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는 시간, 일요일 밤 열한시
다큐3일 경리단길 편을 보면서 느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와 수제 맥주집에서 목을 달래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가벼운 동네 산책을 하러 많은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경리단길. 1월 16일 오늘의 다큐3일은 경리단길에서의 3일을 보여주었다.
경리단길에 시장이 하나 있었다.
촬영하는 VJ는 시장 안에서 채소 가게를 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언제까지 채소 가게를 하실거냐고.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일흔이 넘은 할머니는 이렇게 답하셨다.
"매일 나올 거라고. 내일이라도 그만 두라면 그만 둬야겠지만 집에서 놀면 뭐하냐고. 사람들이랑 떠들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채소가게를 할 거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방학동안 지난 며칠간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저 날씨가 춥다고 이불 밖을, 집 밖을 나가는 게 귀찮아서 학교에 일하러 가기 싫어하는 내 모습을 반성했다.
일흔이 넘은 할머니도 매일 같이 시장 골목에 나와 채소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데. 따뜻한 히터 바람을 쐬며 도서관에 새로 들어오는 책들을 정리하고 간단한 심부름을 하거나, 그마저도 일이 없으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채우는 이런 편한 일조차 귀찮다는 핑계로 하기 싫어하는 내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편하고 쉬운 일도 없을 텐데. 이런 꿀알바가 또 어디 있을까.
아직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도 한 번 해보지 않은 내가 이렇게 쉽고 편한 일 조차 하기 싫어한다는 게 웬열. 앞으로 남은 방학동안은 빠지지 말고 열심히 학교 가야지!
그리고 이번에는 꽃집을 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주인 아주머니가 하는 말을 들으며 이번엔 뭔가 또 다른 것을 느꼈다. 아주머니는 말했다.
"정말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고.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었던 그 때가 정말 너무 힘들었다고.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하는 다른 사람들은 다들 집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아직 집이 없다고. 그래도 올해 못 사면 내년엔 살 수 있을 거라고. 정말 열심히 살 거라고. 내가 작년에 열심히 살지 않았던거라면 새해(올해)엔 더 열심히 살 거라고. 난 그저 열심히만 하면 다 될거라고 생각한다고."
꽂집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도 정말 더욱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이번엔 경리단길에서 10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한 미국인 아저씨를 만났다. 미국인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경리단길에서 처음 살때만 해도 동네가 정말 조용하고 좋았다고. 그런데 부쩍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수제 맥주집 등 여러 음식점들이 생겼고 동네가 변하면서 예전의 그 조용함이 사라졌다고. 그래서 그게 아쉽다고. 경리단길 뿐만 아니라 성수동, 한남동, 그리고 신사동 등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도시가 변화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고 도시라면 변화하는 것이 맞지만 경리단길 만큼은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었으면 한다고. 이러한 변화에 대한 어떤 관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방송을 보며 마주한 세 분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었다.
매주 일요일 밤 열한시 즈음 즐겨보는 드라마가 끝나면 재빨리 리모콘을 들어 채널을 돌린다.
다큐3일을 보면서 지난 일주일간의 내 생활을 돌아보고 한 주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는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세상엔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항상 느끼게 된다.
경리단길에서의 3일이 모두 지나가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왔던 리쌍의 노래가 오늘따라 왜이리도 반갑게 들리던지. 플레이리스트에 '리쌍의 변해가네' 를 추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