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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May 21. 2018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포옹

France, Paris. Day 1

엄마를 만나는 날이었다. 먼저 더블린을 여행 중이었던 나는 엄마가 파리로 들어오는 날짜에 맞춰 파리 샤를 드 공항에 도착했다. 더블린에서 출발하기 전에 엄마가 무사히 비행기에 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처음으로 장거리 비행을 경험하는 엄마가 걱정됐다. 엄마가 무사히 파리에 도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은 공항에 울려 퍼지던 프랑스어 안내방송처럼 계속해서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내 소유의 캐리어를 찾은 뒤에도 수하물을 찾는 구역에 계속 머물렀다. 엄마를 마중하기 위해서였다. 엄마가 탄 인천발 파리행 비행기와 내가 타고 온 더블린발 파리행 비행기의 도착시간은 불과 몇 시간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일부러 엄마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비행기를 비슷한 시간에 맞춰 끊어두었던 탓이었다. 나는 한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어 의미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다가는 이내 다시 덮었다. 이윽고 나는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비행기가 토해낸 수하물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할 때마다 사람들도 함께 움직였다. 수하물을 찾는 곳은 질서 정연한 논리구조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프로그램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엄마가 도착할 때까지 사람들이 도착하고 떠나는 모습을 계속해서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었다-기엔 사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력하게 다양한 인종의 도착과 떠남의 물결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마침내 파란색과 흰색의 글자로 이루어진 조그만 모니터에 익숙한 나라의 이름이 떴다. 인천발 에어프랑스 AF0267편이 지금 막 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공항직원과 나 밖에 없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나는 캐리어와 함께 어정쩡하게 선 채로 엄마를 기다렸다. 직원은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다가는 이내 심드렁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색색의 수하물은 사람보다 먼저 도착해서는 권태로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놓였다. 나는 주황색 끈이 묶인 익숙한 모양의 회색 캐리어를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렸다. 혹여나 다른 짐과 섞일까 봐 미리 표시해 둔 엄마의 캐리어였다.


커다란 27인치 캐리어 두 개와 함께 어정쩡하게 선 나는 사람들이 내려오는 계단에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저 멀리서 익숙한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낯선 언어로 가득한 낯선 땅에 떨어져 무척 긴장한 기색이었고, 이 같은 긴장감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한참이나 높은 계단 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엄마의 모습은 한없이 작아 보였다.


계단을 내려오며 두리번거리던 엄마는 이내 나를 발견하고는 환한 웃음을 지은 채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달려왔다. 며칠 전에 인천에서 본 엄마를 파리의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보게 되다니. 어쩐지 현실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엄마는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꼭 안았다. 순간, 뜨거운 순두부를 집어삼킨 듯 가슴이 울컥해졌다. 먼 타지에서 만난 엄마는 한없이 작고 초라했다. 나는 앞으로의 여행에서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엄마와의 포옹에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비행은 별로 안 힘들었어?

- 괜찮았어. 화장실 가고 싶어 질까 봐 물도 별로 못 마시고 자다 깨다 영화 보고 그랬어.

모니터 조작은 별로 안 어려웠고?

- 얘는, 엄마를 무슨 할머니 취급하네.

하긴, 엄마가 기계치는 아니었지 참.. 수하물 찾는 곳으로 잘 찾아왔네.

- 앞에 한국사람들 그냥 쫓아왔지 뭐.


그렇게 조금 생뚱맞은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입국심사대를 통과해 출국장을 빠져나왔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한국에 있는 동생과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정민아. 잘 도착했어. 밥은 잘해 먹었고? 응응. 냉장고에 있는 장조림은 따로 덜어 먹어야 안상해 알지? 사골국은 냉장고에 얼려뒀으니 아빠 먹을 때 같이 나눠서 끓여 먹고. 아빠 바꿔줄래? 네 잘 도착했어요. 여기? 오후 다섯 신데 거긴 몇 시예요? 밥은 잘 먹었죠? 사골국 해놓은 거 있으니까 그거 먹고요. 정욱이 바꿔줘요?"


세상에. 통화내용을 들으며, 참 엄마도 엄마다 싶었다. 파리까지 와서 엄마가 한 통화내용의 80%는 한국에 있는 아빠와 동생 걱정이었다. 결혼 한 이후 60이 다 되도록 집을 길게 비우는 일이 처음이었던 엄마는 유럽여행 내내 늘 동생과 아빠를 걱정했다. 가족에 대한 엄마라는 존재의 헌신을 제3자의 눈으로 보는 기분이었다. 그건 낯섦과 동시에 내가 얼마나 가족에 무심한 사람인가를 깨닫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미 파리에 와 본 경험이 있었던 나는 도심으로 향하는 RER을 타고 숙소로 능숙하게 엄마를 이끌었다. 파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는 온통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엄마가 가장 신기해했던 것은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는 지하철 문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중간중간 낯선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해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혼자 유럽 여행을 몇 번 다녀본 데다가, 불문과 출신인 아들이 파리에서만큼은 자신을 잘 이끌어줄 것이라고 내심 믿는 눈치였지만, 놀랍게도 나는 프랑스어를 못하는 불문과 생인 것인데...

