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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Nov 24. 2020

목마름과 세월이 만난 소리

세월이 지나서 다시 만난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를 감상하며  

그녀의 곡은 시간을 거슬러 2002년, 어느 시절에 그 감성에 빠져서 눈물 날만큼 수없이 들었던 곡이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인트로만 들어도 단박에 알아챌 정도로 그 시절의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추억이 깃든 음악이다. 듣고 있으면 다시 그 시절로 기억의 테이프가 감기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도 나는 이 곡을 부른 가수는 정작 몰랐다. 여성 가수라는 것과 이름, 제목만 알 뿐 그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떤 모습과 어떤 분위기로,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 전혀 내겐 음악 이외에는 기억나는 정보가 없다.


방송 매체를 통해서라도 자주 그녀가 등장했다면 아마 자연스럽게 정보를 얻었겠지만, 여러 매체에서 그녀를 본 기억은 내겐 없었다. 내가 찾은 순간과 그녀가 찾아온 순간의 타이밍이 달라서 인지도 모르겠으나 얼굴이 없는 가수가 부른 곡으로만 내 머릿속에는 저장되어 있었을 뿐이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그녀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됐다. 그 프로그램에 첫 출연, 새 친구 신고식으로 그녀가 부른 곡을 듣고서 아! 하고 이 곡을 부른 보컬이 이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 표면적으로 첫 느낌은 내향적인 내음이 짙고, 마른 체형에 꾸밈이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복장에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시선을 맞춰가는 그녀의 모습. 무채색 기운이 느껴졌다.


무반주로 목소리 하나로 그 곡을 다시 담아내는 그녀의 모습 내겐 처음이었다. 귀로만 들었던 그 곡이 전하는 슬픔보다 짙은 음색과 떨림이 느껴졌다. 인고의 어느 긴 외로운 시간을 건너온 사람이 애절한 갈증을 쏟아내는 듯했다.


그녀의 곡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얼굴을 알리지 못하고 곡만 남게 된 사연을 들어보니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들로 인해 음악 활동은 거의 전무했었다고. 상황에 부딪혀서 순탄하게 풀어내지 못한 그녀의 음악에 대한 목마름이 얼마나 컸을지.. 그 심정의 일부가 내 감정선을 자극시켰다. 귀로 느꼈던 곡의 감성과 실제 눈으로 마주하며 듣게 되는 곡의 분위기는 또 다르다. 언어로 전하는 소리와 비언어로 전하는 메시지가 결합될 때 전하는 감성은 또 다른 맛이 난다. 새로이 그녀에게 시선을 맞추며 곡을 감상하게 되니 특별한 감성이 더해지는 듯하다.




최근 시작한 음악 경연 프로에 그녀가 출연했다. 우연찮게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참 반갑더라. 스스로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용기에 응원하고픈 마음이 들어 더 주목해서 보게 됐다. 늦은 밤에 시작해 자정의 시간이 되어서 끝나는 방영 시간이 부담이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시선이 가는 이가 있으니 본방을 시청하는 이유가 된다.


이 프로그램 제작자는 그녀의 무대를 쉽게 공개하지 않았다. 뜸 들이는 의도가 읽혔다. 기다림에 감질이 올라오더라. 어찌 됐건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프로가 끝날 때 즈음 무대에 오른 그녀를 만났다.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스 출처: JTBC // 유미 -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인트로가 시작되고 벌스에서 느껴지는 떨림, 천천히 그 흐름을 따라서 프레이즈를 더해갈수록 열리는 감정의 선은 이전보다 더 굵어지고 짙어진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전과는 다른 깊이의 음으로 이야기를 건네는 듯했다. 그녀가 겪어온 감정을 더 입혀서 전하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더해진 맛인가. 조금 더 진하게 우려진 느낌으로 와 닿았다. 그녀의 무대 결과는 모른다. 방영되지 않은 채 2회 방송은 마쳤다. 또 한 주를 기다려야 한다. 그녀의 무대가 더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녀의 이야기가, 그녀가 담고 있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더 다양하게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녀의 등장이 나는 왜 이토록 반갑고, 자꾸만 마음이 커지는 것일까. 어쩌면 빛을 온전히 받지 못해서 피워내지 못한 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빛을 쐬어주면 더 풍성하게 피워낼 수 있는 꽃인데, 그런 시간을 가지지 못해서 아직 덜 핀 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만 간다. 세월이 지나 이 곡의 주인을 만나고 다시 듣게 되니 그 시절과는 또 다른 감성에 젖는다. 얼굴도 모른 채 곡으로만 알고 있던 그녀의 소리가 좋은 빛을 만나 온전히 아름다운 음악인의 모습을 피어내는 걸 보고 싶다. 그녀를 새로이 기억하고 싶다. 좋은 결과로 다음 무대를 이어서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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