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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ul 10. 2019

김장하는 날

많은 집들이 으레 하는 일일 테니 전통이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지만, 우리 집엔 겨울이 다가오면 늘 하는 연례행사가 있다. 바로 김장이다.


김장을 하는 날은 늘 설렌다. 갓 만든 김치를 곁들여 먹는 수육보다도 더 큰 이유는, 우리 집 식구들이 모여 무언가를 하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건 설렌다기보다는 오랜만에 '아, 우리도 가족이기는 하구나'싶은 기분에 더 가깝다.


우리 집의 하루는 늘 비슷비슷한 모습이다. 아침 일찍 나가 저녁 늦게 파김치가 되어 들어오면, 저마다 다른 시간에 귀가하는 탓에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일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다. 그렇게 돌아온 집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기 바쁘다. 동굴 같은 각자의 방으로 저마다 숨어들고 나면, 집안에 흐르는 것은 TV나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이의 목소리뿐이다. 이런 날이 365일 중에 적어도 300일은 된다. 말하고 나니 콩가루 집안인 것 같지만, 이건 비단 우리 가족뿐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가족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사회 시간에나 배우던 단어를 빌려오자면 '핵가족화'가 심화된 현대의 가장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런 좀 서글프면서도 생뚱맞은 이유 때문에 나는 김장하는 날을 좋아한다. 더군다나 엄마가 대학교를 다니게 된 뒤로는 더욱이 김장하는 날이면 반 강제적으로 모든 약속을 취소한 채 집에 있어야만 했는데, 그건 김장을 하는 시기가 보통 엄마의 시험기간과 겹치기 때문이었다. 시험기간인 사람에게는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우리네 미덕이 아니겠는가.

어릴 적부터 집안일은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온 엄마의 방침 덕에, 그래도 나와 가족들은 엄마의 학교 생활에 대한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정도로는 집안일을 할 줄 아는 편이었다. 각자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나 집 청소, 설거지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집안일은 원래도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해오던 일이었으므로, 엄마가 학교를 간다고 하더라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큼직한 집안일은 엄마의 몫인 경우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김장이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집안일에도 고급 기술이 필요한 일과, 상대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들이 있다. 김장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치는 고급 집안일에 속하는데, 이런 일은 보통 수십 년의 노하우가 쌓인 집안일 베테랑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에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런 이유로 시험이 있든 과제가 있든, 김장 같은 이벤트가 생기면 엄마는 자연스레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집안일이라는 전장의 최전선에 선 지휘관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온 가족이 함께 김장을 담근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일이었다.


때문에 김장을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나는 예순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새로이 대학교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집안일들을 허투루 흘려보내는 법 없이 챙기는 엄마의 모습이 새삼 대단하게만 느껴지곤 했다.(심지어 엄마는 학점도 좋았다. 아들은...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래서 나는 종종 김장이 엄마의 노고에 대한 나의 부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김장철이 되면 고생스러우니까 사서 드시라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엄마는 고집스럽게 매해 김장용 배추를 잔뜩 사 와서는 소금에 절여두었다. 그건 아마 당신 자신이 평생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해 왔던 습관 때문이기도 할 것이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노동의 단축이 아닌, 변하지 않는 일상이자 관성과 습관의 연속성이다. 물론 엄마의 김장에는 가족들에게 좋은 음식, 본인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주부로서의 책임감 같은 것 또한 포함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의 '희생'혹은 '헌신'따위의 단어를 사용하는 걸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럴 때마다 저런 표현 말고 엄마의 일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슬퍼지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게나마 자신이 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 엄마. 그런 엄마가 편한 마음으로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내가 옆에서 도울 수 있는 건 집안일에 관심을 덜 가질 수 있도록 부족하게나마 알아서 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럴 때마다 집안일의 어려움을 새삼 느꼈다. 아무리 알아서 잘한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눈에 내가 하는 집안일이란 어딘가 조금씩 어설펐고, 알아서 잘한다는 것은 내가 엄마와 함께 사는 이상 가능할 리가 없었다. 내 집안일은 늘 엄마의 성(씅-에 가까운 발음)에 차질 않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나의 생활은 늘 엄마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평생 그럴 일이었고,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엄마가 살아 계시고 내가 엄마의 자식인 이상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부모의 눈에 자식이란 늘 부족하고 챙겨주고 싶은 존재일 뿐이니까.


그리하여,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엄마는 매해 겨울 김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고, 그런 엄마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김치 속이나 넣으면서 매해 엄마의 김장을 돕는 것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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