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자들>
잘 생긴 동생 청년들이 나오는 신데렐라식 성장 로맨스 드라마 <상속자들>을 보다가 문득, 생각한다. 왜 두고두고 마음이 쓰라린 첫사랑의 주인공은 모두 생머리의 말간 얼굴에 컨버스를 신은 소녀 인가? 한껏 시간과 정성을 들여 머리를 말고 밤새 춤을 추어도 발이 아프지 않은 마법의 유리구두를 신은 안데르센의 오리지널 신데렐라는 이제 먹히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이 시대 한국의 이삼십 대 여성을 대변하여 나는 좀 억울해진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선천적으로 약간 모자란 듯한 하체의 비율과, 어깨가 좁은 거지 결코 머리는 크지 않다고 우겨야 하는 두상의 크기와 물만 마셔도 불어나는 듯한 지방과 하루하루 씨름하며 살아간다. 누구누구가 써봤는데 좋다는 화장품을 신주 모시듯 공경하고 받들며 자기 전 꼼꼼히 두 번 세안 후 팩을 하고 일어나지만 아침이면 취업 안 되는 인생만큼 우울한 크기의 뾰루지를 가리기 위해 몇십 분의 사투를 벌이고 아이펜슬이 자꾸 미끄러지는 두툼한 답답한 눈두덩 때문에 눈물이 난다. 발열되는 내복을 입어도 모자랄 판에 스타일 신경 쓰느라 갈치 비늘보다 얇은 스타킹으로 아이슬란드 무색한 추위를 버티고, 앞 뒤로 까지고 물집 생겨도 여자의 자존심인 힐을 내팽개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알고 보면 정말 괜찮은 인간인) 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 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보여야 하는 상대는 직장 상사, 엄마의 친구, 연애와 결혼이라는 인생 중대사로 가는 문을 열어젖힐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남자라는 동물까지 참으로 방대하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연애하여 친구들 중 일 번 타자로 결혼한 실질적으로 아줌마인 나는 아주 조금, 약간, 예외이긴 하지만, 직업이 무엇이건 나이가 몇이건 한국의 여성은 끊임없이 자신을 다듬고 꾸며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꾸미지 않은 듯한 얼굴에 다른 연기자들에 비하면 조금 살집이 있어 보이는 데다가 무개성한 티셔츠에 진, 컨버스 스니커즈 일색인 은상이 늘씬하고 스타일 좋고 완벽하게 사랑스러운 화장술을 보여주는 라헬 (김지원 분)이나 보나 (정수정 분)를 제치고 상속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주인공인 것이 솔직히 조금 열 받는다.
물론 한 편으론 하는 짓이 사차원이면 비주얼은 전지현이거나 성적이 탑이 아니면 몸매라도 탑이어야 용서받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괴로운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차원에서라도 이러한 비 신데렐라 캐릭터가 신데렐라인 스토리는 장려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알바 후에 다른 알바 하며 뛰어다니다가 편의점 앞 플라스틱 테이블에서 잠들어도 예쁜 그대들이여, 안 맞는 옷에 몸을 끼워 넣기 위해 저녁 굶고 방세 내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 월급 모아 시기적절하게 신상 구입하며 아침엔 뛰고 저녁엔 요가하는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노력하는 이들이여, 선택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