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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련 May 05. 2020

엄마와 딸은 평생 적

새로운 업을 위해 내가 거쳐야 할 단계


내가 그렇게 원했던 직장인 출판사를 6개월만에 퇴사했고, 그것을 가족에게 알리기 힘들었다. 하고 싶었던 일 겨우 하면서 그만 뒀다는 것은 뭔가 애처럼 징징대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그런 건 뒤로 넘겨두고 나를 위해서 출판 관련된 일은 절대로 안 하겠다, 다짐하고 회사를 떠났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퇴사 후, 마치 고등학생 때 내 점수에 맞는 대학교와 전공을 고르듯이 매일매일 지옥처럼 내 수준에 맞는 일을 다시 찾아봤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랄까… 내게 어울리지가 않아서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점수로 판단하고 그것에 맞는 것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구직 어플을 3개나 다운 받고 새벽 내내 맥주를 마시며 찾아봐도, 딱히 끌리는 일도, 자신 있는 일도, 단 하나도 없었다.

마침 1년에 한 번 연락이 올까, 말까 하는 동생에게서 안부 메시지가 왔고 대화를 하다 내가 퇴사한 것을 알게된 그는 마침 너무 잘 됐다며 연락하려던 이유를 설명했다. 좋은 일에 대한 자리를 소개해준 것이었고, 나는 합격했다.

기뻐한 것보다는 부모님에게 당당해질 수 있다는 안도감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퇴사 후에도 엄마는 자주 내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고 3시간 후에 문자로 ‘바빴다.’라는 말이나 겨우 받았을 때면 ‘요즘 일 때문에 바쁘다.’라는 말만 하며 3분도 대화하지 않고 끊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엄마는 ‘나는 생각해보면, 니가 코로나 터지기 전에 유럽여행 다녀오고 취업도 좋은 데 되가지고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니 힘들어도 좆같아도 걍 다녀래이. 지금 관두면 니 아무것도 못한다.’라고 현실적이고 마음 아픈 말만 남겼다.

합격 소식을 듣고 약간의 느긋함에 한 시간 정도 조깅을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야,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니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야.”
“어, 연휴인데 안 쉬나.”
“오늘은 쉬고 내일은 일 간다. 왜 뭔일 있나.”
“어, 아니 나, 사실은 하던 일 관두고 있다가 이번에 새로 다른 일 시작한다.”
“야… 니 진짜 내가 일 뭐 같아도 참고 오래 하라고 했제. 왜 그렇게 애가 참을성이 없나.”
“아니 사람들이 힘든데 어떡해. 월 200도 못 받고 바라는 건 많고, 내가 제정신 아닌 사람처럼 자꾸 구는데 어떡하라고. 내가 이러니까 엄마한테 사소한 거 하나 말 못하지.”
“가시나 또 지랄이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취업 원래 안 됐는데 더 안 된다. 전쟁이다. 니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힘들어도 좀 버티면 되지, 그게 그래 힘드나.”
“엄마, 요즘은 엄마 시대처럼 사람들이 폭언하고 이상하게 굴어도 참고 넘어가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잘못된 건 고쳐야 하고, 그게 안 되면 내가 나와야지.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나가는 게 요즘 애들이고, 내가 그렇다. 내 정신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는데 매달 월급 받는 게 그렇게 중요하나.”
“어휴… 진짜 니는 말을…”
“내 이래서 엄마한테 전화 먼저 안 하는 거다. 진절머리 난다.”
“가시나 말을 그렇..”
엄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기다리던 신호등에서 초록불이 켜졌을 때 다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뭐나. 전화 끊겼네.”
“내가 끊은 거다.”
“문디 가시나. 늦었는데 집 드가라.”
“지금 간다.”
“오야. 나중에 또 통화하자.”

엄마랑 나는 매번 서로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다. 나름 내 또래 부모님들보다 젊은 우리 엄마를(나와 21살 차이 난다.) 생각도 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너무나 잘못된 생각이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엄마랑 나는 이렇게 싸울 거다. 그래서 내가 먼저 전화를 걸기 힘들 거고, 엄마가 전화를 먼저 걸어도 ‘니년이 전화를 먼저 안 하니 내가 하지.’라는 말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걱정하고, 욕할 목록을 추가하면서 욕하려고 연락을 끊지 못하고, 목소리를 들으며 괜한 안도감에 잠을 꽤 잘 자리라 생각한다.

용서 받을 만큼 잘못하지 않은 일에 소리 높여 싸우면서, 사랑한다는 말은 내내 묵혀둘지도 모른다. 부러진 마음이 아니라 잘 붙어있는 서로의 마음을 욕하는 사이.

우린 평생 적이면서, 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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