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는 서핑 강습과 풀빌라 집 구하기
"와썹!"
며칠 전 남편이 서핑을 배웠던 꾸따비치의 서핑 아저씨와는 이제 얼굴을 보면 '와썹' 같은 친근한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됐다. 남편은 나를 가르키며 "오늘은 와이프 차례야." 라고 말했고, 아저씨는 "노프라블롬"이라며 우리가 앉을 의자를 대령하는 동시에 부하로 보이는 사람에게 강사를 데려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곳의 VIP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통 꾸따비치를 활보하는 현지 서핑 강사들의 외모는 대부분 새까맣게 탄 마른 몸에 머리가 단발이거나 장발이며, 자연과 자유를 사랑하는 눈빛을 가진 젊은 남자인 경우가 많다. 강사를 불러오는 데 시간이 살짝 지체되는 듯 하더니, 잠시 후 등장한 나의 선생님은 '강사'라는 단어를 붙이기 죄송한 연배가 꽤 있는 아저씨였다. 작은 키와 선한 눈망울에 놀랍도록 불룩 튀어난 배가 유난히 돋보이는 귀요미 스타일이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김리 스타일이랄까. 나이가 많으면 경력이 보장된다고 설득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저씨의 복부 상태로 보아 최소 3년 정도는 서핑을 전혀 하지 않은 듯 해보였다.
아, 이 아저씨 테이크오프를 기억이나 하실런지..
바다에 나가기 전 모래 위에서 패들링을 하는 법과 일어서서 테이크오프를 하는 법 등의 기본기를 익혔다. 2년 전 양양에서 남편과 함께 서핑을 한 번 배웠지만, 모든 기술이 난생 처음 듣는 얘기처럼 새로웠다. 김리 아저씨의 서핑실력을 계속해서 의심하면서 약 10분 정도 수업을 들은 후 아저씨와 함께 바다로 들어갔다. 등 뒤로 아들과 남편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래 위에서 김리 아저씨의 설명을 들을 땐 다 알아들은 것처럼 멋진 표정을 지었는데, 막상 물에 들어가니 포즈도 엉망인데다 아저씨가 파도에 맞춰 보드를 밀어준 뒤 일어설 때마다 끊임없이 바다 속으로 고꾸러졌다. 김리 아저씨는 잠시 후 나를 다시 해변으로 데리고 나와 진지한 표정으로 여러 번 같은 얘길 했다.
"발을 정면에 두지 말고, 자세를 더 낮춰야 해!"
이제 김리 아저씨의 경력 같은 건 의심하고 말 여유가 없었다. 이 바다에서 내가 의지할 사람은 아저씨뿐이었다. 그나저나 수영도 못하는 내가 왜 서핑을 한다고 했을까. 눈 앞에서 다가오는 파도는 너무 컸고, 보드에서 떨어져 바다에 쳐박힐 때마다 바닷물도 너무 무서웠다. 물을 먹을 때마다 으으윽 소리를 낼 정도로 너무 무서웠지만, 재빨리 일어서서 보드 위에 다시 올라설 수 밖에 없었고, 그럼 다시 김리 아저씨가 나를 밀고 그럼 난 어쨌든 일어서야 했다.
파도가 잔잔한 꾸따는 초보 서퍼들에게 좋은 바다로 유명하다. 바다에는 늘 넘어지고, 고꾸라지고, 발라당하는 초보자들로 넘쳐나는데 오늘만 유독 서핑을 처음하는, 그래서 고꾸라지고, 넘어지고, 발라당하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최소 강사 수준이었다. 덕분에 해변에 있는 사람들은 수없이 물 속에 자빠지는 얼뜨기 초보 서퍼 한 사람, 나를 즐겁게 구경했다. 심지어 어떤 동양인 아줌마 두 명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연신 박장대소를 해댔다. 다행히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금 나는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파도가 오면 피해야하고, 아저씨가 '스탠드업!'을 외치면 재빨리 일어서고, 가능한 아프지 않게 바다 속에 고꾸라져야 했다.
