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한 우리, 신혼 첫날밤인데... 손도 못 잡아보고 잤다. 난 그야말로 혼절하고 먼저 자버렸고 긴장이 풀렸는지 올리비에는 배탈이 나서 다섯 번도 넘게 화장실을 들락날락…. 다음날 우리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매번 내 주변의 한국 친구들이 제주도에 대한 칭찬을 너무 많이 해서 올리비에는 제주도에 가보고 싶어 했고 우리는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신혼여행이지만 친구들과도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면 좋을 거 같아서 초반 후반부로 나눠 초반부는 파리에서 2년간 친하게 지내오고 여러 번 여행을 같이 다닌 민정 선룡 커플과 함께 다니기로 했다. 제주도에 워낙 갈 곳과 볼 것과 먹을 것이 많다 보니 의식하지 못한 채 세 한국인의 주도하에 우리는 자 여기요, 찍고 여기요, 후다닥 먹 고또 먹고 자 여기요, 다 봤으면 갑시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던 거다. 사실 안 그러자고 했으면서도 한 곳에 머무르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그리 길지 않았고 천천히 한 곳에서 휴가처럼 쉬엄쉬엄 여행해야 하고 사색하는 유럽인의 여행 스타일하고는 너무 안 맞았던 거다. 결국 민정, 선룡 커플이 앞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차 뒷 자석에 앉아 별거도 아닌 일로 언성을 높여 가며 대판 싸운 것이다. 하필 점심시간이 훨씬 넘은 시간인지라 우리는 각자 쳐다도 안 보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거하게 싸운 거 같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른 체 먹었고 밥을 다 먹은 올리비에가 쭈뼛쭈뼛하더니 나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는 거다. 그가 더 소리를 지르고 화를 왕창 냈기에 그가 먼저 사과한 것이고 나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친구 커플이 떠나고 우리 둘이 이틀을 더 머물며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저녁을 먹기 전 들른 ‘월정리’ 해변에서 왜 어제 그렇게 화를 냈느냐고 재차 물으니 그는 모르겠다 라는 것이다 이유 없이 뭔가 스트레스를 받은 건가라고 스스로 자문하는 올리비에... 그래서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문득 드는 어떤 생각이 있어 그에게 말했다. 아마도 당신이 말도 잘 안 통하고 모든 게 다 낯설고 좋으면서도 불편하고 어색하고 그런 기분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더라는 것도 이야기해 주었다. 왜냐하면 나 또한 파리에서 이유 없이 화가 나거나 우울하거나 할 때가 있는데 일종의 향수병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이 다름에서 오는 작은 불편함 들이 쌓이면서 생기는 연쇄 반응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 보았다. 그는 어느 정도 나의 말을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리하여 신혼여행 가서도 여지없이 시원하게 싸워준 나와 올리비에.^^ 앞으로도 우리의 싸움이 없을 거라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결혼식 편지의 소망대로 그저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기술을 하루빨리 터득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한라산의 병풍바위를 오르기로 한 날, 운전해서 영실 탐방로까지 가서 차를 두고 등산을 하려던 계획이었는데 안개가 너무 낀 것이다. 코앞도 보기 힘들 정도였지만 우리는 천천히 포기하지 않고 영실 탐방로에 도착했다. 가을 날씨인데 꽤나 습하고 추운 기운이 엄습했다. 하지만 산 밑으로는 초록색 숲이 펼쳐지고 안개가 많지 않아 보여서 우리는 왕복 3시간 정도의 ‘병풍바위’와 ‘윗세오름’까지 도전해보기로 하고 올라갔다. 초반엔 원만한 등산 코스여서 올라갈 만했고 어느새 병풍바위라고 표시된 곳까지 왔는데 정말 안개 덕분에 아무것도 안보이니 누군가 저 너머에 바다가 있다고 하면 믿을 것이고 마을이 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정말 어쩜 그렇게 막막하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지... 정말 우리의 앞날 같았다. ㅋ 그저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 보았지만 금세 다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한 치 앞이 안보이니 도전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참 마음이 편해졌다. 1초 앞도 못 보는 인생인걸! 오늘처럼 둘이 잘 상의해서 판단하고 두려워말고 재미있게 신나게 씩씩하게 살면 그만인 거다. 뭔가 속이 시원한 신혼 등반이었다. 앞으로 잘 살아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