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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식 Jul 25. 2022

세계시민으로 살아 가기

지난달 레드힐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본사가 사무실을 넓혀 이사가면서 전 세계 BU(Business Unit) 책임자들을 초청해 작은 파티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레드힐은 2014년 싱가포르에서 시작한 글로벌 PR 회사입니다. 창업자인 Jacob Puthenparambil(제이콥 푸텐파람빌)의 이력만 봐도 이 회사의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40대 초반의 인도인인데, 영국에서 공부했고 미국과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에서 PR & Communication 경력을 쌓은 뒤 싱가포르에서 창업했습니다.


레드힐 본사 인원은 70명이 좀 넘습니다. 새 사무실은 천장이 높아 시원했 지정된 자리 없이 아무 책상에서나 일을 하도록 해 효율을 높였습니다. 구성원들은 다양했습니다. 터번이나 히잡을 쓴 이도 있었고 아시아인이 많지만 백인, 흑인 등 인종도 다양했습니다. 지역별로 북유럽, 남유럽, 미국, 호주, 홍콩, 인도네시아까지 온 세계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았습니다. PR 업계가 대부분 그런 것처럼 여성들이 많았고요. 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사무실 곳곳에 있는 레드힐의 상징색인 붉은색과 잘 어울렸습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어와 중국어, 타밀어를 모두 쓰지만 영어가 공식적인 공용어입니다. 도로 표지판도 모두 영어로 돼 있습니다. 저는 미국 LA에서 특파원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싱가포르 도로와 표지만은 외양만 보면 미국과 거의 같습니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미국인 투자자라면 서울보다는 싱가포르가 더 편하지 않을까? 왜 수많은 글로벌 회사들이 싱가포르에 아시아 본부를 두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레드힐은 전 세계 테크 업계의 현황과 VC 투자 동향 등에 관해 정기적으로 동영상과 팟캐스트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라는 책으로 국내에서 세계여행 붐을 일으킨 작가 한비야 님은 오래 전부터 우리도 '세계시민'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가 평평해지면서(토머스 프리드만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했던 말이죠.) 국경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세계 어디서나 자기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으로 변해 가고 있죠.


세계시민이 된다는 건 단순히 영어를 쓰고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하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일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다양성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하고,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꿈이 필요합니다. "Don't be evil"이라는 기업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던 Google은 지금은 "How to help the under-representative(약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다양성 속 평등과 융합)" 같은 가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Google이라고 이윤을 추구하지 않겠습니까만,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이윤보다는 이런 가치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선한 목적을 추구하면 더 많은 사람들(소비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다양성과 융합이 구성원들의 숨은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 결국 한 차원 높은 성과를 만들어낸다고 믿기 때문입니디.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이런 점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아예 실리콘밸리나 유럽, 동남아로 나가서 창업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계시민으로 살겠다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합니다. 폴란드인으로 한국에서 살면서 'Seoul Startups'를 운영하고 있는 마르타(Marta Allina)는 한 영상에서 '한국말을 아무리 유창하게 하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도 한국인들에게 자신은 여전히 외국인'이라고 말합니다.(관련 영상) 아픈 지적입니다. 우리 사회가 인종이나 출신 국가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더 열린 사회로 가지 못 했다는 뜻입니다.


최근 한국의 이미지가 아주 좋아졌고 서울, 부산, 제주 등등 다수의 한국 도시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많은 레드힐 식구들도 한국에 오고 싶어했고 몇몇은 이미 여러 번 한국을 와 봤다고 했습니다. 특히 한국 음식 마니아가 많았습니다. 갈비와 삼계탕 같은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메뉴 뿐 아니라 사찰음식과 회까지 좋아하는 한국음식으로 거론됐습니다. 본사 Managing Director인 Natalie는 싱가포르 한인 마켓에서 김치를 사서 김치찌개를 직접 끓여 먹을 정도라고 했고 홍콩 지사 책임자인 Belinda는 "간장게장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오른쪽 두 번째가 김치찌개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Natalie. 배우 현빈의 '찐팬'이기도 합니다. 왼쪽에서 네 번째는 간장게장이 최애 한국 음식이라는 Belinda입니다.


한국이 점점 더 매력적인 국가가 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찾고 더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 하는 '5천년 역사의 단일민족'은 우리의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배타적이라는 속성이 필연적으로 스며 있습니다. 또 단일민족을 강조하다 보면  때로 '우리 것이 최고' 또는 '우리 것만이 최고'라는 잘못된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세계는 평평합니다. 이제는 우리만의 틀을 깨고 거기에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기'라는 덕목을 더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나라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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