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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혁 Sep 06. 2015

그대로를 줬고, 그대로를 받았다

0.
의원에게, 상사에게 보고할 때도 때를 본다. 사람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게 많아서 어려운 보고를 할 때는 상대의 기분과 리듬을 고려할 때가 많다. 그래, 눈치를 보는 거다.

나도 그렇다. 어떤 때는 뭘 가져다줘도 역하고 싫다. 그런데 어떨 땐 뭘 가져다줘도 그게 뭐라고 예쁘고 좋다. 참 관대해진다.

그런데 기분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르게, 다른 것도 같게 수용하다보니 잃는 게 하나 있었다. 잃는 건 바로 나다.

YES맨이 되면서, NO맨이 되면서, 잣대가 내 기분 하나에 따라 달라지면서, 뭘 진짜 좋아하는지 망각하게 된다. 그래서 경계하기로 한다. 순간의 기분을. 순간의 감정을.


1.
꾸중도 들었다. 그리고 나도 인정했다. 나 관대하다고. 뭐든 좋았다. 이리 와라! 하고 누구든 받아줬다고. 싫을 땐 진짜 조차도 싫다며 도망쳤다고.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본다. 나에 대해 또한 그렇게 처음엔 싫다고 했지.

그리고 알았다. 시간이 필요하구나, 이해가 필요하구나, 공감이 필요했구나.


2.
내 멍청했던 방식을 버린다. 요구도 없이, 억지 웃음도 없이 내 그대로를 줬고, 그대로를 받았다. 기분이 어떻든, 상황이 어떻든 그 외의 것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서로의 소통만 봤다.

지리멸렬하게도 따랐던 방식과 달라지니, 그런데도 그게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거짓과 꾸밈이 없었다.


3.
거짓과 꾸밈이 사라지니 없어지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욕심이 사라진다.

지금이 좋으니 앞으로의 욕심도 부리지 않게 된다. 지금을 망치고 싶지 않아 미래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 미래도 곧 코앞의 현재, 지금이 된다. 그 땐 그 때 생각한다. 미래의 지금도, 지금처럼 자연스럽다면, 재밌고 유쾌하다면, 결과에 집착하지 않을 것 같다.


4.
내일은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이지만, 타박타박 출근해야지하지만, 어쩐지 우울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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