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고유한 세계를 지켜주는 예술가적 태도
# 아이들이 삼킨 시간의 힘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과 재미는 근육을 키우고, 생각의 힘을 자라게 하고, 베프를 만들고, 즐거운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서적 기억’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세계(판타지)를 맘껏 헤엄치면서 마음에 새기는 ‘즐거운 기억’ ‘신났던 움직임’ 문제를 만들고 푼 ’도전의 기억’ 사다리를 타며 천정에 머리를 닿아보았던 아찔한 ‘몸 씀의 기억’ 친구가 좋아하는 토끼풀을 찾아 전해 주었던 ‘마음 씀의 기억’ 등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살아 갈 힘의 원천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기억들은 몸 속 생각 속 어딘가에 저장 되었다가 필요할 때 불쑥 튀어 나와 아이들을 지키고 보호 해 줄 것이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맡으며 몸의 감각이 살아있게 한다.
# 떠나는 마음
하루 활동이 끝나갈 때 즈음 ‘아빠가 늦게 왔으면 좋겠어요’ ‘이거 조금 더 하고 가도 돼요’ ‘다음 주에 좀 더 빨리 와서 이것 계속해도 되지요’ 한다. 그리고 먼저 와서 놀고 있거나, 먼저 와있는 고무고무를 향해 달려와 퍽 하고 안긴다. 아이들과 잠시 쉼의 시간을 가져야 되는 날,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만 헤어짐의 의식을 노트에 글. 그림으로 표현한다.
“마지막 날 싫어!” 민재는 눈물이 바다가 되는 그림을, 로한이는 분홍색 하트가 깨지는 그림을, 선준이는 눈물비가 내리는 장면을 그렸다. ‘마지막 날이라서 못 만나는 건 속상해’ 하고 지유가 글을 쓴다. “여기 이름이 뭐예요?”
“퓨,처,랩” 선준이가 노트에 또박또박 퓨처랩을 쓴다.
“퓨처랩은 왜 쓰는 거야?”
“기억하고 싶어서요.”
# 잘 놀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것은 아이들을 어른의 세계로 초대하거나, 어른이 아이들의 세계로 방문하는 서로 주고받음이다. 아이들은 놀면서 어른이 되고 어른은 놀면서 아이가 된다. 6~7세와 60세가 만나도 어색하지 않음은 서로를 믿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랑한 생각과 어른의 단단한 손끝이 함께 할 때 새로운 것이 만들어 진다. 어릴 때 할아버지와 나는 그렇게 놀았다.
“할아버지 연 날리고 싶어요”
“대나무 구하러 갈까~”
이제야 알겠다. 내가 왜 아이들과 이렇게 놀 수 있는지? 할아버지에게 배운 것 이었다. 놀아 주는 어른 말고 같이 노는 어른이 이곳저곳에 많이 있다. 놀리는 것이 아니라 노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이 더 많이 아이들 곁에 있으면 좋겠다. ‘무엇하고 놀아야 할까?’보다는 ‘왜 놀아야 할까?’를 ‘어떻게 놀까?’보다는 ‘어디에서 놀면 아이들이 더 재미있을까?’ 고민하다보면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자기를 발견한다. 그러고 나서 인사하고 헤어진다. “잘 놀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