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구나 국제 회의에서 어떻게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공식 회의 자리나 논의 과정이 공식적인 의사 결정이 확정되고 있지만, 그러한 의사 결정은 회의 시작 전에 힘 있는 국가, 관련 의장단 등 사이에서 많은 비 공식 논의를 통해서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 최종 단계에서 의사 결정을 공식화한다는 점이다.
굳이 국제 기구나 국제 회의뿐만 아니라 세상사가 대부분 그런 식으로 결정되어 가기 때문에 이러한 의사 결정 과정에 소외된 사람들이 되지 않기 위해 권력의 중심으로 점점 힘과 사람이 모이는 것 같다.
1990년대 말, ITU에서 한참 3G 이동통신 표준화가 진행되고 있을 무렵, 갑자기 중국이 대거 대표단을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소그룹 의장을 맡아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국가대표단으로서 우리나라의 영향력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나름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총회 의장은 내가 담당하고 있는 그룹은 그 임무를 다 했기 때문에 이제 해체를 하고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소그룹을 구성하여 중국 대표에게 의장을 맡기고자 한다는 발표를 함으로써 난 갑자기 소그룹 의장 자리를 잃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내게 내 그룹이 새로운 임무를 계속할 수도 있는데 총회의장의 이러한 의사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아마도 막 부상하던 중국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그리 결정한 것 같다고 조심스러운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몇 년간 활동을 통해서 돌아가는 분위기도 알게 되었고 나름 중요 인사 중 한 명이 되었다고 막 생각하던 참에 이러한 변화에 낭패감을 느끼며 개인적으로 총회 의장에 대한 불쾌감도 갖게 되었다. 그런 마음 한편에서는 앞으로 뭔가를 더 해 봐야겠다는 투지를 속으로 새기면서.
몇 년 후 더 큰 그룹의 의장을 하면서 소그룹을 구성할 때 해당 소 그룹 의장들이 더 이상 나와 같은 낭패감이나 개인적인 불쾌감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일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때의 경험이 소중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