그렇게 여러 번 해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넘어지길 반복하다 보니 얼마 후 보드 위에 서는 법을 깨달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발을 비스듬히 순서대로 놓고, 자세를 좀 더 낮추고 정면을 바라보면 됐다. 처음부터 김리 아저씨가 하라는 그 방법이었다. 아저씨를 의심하다 이 꼴을 당한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보드 위에 우뚝 서서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남편과 단호가 엄마의 멋진 모습을 보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리고 아까 날 보고 웃던 아줌마들도 나를 보고 있는지 살펴본 뒤, 바다 중간에 서 있는 김리아저씨에게 내가 해냈다고 손을 흔들었다. 그래봐야 여전히 얼뜨기 같은 어정쩡한 포즈지만, 보드 위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았던 파도가 코 앞으로 올 때도 이젠 (여전히 무섭지만) 흡 소리를 내며 입술을 꽉 다물고 넘었다. 물이 어깨도 차지 않은 바다에서 그런 비장한 표정으로 파도를 넘는 나를 보면서 김리 아저씨가 (비)웃었다. 그래도 나는 기뻤다.
그나저나 내일이면 숙소를 떠나야 한다. 며칠 내 숙소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꾸따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어디로 갈지부터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남쪽으로 내려갔다 위쪽을 훑고 내려올지 그 반대의 여정이 나을지, 한 달씩 두 번만 집을 구할지 일주일 단위로 방을 옮길지, 우리의 적은 예산으로 부엌이 딸리면서 풀장도 있고, 마트 같은 편의시설과 가까운 곳이 있을지. 차라리 북쪽 오지로 들어가서 진짜 야생을 경험하고 나오면 어떨지. 매일밤 이런 얘기를 몇 날 며칠 반복하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오늘은 결정을 해야만 했다.
매일 밤 집을 뒤지던 남편이 어제밤 남쪽 짐바란 지역에 있는 한 달에 50만원짜리 풀빌라를 찾아냈다. 사진으로 보기엔 '진짜 이 가격에 이런 집이 가능한가' 싶을 만큼 괜찮아보였다. 발리까지 왔으니 공덕역 사거리에 있는 오피스텔 스타일 보다는 풀장 달린 독채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사면이 바다인 발리에서 바다와는 거리가 좀 있는 내륙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래도 풀빌라 라잖아!”라며 우리는 에이전시 담당자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그랩을 불러 지도에 적힌 곳으로 집을 보러 갔다. 결혼할 때 남편이 살던 집에 들어가게 돼서 신혼집 구하기 같은 걸 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그 재밌는 걸 여기서 해보게 되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동네를 유심히 살펴봤다. '작은 식당과 점방 같은 슈퍼가 있군.' '세탁소는 저기로 다니면 되겠네!' 그런데 어쩐지 차가 점점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집에서 볼 땐 몰랐는데 다시 지도를 보니 집 근처에 옅은 등고선이 그려져있었다. (등고선이라니!)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이젠 허름한 와룽조차 보이지 않았다. 빌라 라운지 앞에 도착했을 땐 경사가 어찌나 높은지 우리를 태운 차가 막다른 길에서 차를 돌릴 때 차가 미끄러지지 않게 뒷바퀴에 벽돌을 대야할 정도였다.
불길한 마음으로 로비에서 스태프를 만나 방을 둘러봤다. 작은 풀장이 달림 작은 원룸이 일렬로 죽 늘어서 있는 신기한 구조였다. 원룸 안에 큰 침대와 테이블이 있고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면 풀장, 그 앞으로 마을이 펼쳐졌다. 그렇다고 확 트인 풍경은 아니고 반쯤 가린 마을과 하늘이라 뭔가 답답한 구석이 있었다. 풀장도 말이 풀장이지 발차기 한번 하면 반대쪽 벽에 곧장 머리를 박을 만큼 작았다. 풀장보다는 오히려 큰 욕조로 사용하기에 더 좋아 보였다. 집을 소개해준 에이전트 직원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물었지만, 도착하자마자 나와 남편 모두 이미 마음을 접었다.
꾸따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편했다. 풀빌라는 없지만 문만 나서면 호객을 하는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파이팅 넘치는 이 동네가 벌써 익숙해진 것 같다.
결국, 다음 행선지는 북쪽으로 이동해 우붓에서 2주를 보내기로 했다. 풀빌라는 바이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