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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ul 06. 2019

엄마의 책상은 밥상

2013년에 엄마가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 집에는 몇 가지 낯선 장면들이 추가됐다. 하나는 주로 집안에만 있던 엄마가 수업과 학교 행사를 위해 자주 외출하는 모습이었고, 또 하나는 엄마가 공부하는 풍경이었다.

엄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거나, 뿔테로 된 돋보기안경을 쓰고서 시험과 관련된 책들을 들여다보곤 했다. 가끔은 근처의 동네 도서관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집에서 공부하는 날이 많았다. 예순에 가까워진 엄마의 공부하는 모습은 늘 익숙해지질 않았다. 나는 그게 단지 '엄마, 공부, 시험, 과제'라는 그 낯선 단어들의 조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그 풍경에 익숙해지지 못했던 건 엄마라는 존재가 공부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공부하는 사람이 놓인 낯선 장소와 공간 때문이었다.


엄마가 공부하는 장소는 보통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엄마에게는 본인의 방도, 본인의 책상도 없었다. 때문에 엄마는 안방에 자그마한 침대용 책상을 놓은 채 그 위에서 공부하거나, 그도 아니면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식탁 위에서 공부하곤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부모님에게는 본인만의 공간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 또한.

나와 동생에게는 콕 틀어박혀 문을 닫은 채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도, 책상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집이 그렇듯이 부모님에게는 틀어박혀있을 방도, 책상도, 자신을 세상과 격리시킬 수 있는 작은 공간조차 주어지질 않았다. 대체로 많은 집에서 그러하듯 우리집도 아버지의 공간은 거실이었고, 어머니의 공간은 주방이나 안방의 침대였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의 공부하는 모습이 어색했던 건 행위 그 자체보다도 주방이나 안방이라는, 공부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 공간에서 행해지는 낯선 행위 때문이었다. 책 하나만 올려놔도 가득 차는 자그마한 책상을 침대에 올려놓고 시험공부에 열중해 있는 엄마의 모습이나, 식사를 하는 주방의 식탁 위에 프린트물을 펼쳐놓은 채 열심히 필기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은 낯설다기보다는 위태롭거나 애잔했다. 그제야 나는 나와 내 동생이 당연하게 느꼈던 방과 책상이 실은 부모라는 존재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엄마가 주방의 식탁에서 공부하는 모습에서 한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엄마의 책상이 밥상이라는 사실이 그녀와 무척 잘 어울리는 듯이 보였고, 나는 그 사실이 못내 사랑스러우면서도 슬프게만 느껴졌다.


몽골 여행기가 끝나고, 미뤄뒀던 글들을 다시 시작해봅니다. 어머니와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에 기록해두었던 엄마의 대학생활 조금과, 어머니와의 유럽여행을 다시 올릴 예정입니다. 이전에 잠깐 쓰다가 중단됐던 글이기도 하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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