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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Dec 06. 2021

예술은 청춘을 먹으며 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틱, 틱… 붐!>

재능의 저주


'애매한 재능의 저주'라는 표현이 있다.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압도적인 것도 아닌 사람. 그런 사람은 애매한 재능의 저주에 빠지기 쉽다. 확실히 압도적인 재능을 갖고 있어 그 재능을 맘껏 펼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재능이 아예 없다고 할 수도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은 본인의 재능과 현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저울질한다.


그러나 재능이 압도적이라 할지라도 그 재능이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선 축복이자 저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모든 종류의 재능에는 일정 정도의 저주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



제목만 접하고 안 봤다면 아쉬웠을 영화


영화 <틱, 틱…붐!>은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영화에는 천재적인 뮤지컬 제작자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나단 라슨은 뮤지컬 <렌트>의 제작자로, 오랜 시간 자신이 만든 뮤지컬을 만들어 올리기 위해 몰두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이 평생에 걸쳐 만든 뮤지컬 <렌트>의 초연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뜬다. (*해당 부분은 스포일러가 아닙니다. 영화 시작부터 이미 관련 내용이 나옵니다.)


사실 나는 이 내용을 듣고 나서야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처음엔 틱틱붐이라는 제목이 너무 유치하고 이상해서, 아예 흥미가 당기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만약 끝내 내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청춘은 끝났다.


영화 속 조나단 라슨은 뉴욕의 허름한 아파트에 거주한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LOFT(우리로 치면 옥탑방 정도 될 것이다)에 사는 그는 몇 년째 카페에서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며 뮤지컬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절친이었던 친구 마이클은 함께 예술가를 꿈꿨으나 현실을 택해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택하고, 여자 친구 수잔은 안정적 직장의 기회를 얻어 그에게 뉴욕을 떠나 함께 살자는 제안을 한다.


서른 살 생일을 앞둔 조나단에게 이 모든 상황은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온다. 나이 서른, 그러나 이뤄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현실. 뮤지컬 제작을 하겠답시고 허송세월 한 시간만 몇 년. 운 좋게 자신이 제작한 <슈퍼비아>의 워크숍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극 중 가장 중요한 곡을 워크숍 직전까지도 작곡하지 못하고 있다.


살다 보면 그런 이야기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위대한 위인은 몇 살에 무슨 일을 했다는 따위의 이야기들. 극 중 조나단 역시 스티븐 손드하임이(조나단이 존경하는 뮤지컬 제작자이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가 있다)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나이보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마지막 앨범을 낸 나이보다 많은 서른이 다가온다며 초조해한다.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옥죄어오는 상황 속에, 그는 틱, 틱... 하는 환청까지 듣게 된다.



막상 서른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나 역시 서른이 되면 뭔가 청춘이 영원히 끝나는 것 같았다.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라는 곡을 불렀기 때문일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전 세계 공통적으로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건가 보다 싶었다. 나 또한 서른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어서 어릴 땐 서른이 되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죽겠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고(중2 때의 일이다), 첫 책을 낼 때 즈음엔 꼭 서른 전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기도 했다.


막상 서른이 되고 나선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어찌 됐든 서른에는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은 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동안은 전업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서른 이후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렸다고 생각하곤 제주도로 내려가 2년가량을 생활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한 법, 나 역시 조나단의 친구 마이클이나 여자 친구 수잔처럼 현실에 순응해 다시 취직을 하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꿈을 버렸다고는 할 수 없으나, 가끔은 내가 그저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자신을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많이 오버랩된 영화는 바로 <라라랜드>였다. <라라랜드>의 주인공 세바스찬과 미아 역시 예술가로서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청춘들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여러 번 좌절하고, 꿈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다툰다.



청춘을 먹고 크는 예술이라는 꿈


두 영화 속 예술이란, 반짝반짝 빛나는 청춘들의 꿈을 잡아먹으며 자라는 존재다.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청춘이라는 젊음과, 그 젊음을 게걸스럽게 탐하는 예술과 꿈이라는 존재.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역경을 극복해내고 결국 위대한 무언가를 이루어낸 예술가들에게 우리가 경외심을 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인공 조나단 라슨이 결국 보지 못하고 죽은 자신의 작품 <렌트>는 뮤지컬계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록 음악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이 뮤지컬은 그전까지 고루한 중년들의 예술로만 여겨지던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새로운 변화를 불어넣었으며, 이로 인해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의 생명을 연장시켰다는 평가를 듣는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신이 평생 꿈꾸던 일이 벌어지기 하루 전에 세상을 뜨게 되다니.


예상컨대 영화를 보고 나서 나와 같은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꿈꾸다가 결국 현실의 벽 앞에 순응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결국 멀리 하다 결국은 희미해져 버린 그 꿈이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다시 옆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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