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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Sep 18. 2023

수단과 목적으로써의 음악

아이유 데뷔 15주년을 기념하는 한 명의 유애나로서

그렇다. 이 글은 철저히 아이유의 오랜 팬의 입장이 되어 쓰는 글이다. 이런 주제의 글을 생각한 지는 오래되었으나, 마침 오늘이 그녀의 데뷔 15주년이라는 이 글을 세상에 내놓기 더없이 좋은 핑계가 없는 관계로 오랜만에 부랴부랴 브런치에 글을 써본다.

아이유, 세 바퀴, 잔소리


우선은 내가 아이유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을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던 건 2010년경 예능 프로그램 <세 바퀴>에서였다. 그때 아이유는 고등학생 가수로 본인을 소개하며 수줍게 나와 춤을 추며 <마시멜로우>를 불렀다. 내게 그 모습은 솔직히 당시 나온 여타의 다른 가수들(이를테면 원더걸스라든지, 소녀시대 같은 걸그룹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윽고 그녀가 자세를 고쳐 앉고 기타를 치며 이문세의 옛사랑이나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등을 부르는 모습은 앞의 인상을 지우기에 충분했다(미안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시멜로우라는 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아이유라는 가수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매료된 순간이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나는 군에 입대하게 된다. 한창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던 어느 날, 병식당에 남아 당번으로 청소를 하던 중에 아이유의 <Rain Drop>과 <잔소리>를 연달아 듣게 되었다. 사회와 잠시 단절되어 있던 나는 그 노래들의 제목도 모른 채, 그리고 그 노래들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도 모른 채로 아이유의 목소리라는 것만 알아차리고선 그 노래들에 푹 빠졌다. 기합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일부러 청소를 미루며 더 듣고 싶어 지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병식당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여름을 닮은 그 목소리는, 여전히 내 기억 속 가장 감미로웠던 아이유의 목소리로 남아있다. 아마도 취사병 중 아이유의 이 디지털 싱글을 좋아하던 병사가 있었던 것 같다. 그에게 뒤늦게나마 감사 인사를 건넨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해당 앨범의 <잔소리>라는 노래는 아이유에게 데뷔 최초로 음원성적 1위라는 영광을 안겨준 곡이었다.

좋은 날의 성공


영상도, 사진도 못 본 상태에서 아이유라는 가수에게 목소리만으로 완전히 빠져버렸던 나는 그 뒤로 본격적인 아이유 덕질을 시작하게 된다. 아이유는 이윽고 발매한 미니 앨범 Real에서 공전의 히트곡 <좋은 날>을 부르며 명실상부 실력파 가수이자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게 되었다('국민여동생'이라는 단어에 대한 어떤 호불호는 일단 여기서는 차치해 두도록 하자). 그녀가 내지르던 이른바 '3단 고음'은 온갖 방송을 강타했고, 사람들은 조금씩 그녀의 노래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얼마 되지 않는 군인 월급을 바쳐가며 정규 2집 Last Fantasy 앨범을 한정판으로까지 구해가며 주야장천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정규 2집은 나에게는 무척 의미 있는 앨범인데, 그건 일단 발매일이 내 생일이라는(?)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으로 시작한다. 또한 내가 아이유라는 가수를 음악과 퍼포먼스뿐 아니라, 개인이 갖고 있는 생각까지도 매력적이라 여기며 정말 '좋은 사람'을 내가 좋아하고 싶다고 까지 생각하게 만든 첫 앨범이었다. 비단 이러한 개인적 이유들 뿐 아니라 해당 앨범은 아이유가 작사뿐 아니라 작곡까지도 참여하며 그녀가 가진 음악적 욕심이 단순한 퍼포머가 아닌 프로듀싱에까지 있다는 것을 드러낸 앨범이라는 점에서도 그녀의 향후 행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앨범이었다.


