔을 거다. 쌓이기 전에 제대로 배출하는 법도 알았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그걸 알아서 다행이다. 하나씩 차근차근 곱씹어보며 잘한 것은 격렬하게 칭찬해주고, 못한 것은 반성하며 나를 달래보자. 그럼 온전한 나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마흔에 뭐라도 됐을 줄 알았다.’라는 말은 내게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저 주어진 내 삶의 몫을 내 가치관과 속도, 방향에 맞게 살아내면 되니까.


서른이 되어서야 회고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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