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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Jul 16. 2019

정현 씨의 잃어버린 이름

엄마가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단순히 이름만으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름만큼 사회와 집단 내에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이 곧 나의 정체성이자 자신이 되곤 한다.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이는 보통 그 사람이 사회나 집단 내부에서 맡고 있는 역할로 불린다. 엄마 혹은 아빠, 선생님, 사장님, 작가님 등으로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개인의 정체성보다 집단 내에서의 역할이 우선시된다.


그러나 저 유명한(그리고 대학시절 내내 나를 괴롭힌)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앞의 예시를 이 문장에 대입해보면 본질은 엄마 혹은 아빠와 같이 인간이 맡은 사회적 역할일 테고, 실존은 본질 앞에 놓인 이름과 이를 대표하는 한 인간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는 엄마와 아빠, 아들과 딸, 선생님과 작가님이라는 역할 전에 하나의 이름을 가진 개인이 존재한다. 인간의 실존은 본질에 앞서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얘기까지 했지만, 사실 이 글은 엄마의 잃어버린 이름에 관한 글이다.

"이름은 엄마에 앞선다"


엄마에게는 엄마라는 본질 이전에 '정정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인간이 존재했다. 그러나 엄마는 늘 엄마로 불렸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텐데, 그러니까 우리 엄마에게는 어느 순간부터 정정현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는 소리다. 엄마는 늘 우리 엄마 혹은 정욱(정민)이 엄마, 작은 이모와 고모, 동서 등의 다양한 호칭으로 불렸다. 그러나 다양한 그 호칭들 속에 정정현이라는 엄마의 이름 세 글자는 없었다.


엄마라는 단어는 여타의 다른 사회적 정체성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선생님, 사장님, 대리님 등으로 불리는 이는 주어진 역할을 벗어나는 순간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엄마는 벗어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엄마는 자식의 이름을 부르지만, 자식은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정현 씨, 오늘 저녁엔 집에 늦게 들어갑니다."라니, 이 얼마나 당황스러운 대사인가). 자식이 곧 당신의 정체성이 되어 OO엄마 하는 식으로 수식어가 붙여져 불릴 때도 있다. 때문에 엄마들은 쉽사리 이름을 잃는다. 엄마라는 호칭은 다른 단어들 보다도 훨씬 더 개인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사실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던 하나의 파일명 때문이었다.


"문화콘텐츠학과 13학번 정정현"

파일에는 몇십 년 만에 엄마가 다시 찾은 이름과 함께 소속이 적혀있었다. 나는 그 파일명 속에서 순간적으로 낯선 감정을 느꼈다. '13학번'과 '문화콘텐츠학과', '정정현'. 이 세 단어의 조합은 상상을 초월하게 어색했다. 거기 적힌 이름은 분명 엄마의 이름이었지만 엄마의 이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엄마는 밖에서 문화콘텐츠학과 13학번 정정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제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엄마의 아들이 된 이후로 엄마가 자신의 이름인 정정현으로 불리는 것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친구들과의 왕래가 잦은 사람도 아니었다. 가족이 아닌 엄마의 지인들을 실제로 마주하는 적은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엄마가 정정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들을 일도 없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사람에게 이름이란 일종의 정체성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부여받는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이름이다(앞서 실존주의의 말을 빌렸지만, 사실 인간은 이름이라는 본질 이전에도 이미 세상에 놓인 '실존'하는 존재이기는 하다). 이름은 그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간단한 장치다.


이름이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한 개인의 정체성을 엄마는 꽤 오랜 세월 동안 어딘가에 놓아둔 채 살고 있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대학교를 나간 뒤에 다시 이름으로 대표되는 한 개인의 정체성을 찾은 듯 보였다.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이름으로 불렸으며, 가끔은 학교 모임에 나갔고,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들을 만나는 일도 많아졌다. MT를 간다며 설레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귀찮다고 하면서도 학과 내에서의 총무직을 맡는 엄마를 보며, 나는 엄마를 너무 엄마로만 생각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엄마에게도 정정현 씨로써의 정체성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친구들과 밖에서 술을 마시고 맛집을 다니고 비행기를 타 저 먼 타지를 여행하는 동안, 엄마도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을 거란 사실을 나는 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렇게 내가 엄마에게 다른 욕구가 있을 수 있겠다는 걸 깨달았을 때쯤, TV프로를 보던 엄마가 말했다.


"가우디 한 번 보고 죽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수업시간에 배웠는데 너무 가보고 싶더라. 죽기 전에 내가 볼 수 있을까"


그 말을 들은 다음날, 나는 회사에서 파리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 표 두 장을 끊었다. 엄마의 졸업여행이자, 내 퇴사 여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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