아무튼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쉬려는데, 방 안에 있던 난방기구가 말썽을 부렸다. 혼자였다면 그냥 꾹 참고 버텼겠지만, 엄마 때문에라도 한 겨울의 고장 난 난방기구는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엄마를 대신해서 컴플레인을 할 사람은 당연하게도 나뿐이었다.


호텔 프런트로 내려온 나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은 이상한 언어 30%와 70%의 몸짓을 섞어가며 상황을 설명했다. 이윽고 직원이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면서 상태를 확인하더니, 고칠 수 없겠다고 판단했는지 방을 교체해야 한다는 말을 전했다. 어쩐지 여행 첫날부터 뭔가 삐그덕거리는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문제를 해결하고 나자 급 허기가 밀려왔다. 우리는 근처 식당을 찾아 늦은 저녁식사를 먹었다. 다행히도 외국 음식이 엄마 입맛에 안 맞을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엄마는 밥보다 빵을, 국수보다 파스타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은 엄마는 앞으로 외국의 다양한 요리를 직접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흥분한 눈치였다.

엄마 어디 가보고 싶어?

- 난 그냥 아무 데나 다 좋아.


엄마에게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어볼 때면 늘 나오는 대답이었다. 제일 난처한 대답이었지만, "뭐 먹고 싶어?"라는 질문에 "아무거나"라고 답했던 나를 떠올리며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무튼 아무것도 모르니 자신은 다 좋다는 엄마에게 나는 파리 여행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여행자로서의 관록을 보여야 했다. 곰곰이 어디를 가야 할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파리에 온 첫날이니 뻔해도 에펠탑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비르하켐 다리로 향했다. 전에 파리를 왔을 때 에펠탑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던 곳이었고, 영화 <인셉션>의 촬영지였던 만큼 장소 자체도 영화를 좋아하는 엄마가 만족할 만한 곳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와서 바라본 파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는 2년 전, 추운 강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센 강을 가로지르던 유람선 위에서 부모님과 가족을 생각하며 서글퍼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가족과 함께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장소에 진짜로 가족과 함께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은 어쩐지 실감 나지 않는 풍경이었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유럽여행을 와야겠다고 결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첫 유럽여행의 기억 때문이었다. 나는 여행에서 심심하면 가족을 떠올리며 외로워했고, 그 외로움은 마지막 여행지였던 로마에서 가장 극에 달했다. 엄마와 함께 여행 온 모녀 둘과 함께 바티칸 투어를 동행하게 된 탓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투어를 진행하는 내내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바티칸에는 하필이면 엄마의 천주교 세례명인 베로니카 성인을 본 따 만든 커다란 조각상이 있었고, 나는 그 거대한 조각상 아래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그리고 언젠가는 엄마와 함께 유럽에 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비록 우리의 일정에 로마를 방문하는 계획은 없었지만, 유럽 땅에 엄마와 함께 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엄마와 함께 본 에펠탑은 2년 전의 슬픔과 처연함, 고독과 외로움 따위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빈자리엔 오로지 기쁨과 설렘만이 들어차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풍경은 오직 객관성을 지닌 채 그곳에 놓여 있을 뿐이고, 그 풍경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세상 그 어느 장소에서도 객관적인 풍경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여행의 풍경은 늘 주관적이었다.

비르하켐 다리에서 에펠탑을 감상한 엄마와 나는 천천히 에펠탑 앞의 마르스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펠탑 아래엔 마침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작은 마켓이 열려있었다. 우리는 이런 곳에서 물건을 사는 것에는 영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었기에, 소심하게 곁눈질로만 바라보며 지나갔다.


함께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는 동안 엄마는 여기서도 "이거 아빠가 좋아하겠다.", "이거 귀여운데 정민이 사다 줄까?" 하며 가족 얘기만 꺼냈다. 늘 가족을 먼저 떠올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이런 엄마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은 엄마가 온전히 자신만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지만,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사람의 생각을 유럽에 도착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의 이 같은 모습은 세상 모든 엄마들의 보편적인 모습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 모든 이들이 엄마를 떠올리면 괜스레 마음 한편에 커다란 납덩이를 얹은 듯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닐까. 물론 한편으로는 '그래도 우리 엄마가 제일 최고지'라는, 약간은 유치한 생각도 들었지만.

우리는 짤막하게 파리 시내 구경을 마친 뒤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에펠탑이나 크리스마스 마켓 보다도 길거리에 널려있는 이국적인 식재료나 과일, 섬세하게 짜인 테피스트리가 걸린 상점 따위에 더 매력을 느끼는 듯했다. 어쩐지 그 모습이 귀여워서 잠시 멈춰 서서 엄마와 함께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엄마 뭐 보고 있어?

- 이거 엄청 예쁘지 않니? 어쩜 이렇게 섬세하게 짰을까. 어머나.

그래? 내일 문 열면 한번 가게 구경할까?

- 아니야. 살 것도 아닌데 뭐. 춥다. 들어가자.


그날 밤, 긴 비행의 시간 동안 쌓인 여독을 풀기 위해 일찍 방에 돌아온 우리는 TV를 틀어 놓고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의 소음을 듣다가, 이내 꺼버리곤 씻고 자리에 누웠다. 엄마와 함께 한 침대에서 자는 것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드려는 찰나에, 나는 피곤함에 취해 잠에 든다는 의식도 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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