<좋은 날>의 성공 이후 내놓은 <나만 몰랐던 이야기>와 같은 상당히 무거운 곡, 데뷔곡 <미아>, 이 앨범에서 작곡한 <길 잃은 강아지>등은 아이유가 <BOO>와 <마시멜로우> 혹은 <좋은 날>등으로 각인된 국민 여동생의 이미지와는 다른, 개인 이지은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주는 단서 같은 곡들이었다.


이미지와 실제와의 거리감


앞에서 말했듯, 그녀의 데뷔곡은 중학교 3학년이 부르기엔 너무나 성숙하고 무거운 발라드 곡인 <미아>였다. 가창력 등으로 조금 주목받긴 했으나 그녀는 이후 노선을 틀어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마시멜로우>와 <BOO>처럼 밝고 통통 튀며 귀여운 이미지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대중에게 아이유라는 가수를 각인시킨 성공적인 선택이었으나, 자신의 이미지가 귀여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굳어지는 것에 대해서 그녀가 어떤 경계심을 갖고 있었음은 2022년 발매된 다큐멘터리 조각집의 DVD에서의 발언들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조각집에서 약 10년 전쯤의 아이유는 인터뷰를 통해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던 그녀가 정작 스스로는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다. 나 역시 아이유는 분명 귀여운 여동생으로 소비되는 본인의 이미지에 대해 스스로 많은 혼란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당시 그녀의 음악 세계는 <BOO>보다는 <미아>에, <마시멜로우>보다는 <나만 몰랐던 이야기>에 조금 더 가까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비치는 이미지와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이미지 사이의 괴리. 밝고 귀엽고 착한 사람이 아닌데 그런 모습으로 비치는 것에 대한 일종의 혼란, 팬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죄책감과 같은 마음들이 한 데 모여 뒤엉켜있는 것 같은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 스스로 밝힌다. 밝은 면, 어두운 면 전부 다 갖고 있고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데 왜 사람들은 '귀여운 아이유'에 나를 끼워 맞추려 할까?라는 정체성의 혼란. 아마도 아이유는 이러한 시기를 거치며 스스로 음악에 대한 본인만의 정의를 써 내려갔을 것이다.


다시 한번 「조각집」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해보자. 그녀는 여기서 인터뷰를 통해 <미아>의 실패 이후 잘 팔리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시절, 아이유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와 회사의 이 같은 선택은 <좋은 날>을 통해 어느 정도, 아니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제는 아이유가 스스로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든 셈이었다. 남이 만든 곡으로 성공을 거뒀으니, 본인이 만든 곡을 성공시킬 차례였다.

금요일에 만나요의 성공과 밤편지까지


아이유는 3집 정규 Modern Times, 그리고 리패키지 앨범인 Modern Times:Epilogue에서 스윙재즈,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로서의 변신을 선보이며 그전까지의 '여동생'이미지에서 성숙한 이미지로의 변신을 꾀하고자 한다. 그러나 장르적 변화보다 더 주요했던 것은 아이유가 <금요일에 만나요>라는 곡을 본인이 스스로 작사/작곡하고 이 곡을 성공시켰다는 데에 있다.


<금요일에 만나요>라는 곡은 이전까지 부르던 곡들의 판타지 세계관에서 벗어나(좋은 날, 너랑 나, 분홍신 등의 판타지 세계관이 있다) 현실적인 '진짜 세계의 아이유'를 드러냄으로써 성공시킨 곡이라는 데에 해당 곡의 음원 성적보다도 더 중요한 의의가 있다. 아이유라는 가수에게 있어 훗날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될 '소통'과 '공감'그리고 '솔직함'등의 음악적 토대가 바로 이 곡을 기점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셈이다.


여기서 얻은 자신감이 발판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후 그녀는 미니앨범 Chat-shire를 통해 처음으로 앨범 프로듀싱을 맡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전곡의 작사를 담당함으로써 그녀는 아이돌에서 싱어송라이터로의 변화에 성공한다. 데뷔 후 불과 7년 만에 전체 앨범의 수록곡을 작사하고 프로듀싱까지 맡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전 곡의 가사를 쓸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전의 성공에서 느낀 대중의 이미지와 인간 이지은에 대한 괴리감에서 오는 괴로움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유는 대중에게 본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 정면돌파를 택한 셈이다.


