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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bysparks Jan 12. 2019

[D+4] 스미냑은 똥물이 아니군요

친절한 발리 파도

단호 덕분에 새벽 같이 깬 남편이 한국에서 가져온 조깅화를 꺼냈다. 가벼운 옷차림에 멋지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니 발리에서 조깅이라니. 두 단어만으로도 너무 근사한 일이 아닌가. 생각보다 금세 돌아온 남편이 오늘 서핑을 배우러 가야겠다고 했다. 비치에서 이름이 '조니워커'리는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싼 가격을 부른 모양이다. 게다가 이름이 조니워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위스키다.


단호를 둘러 메고 꾸따비치로 나섰다. 비치에는 서핑 강습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다니면 '서핑? 서핑?' 하며 우리를 쫓아온다. 어제도 비치에서 만난 베테랑 서핑 장사꾼이 있었다. 그는 우리를 비치 의자에 앉힌 후 모래 바닥에 글씨를 써가며 흥정을 했다. 처음엔 300k(24,000원)을 썼다가 우리 표정을 보더니 300k을 지우고 200k(16,000원)을 썼던 남자다. 우리를 보자마자 곧바로 기억하곤 지루한 서론 없이 이른 아침이라며 150k(12,000원)을 불렀다. (역시 베테랑이다.) 우리는 조니워커 할아버지 대신 내 친구 남편을 닮은 남자네서 강습을 하기로 했다.


작년 양양에서 서핑을 배웠었다. 패들링과 테이크오프에 대한 기본 지식은 있지만 2초 이상 서진 못했고, 보드에 여러 대를 얻어 맞은 뒤 바닷물을 잔뜩 먹고 물에서 나왔던 기억이 난다. 5만원을 주고 동해바다에서 배웠던 서핑을 단돈 12,000원에 발리바다에서 배울 수 있다니 아주 만족스런 조건이었다. 고맙게도 단호가 자주어서 비치에 앉아 남편의 서핑 강습을 구경했다. 남편은 초반부터 테이크오프에 성공해 보드 위에 우뚝 섰다. 한 시간 정도 강습을 받고 나온 남편은 "양양과 달리 파도가 아주 친절하다"고 말했다.  

 

물놀이 후엔 역시 라면이다. 숙소에 돌아와 한국에서 가져온 신라면으로 뽀글이를 해먹은 뒤 스미냑으로 향했다. 꾸따에 3일 정도 있다 새로운 동네에 가니 기분이 좋았다. 가이드북 표현처럼 청담이나 신사동이라는 말로 딱 떨어지는 곳은 아니지만 투박한 꾸바와 다른 세련된 바이브가 있었다. 예쁜 비치웨어와 서핑용품을 파는 편집숍과 근사한 카페들이 늘어선 Kayu Aya로드를 걸었다. 결혼 전이었으면 ‘분위기에 취해 이것저것 질렀을 수도 있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적어도 당분간은 예쁜 옷이 필요없다. 아기띠를 메면 내가 뭘 입었는지 보여줄래야 보여줄 수가 없다. 단호 얼굴이 닿았을 때 부드러운 면티와 편한 바지가 이곳에서의 유니폼이 될 것 같다. 생각해보니 어차피 원피스 같은 건 가져오지도 않았다.  


길 끝까지 걷자 스미냑 비치가 나왔다. 바다는 압도적이었다. 발리에 오기 전 발리에 다녀왔다는 몇몇의 사람들게에 '스미냑 비치는 똥물'이라는 말을 하도 들어서 을왕리 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오밀조밀한 꾸따비치와 다른 웅장함이 있었다. 해변은 마치 사막처럼 건조한 바람이 아주 아주 시원하게 불고, 먼 바다는 거대했다. 역시 여행지에 대한 남의 말은 믿지 말아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궁금하면 직접 가야한다.

 

저녁은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마데스와룽(Made's Warung)에 갔다. 그때 우리 기분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정말로 맛이 별로 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훌륭한 맛은 아니었다.


단호를 재우고 침대에서 맥주를 마시며 남편과 이후 일정을 상의했다. 3일 후면 숙소를 옮겨야 했다. 다음 행선지는 남쪽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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