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이 바뀌는 바람에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겨우 눈이 떠졌다. 늦잠으로 허비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갓생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서 오전 운동을 시작한지 1년째다. 어렸을때는 운동신경이 없어서 달리기도 꼴찌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운동회때 계주선수로 박탈된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테니스 레슨을 받기 위해 비몽사몽 고양이 세수를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집을 나섰다. 운동을 끝내고 나면 국가대표 선수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해지는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과정이 고통스럽다. 아침 일찍 실내 테니스장에 가면 믹스커피를 홀짝 거리고 있는 원장님이 계신다. “현지, 요즘 연습 부족이야” 쪽팔리지만 1년 넘게 배웠는데 게임 한 번 못 나갔다.
헬스, 필라테스, 요가, 배드민턴 등 도전해 본 운동 중에 테니스가 제일 난이도가 높아 실력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레슨비만 한 달에 25만 원인데 괜히 헛돈 쓰는 것 같아서 포기해야하나 내적갈등을 겪었지만, 공을 칠 때 묘한 중독성 때문에 그만두지도 못했다. 원장님이 반대편에서 공을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줄 때, 오른손에 쥔 라켓을 들고 공을 가운데에 맞출 수 있도록 위치를 조절한다. 그리고 무릎을 반쯤 구부린 뒤, 허벅지에 힘주고 스윙한다. 팔과 다리를 휘적거리며 한참을 뜀박질하다 보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고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사람들은 왜 돈을 주고 고통받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머, 손님 운동하고 오셨나 봐요” 카페 사장님이 동경하는 눈빛으로 말을 걸었다. 그 순간만큼은 게으름 피웠던 내가 사라지고 자기 관리 잘하는 여자가 되어, 얼음이 동동 띄워진 커피 한 잔을 들고 거리를 걸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초록색 나뭇잎들이 싱그럽다. 가볍게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땀내 나는 옷을 빨래통에 쇽 집어넣고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뜨끈한 물줄기가 온몸을 적셨다. 잡념과 세상에 찌든 때가 배수구를 타고 시원하게 내려갔다.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내고 수건으로 말아 올려 감쌌다. 화장솜에 스킨을 묻히고 이마부터 시작해 피부결대로 닦아내고 수분크림을 발랐다. 눈썹은 브러시로 비워있는 공간만 살살 채워준다. 말라있던 입술에는 핑크색 틴트를 칠했다. 다 죽어가던 얼굴이 생기가 넘쳤다.
초등학교때 같은반 남자아이에게 1년동안 얼굴로 놀림을 당하고 괴롭힘에 시달린 기억이 있다. 그땐 거울 속에 비친 꼬질꼬질한 모습이 보기싫었다. 거리를 지나갈 때 네일샵에서 관리받는 여자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둔 후 제일 하고싶었던 버킷리스트가 네일아트 였다. 그때부터 한달마다 단골 네일샵을 들린다. 이번달 아트는 어떤게 있는지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앙증맞은 곰돌이, 하트모양, 10개 디자인 중에 선택해야 돼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떤 걸 해야 후회하지 않으려나 인스타 피드를 캡처하고 남자친구에게 카톡으로 골라달라고 보냈다.
남자친구는 다 똑같아 보여서 당황한 눈치였다. 제일 여리여리하고 비싼 디자인을 골랐다. 콧노래를 부르며 예약된 시간에 맞춰 네일아트샵에 갔다. 자란 만큼 잘라주시고 네모나게 다듬어주세요!”
딱, 딱, 딱 지저분한 손톱이 잘려나가고, 큐티클도 떼네니 세 살 아가손처럼 말끔해졌다.
“손님 네일 다 받고 뭐 하세요? ”
“남자친구랑 영화 보러 갈 거예요”
“기분 좋게 데이트 하시겠네요”
네일아트 선생님이랑 잔잔한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어느새 크리스털 큐빅들이 손톱 위에 다소곳이 얹어진 아이돌 손톱이 됐다. 따뜻하게 데워진 수건으로 양손을 닦아내고 핸드크림을 꼼꼼하게 발라주니 잔잔한 꽃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