그리고 다음에 내놓은 정규 4집 팔레트에서는 아이유를 대표하는 또 다른 히트곡인 <밤편지>를 내놓으며 명실공히 '국민여동생'에서 싱어송라이터 아이유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본인이 수많은 불면의 밤들을 지나며 느꼈던 감정들을 담담한 가사에 담아낸 이 곡은 <좋은 날>의 성공 이후 그녀가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는 곡이다. 감히 말하자면, 아이유라는 가수는 <밤편지> 전과 후로 나뉜다고까지 할 수 있다.

수단으로써의 음악, 목적으로써의 음악


이후의 행보는 사실 내가 더 덧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은 대중들이 눈으로 보고 느꼈으니 자세히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연기자로서, 가수로서, 그녀는 다양한 무대를 누비며 그야말로 '아티스트'로서의 행보를 이어나갔다. 꾸준히 아이유의 팬으로 보낸 지난 시간들이 충분히 행복했다고 할 만한 활동들이었다. 아이유는 대중이 지닌 그녀에 대한 의구심을 늘 솔직함을 무기로 정면돌파하는 가수였다. 그녀를 칭하는 밈 중 하나인 '국힙원탑'이 왜 생겨났는지 가만 생각해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최근 잠실에서 열린 그녀의 단독 콘서트 <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는 그야말로 그녀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는 공연이자 콘서트 이름 그대로, 아이유의 황금기를 알리는 공연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자신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해 줘서 고맙다'라고 한 표현이 단순히 입에 발린 표현이 아니었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나는 왠지 모르게 이 공연이 아주 슬프게 느껴졌는데, 아이유의 팬임에도 나는 이 공연이 어쩌면 아이유라는 가수의 인생에 있어서 커리어 하이라 불릴만한 공연이 아닐까 하고 불현듯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앞으로도 더 큰 무대에서 더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괜스레 그런 믿음 뒤에 '팬인 내가 그렇게 느꼈다면, 가수인 본인도 어렴풋하게 그런 감정을 느끼진 않았을까'하고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아이유의 음악세계가 <밤편지> 전/후로 나뉜다면, 나는 아이유라는 가수의 행보가 <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 전/후로 또 한 번 나뉘리라 생각한다. 정식 셋리스트에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좋은 날>과 <팔레트>를 넣지 않겠다고 공표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농담처럼 '이젠 서른이라 오빠가 별로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지만, 그건 20대를 가장 솔직하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낸 곡들과의 작별을 통해 '20대의 아이유'와의 안녕을 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유라는 가수에게 음악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수단이자 목적일 것이다. 그녀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곡을 쓰고 가사를 붙이고 노래를 불렀다. 아이유 이전에 이지은이라는 사람을 찾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럼과 동시에 직업으로서의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 그녀에게 음악은 곧 목적이기도 했다.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가수라면 누구나 가졌을 그 가장 순수한 목적. 어쩌면 아이유는 그냥 모든 일에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할 수밖에 없었을 그런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번외 - 내가 아이유를 좋아하는 이유


사실 아이유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기는 참 어렵다. 분명 외모 때문은 아닌데 괜히 그렇게 말하면 '너 뭐 돼?'같은 답변이 돌아올 것 같고, 노래를 좋아해서 그렇다고 말하기엔, 너무 뻔하고.


사실 아이유라는 가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너무 복합적이다. 사람들에게 나는 아이유가 '팥을'을 발음할 때 '파츨'이 아니라 '파틀'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좋다는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바래다'대신 '바라다'라는 표현을 가사에 쓰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데에서(밤편지) 어떤 가수를 좋아하게 됐다면 그건 너무 이상한 이유일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아이유의 저런 모습에서 오는 그녀의 어떤 신중함, 사려 깊음, 인생에 대한 가치관 등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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