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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bysparks Nov 15. 2019

모유가 옳고, 분유가 그르지 않은 것처럼

백 명의 아이가 있다면 백 개의 육아가 있다

단호를 데리고 병원을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얼굴만 보고 같은 얘길 했다.


"식탐이 많은 아이에요."

점쟁이도 아니고, 의학적으로 배곯이 넓은 아이는 눈코입이 특정하게 생긴건가 신기했다. 실제로 단호는 많이 먹는 신생아였다. 여러가지 이유로 출산 후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신생아중환자실에 들어간 이유는 이유고, 그것과 별개로 아이의 면회를 갈 때마다 '아이가 잘 먹어요' 소리를 들었다. 중환자실에 있던 내내 마음이 무겁고 좋지 않았지만, '잘 먹는다'는 말 만큼은 위안이 되었다. 조리원에서도 '아이가 배가 많이 고파해서 보충했어요' 란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중환자실에 있었던지라 한동안 직수를 하지 말라하여 아이를 낳은 후 3주 가까이 젖을 물려보지도 못해 걱정이었다. 젖병을 먼저 문 아이는 엄마 젖을 물지 않는다는 말이 많아 하루하루가 갈수록 불안했다. 병원에서 직수 승인이 떨어졌던 날 떨리는 마음으로 젖을 물렸는데, 단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젖을 앙 물고는 힘차게 빨았다. 눈물나게 고마웠다.


문제는 단호가 아니라 나였다. 모유가 적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출산의 고통만 걱정했지 모유가 적거나 하는 문제는 뒷전이었다. 쿨한 척 모유 안 나오면 분유 먹이면 돼 나도 분유 먹고 컸는데 이렇게 건강하다고 했었는데, 막상 남들 다 나오는 모유가 나는 나오질 않으니 속상했다. 조리원에 있는 내내 유축을 할 때마다 쥐어 짜고 짜내도 50ml 많아야 70-80ml 밖에 차지 않았다. 200ml 가까이 나온다는 젖병 가득 모유를 담아 신생아실로 가는 엄마들을 보면 이게 뭐라고 주눅이 들고, 스트레스가 쌓였다.


이러나 저러나 사람들은 "물리면 나온다"고 했다. 의사도 조리원 선생님도 완모한 선배 엄마들도 모두 그랬다. 일단 자주 물려라 물리면 는다. 모유가 적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으려했)고, 밤낮없이 단호에게 젖을 물렸다. 모유가 적으니 분유와 혼합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하루에 두 번 자기 전과 낮에 한 번으로 정하고, 나머지 수유는 되도록 모유를 고수했다. 빠는 힘이 너무나 좋은 단호 덕분에 젖꼭지가 헐고, 가슴이 너무 아파도 입술을 깨물며 물리고 물리고 물렸다. 날이 갈수록 단호도 커가고, 단호의 입과 소화능력이 성장하면서  먹어야 하는 수유양도 늘어갔지만, 어쩐지 내 모유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모유를 집중적으로 주는 낮에는  수유를 하고도 늘 몇 시간은 울고불고를 반복했다. 나는 애써 괜찮은 척 "물리면 나온다"는 믿음으로 계속 해서 모유를 고수했고, 아기가 우는 건 꼭 배가고파서 만은 아니라고 믿었다.


이런 글을 봤다. "우리 애가 예민한 게 아니라, 저와 저희 가족들이 아이를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던 거더군요." 낮에 아이에게 분유를 더 준 날 알게 되었다. 오후마다 저녁마다 울보에 뗴쟁이로 만든 건 나였구나. 단호는 분유를 먹은 후에는 눈에 띄게 평화로워보였다. 징징대기도 했지만 예전처럼 믿도 끝도 없는 울음이 아니었다. 이렇게 배가 큰 아이를 내가 계속 굶겨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미안해졌다.


많은 육아서를 읽었던 건 아니지만, 아이가 울 때마다 '원더윅스'니 하는 생각을 하며 배고픔만이 아니라고 여겼었다. 주변에서 아이가 울때마아 "배가 고픈가보다"라고 하면 왠지 나도 모르게 예민해져 그게 아니라고만 했었다. 쿨한 척 했지만 어쩐지 모유를 먹이는 것이 내 할 도리를 다하는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모유가 그렇다. 엄마에게 모유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물질적인 베품이기도 하고, 마치 모성애의 척도로 느껴질 만큼 의무감을 주는 무언가다.


생각해보면 내 아이를 보고, 아이가 원하는 걸 주고 아이의 표현에 귀기울여야 했는데 내 아이 한번 본 적 없는 육아서와 아이와 나 모두에게 득이 되지만은 않았던 의무감 때문에 아이를 힘들게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옳고 그른 게 있을까. 모유가 옳고 분유가 그른 것일까. 울리지 않으면 사랑이고, 울리면 방치일까. 백 명의 아이가 있다면 백 개의 육아가 있을 것이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의 인생이 있는 것처럼. 그걸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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