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랜차이즈 Fipper
남편이 아침 일찍 마트에서 아침을 사왔다. 아저씨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오리지날을 선호하는 나와 달리 맛의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는 남편은 노란색 수박과 함께 시리얼, 그리고 흰 우유가 아닌 초코우유를 사왔다. 덕분에 난생 처음으로 초코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었다. 초코우유랑 먹은 시리얼은 초코 시리얼을 흰 우유에 말아보은 것과 거의 똑같은 맛이었지만, 노란색 수박은 화려한 색에 비해 밍숭맹숭했다. 수박은 역시 빨개야 제맛이다.
오늘은 세 식구가 모두 함께 비치워크에 갔다. 오늘은 용기를 내어 유모차를 밀고 나가봤다. 좁은 길에 중간중간 인도가 끊겨 있지만 남편과 함께 있으니 영차 영차 들어올리면 된다. 여전히 덥지만, 이젠 제법 길이 익숙해서 마음이 힘들지 않다. 남편의 허름한 바지를 가르키며 '팬츠, 팬츠' 라고, 자기 가게에 들어와 바지를 사라고 조르는 옷 가게 아저씨를 지나, 미국에서도 봤고, 마카오에서도 봤고, 서울 롯데타워에서도 봤던 하드록 카페를 지나, 꾸따비치를 왼쪽에 끼고 베스킨라빈스, 스타벅스, 요시노야, 토니로만스까지 온갖 글로벌 프랜차이즈 가게들을 지나면 비치워크가 나온다. 비치워크만 오직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물론 그 안에는 또 다시 온갖 글로벌 상점들로 가득하다. 하겐다즈, H&M, 버켄스탁, 쟈니스로켓, 아디다스 등등. 하지만 미국에도, 도쿄에도, 홍콩에도, 서울 우리집 앞 롯데몰에도 있는 그 상점이 보이면 또 들어가게 되는 게 사람 마음.
돌아오는 길에 오직 발리에만 있다고 믿었던(네이버에 치면 한국 홈페이지가 오픈했다) 비치샌들, 일명 쪼리 숍 Fipper에 들렀다. 오기 전 한국에서 뭔가를 사려고 하다가도 "됐어, 가서 사"하며 그냥 온 물건들이 꽤 된다. 그 중에 하나가 쪼리였다. 70K(5,000원)부터 시작되는 저렴한 수십 개의 쪼리들로 매장이 가득차 있다. 사이즈별로 알록달록한 다양한 쪼리들이 매달려 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참을 뚫어져라 쪼리들을 쳐다보다 난 가장 베이직한 모양의 살구색 쪼리, 남편은 수박색 바탕에 진한 벽돌색 끈이 달린 쪼리를 어렵게 골랐다. 아기가 있는 우리를 보고 직원이 3개를 사면 하나가 공짜라는 프로모션을 소개했다. 솔깃한 제안이지만 우리 애는 아직 제대로 걷지 지 못하는데다 덤으로 주는 하나를 다시 고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힘겨워졌다. 상술에 넘어가지 않고, 쪼리 두 개만 사고 나왔다고 좋아했지만, 나중에 무척 후회했다.
아, 다시 생각해도 상당히 괜찮은 제안이었어.
돌아오는 길에 두두둑 두두둑 소리를 내며 조금씩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숙소 풀장에 가기로 했다. 아들에겐 미안했지만, 비가 오는데 수영장이라니! 너무 즐거운 일이었다. 숙소 중앙에 아담하고 귀여운 풀장이 있다. 크기는 작지만, 선베드 파라솔까지 갖출 건 모두 갖췄다. 우리 숙소에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많았다. 은퇴한 뒤 시간을 보내는 호주 노부부 같았다. 아침에는 숙소 앞 테라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책을 보고, 낮에는 풀장 선베드에 나란히 앉아 또 책을 읽고, 밤에는 일찍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는 일과를 보냈다. 아침, 점심 지나치며 눈인사를 하는데 단호를 보고 늘 인자하게 웃어주셨다. 좁은 풀장에는 호주 노부부, 동유럽에서 온 듯한 젊은이 여행객, 몇일 전 우리 옆옆 방으로 온 일본가족 등등이 번갈아 자리를 차지 하곤 했는데, 비가 오자 풀장이 텅 비었다. 하긴 비오는데 누가 수영을 하겠나. 수영복으로 갈아 입은 뒤, 단호의 보행기 튜브를 챙겨 풀장에 들어갔다. 단호는 물을 좋아해서, 풀장에 넣으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거나 손으로 심하게 튀겨 자기 얼굴을 다 적시고 놀았다. 비가 오니 이게 수영장에서 튄 물인지,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인지 구분이 잘 안 갔다.
아, 시원하다.
저녁은 고젝으로 도미노 피자를 배달시켰다. 피자를 놓은 침대 위로 단호가 돌진하지 않게 하기 위해 단호만 쳐다보며 정신없이 먹었더니 피자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유난히 징얼대고 보챘던 단호는 생각보다 얌전히 잠이 들었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있어주는 단호가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