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경치'와 '자유'라는 단어가 나오는 대목에서 나는 장 뒤뷔페 Jean Dubuffet와 마르크스를 떠올린다. 뒤뷔페는 사하라에서도 황량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엘 메니아 El Menia (예전 이름은 엘 골레아 El Goléa)를 찾아 그곳에서 자유로운 예술(앵포르멜 Informel)을 만들어냈기 때문. 반면 마르크스는 엘 메니아만큼은 아니지만 꽤 황량한 풍경을 가진 사하라 도시 비스크라 Biskra에서 자유는커녕 건강이 악화되어 곧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다.
엘 메니아 중심도시의 전경. 도시를 벗어나야 제대로 된 '황량'한 경치를 만날 수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허나 이 챕터에서 말하는 황량한 경치는 사하라의 그것처럼 극단적인 것은 아니다. 루소 추모비가 있는 프랑스 파리 북부의 에르므농빌 Ermenonville 정도의 풍경을 황량하다고 표현한 것. 에르므농빌의 늪은 호수가 되고, 베르사유의 늪은 운하로 바뀌게 된다.
베르사유에서는 자연을 지배하고, 에르므농빌에서는 자연을 적응시킨다
에르므농빌의 루소 추모비 (출처: https://www.accr-europe.org)
베르사유 정원에서 운하는 중앙을 차지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자벨 스텡게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연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고, 그 단어를 이용해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과 미신의 영역에서 과학적인 객관성을 갖고 복합적인 환경에 접근했다고 주장한다. 이후 인류는 자연요소들과 에너지, 생물체를 지배하게 되고 자신이 그것들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믿게 된다.
생태학은 이 같은 믿음을 뒤흔들고, 지라르댕은 영국 정원에 영감을 받아 에르므농빌을 만들게 된다. 이 시대에는 이국 취향을 즐기는데, 먼 곳에서 들여온 식물들을 순화시키고 원래 자기 것이 아닌 풍경을 새로 만든다.
뷔트 쇼몽 공원 Parc des buttes chaumonet.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대부분의 요소들은 인공의 것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1780년대 메레빌 Méréville에서는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 쥐앤강의 흐름을 바꾸고, 위베르 로베르 Hubert Robert는 땅을 조작한다. 건축가 겸 정원사에게 맡겨졌던 정원 예술은 정원사 겸 화가의 손으로 넘어가고, 정취 그윽한 정원의 모든 것은 회화의 개념을 빌리기 시작한다. 클레망에 의하면, 시점 그리고 특히 배치가 시축을 중심으로 하는 전망을 대체한다.
메레빌을 그린 회화 (출처: 위키피디아)
앞선 시대에서 자랑스럽게 여겼던 기술적 성과보다 무대 설계가의 예술적 재능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는 시기. 모니크 모제르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들의 시간은 이 버려진 정원에 멈추어선 듯 보이지만 자연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흘러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대의 정원 흐름은 단지 영국에서만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중국 정원의 구성 원칙을 서술한 윌리엄 챔버즈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클레망의 표현대로 '영중英中' 스타일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