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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utjina Nov 16. 2022

이토록 사적인 독서모임이라니_Ep.11

피에르 베르제 -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2022년 10월 6일(목) BnJ의 제11회 독서모임.


짙은 회색의 깨끗한 배경, 그 위에 흰 글자가 채워져 있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을 보는 순간 한눈에 반했고, 그 자리에서 이 책을 우리의 책으로 골라 들었다.
그리고, 함께 빠져들었던 표지글에 대한 감상이 잊힐 때쯤 만나 흘러넘치던 감정을 나누었다.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J: 읽고 나서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기억을 좀 더듬어야 할 것 같네요.

 

B: 한 번 해보자고. 어땠어?

 

J: 우리가 이 책을 맨 뒷 표지에 있는 문장에 사로 잡혀서 샀잖아요. 그래서 그 문장의 느낌처럼 문학적인 글이 담긴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초반은 너무 일상적인 일기 형식이어서 아쉬웠어요. 이 책이 생 로랑이 죽은 후에 그의 연인이었던 피에르 베르제가 1년 동안 그에게 편지 형태로 일기를 쓴 글이잖아요. 초반에는 생 로랑이 죽은 것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서 슬프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만 나와서 지루했고, 또 둘의 관계를 잘 모르다 보니깐 장소나 생 로랑의 이야기가 너무 낯설게 느껴져서 흥미롭지 않았어요. 그 시기쯤 내가 언니한테 책이 어떻냐고 물어봤었잖아요.

 
B:  응. 내가 생각했던 거랑 좀 다르다고 했었지.

 

J: 맞아요. 그 멘트가 내가 느끼는 거랑 너무 비슷해서 '우리가 같은 것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조금 더 읽고 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잖아요. 그리고 쭉 편하게 읽고 있다가 생 로랑이 죽은 지 1년 되던 날, 마지막 편지를 쓰고 책이 끝나잖아요. 그때 뒷 표지에 있는 글이 나오는데, 그때 나도 덩달아 감정이 격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마지막 편지로 이 한 권이 완성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나는 이 책이 생 로랑 사후 1년 동안의 편지라는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읽어서 처음에는 감상에 젖었었어. 사랑하는 연인이 죽은 후에 그와의 공간을 정리하면서 한 페이지씩 써 내려가는 글이겠거니 생각해서 감정이 격했거든. 그런데 단순히 사랑에 마지않는 감정뿐만이 아니라, 증오와 회한 같은 감정들도 녹아있잖아. 예를 들면 '네 내면의 가장 지독한 욕망은 자기 파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 '너를 떼어놓았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 그게 우리 삶의 방식이었으니까.' 이런 문장들처럼 말이야.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 원래 그런 것이겠지만, 자기감정에 푹 빠져서 쓴 글을 보면서 애상 어린 감상이 아니라 그때 하지 못했던 자기변명이나 비난을 쓰고 싶었나?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나는 처음이랑 감정이 좀 달랐던 거였어. 물론 결론적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떠나지 않고 옆에서 지켰다는 결론이어서 다시 처음 감정으로 돌아갔지.


J: 마지막에 그런 글을 쓰잖아요. '혹시 편지에서 너에 대한 비난을 느꼈다면, 그건 불평이 아닌 회한일 뿐이라는 걸 알아줘.'

 

B: 그렇지.. 하지만 그것조차 변명처럼 느껴지는 걸... 이런 게 진정 애증이지.

J: 맞아요. 물론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한 사람의 시점만 들은 거니까 둘의 사랑을 이렇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생 로랑이 사랑하기에 너무 힘든 남자였던 것 같긴 해요. 그리고 한 사람 옆에서 변하지 않고 그 사람만 바라보면서 사랑할 수 있다는 것도 되게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특히나 예민하고 까칠한 예술가를 사랑하는 건 쉽지 않잖아요.


B: 이 사람 또한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J: 이 사람 또한 예술가라는 지점에 동의해요. 생 로랑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지만 은연중에 나오는 이 작가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좋았어요.


B: 나도 그게 좋았어. 사실 생 로랑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의 개인감정이기도 하고 그 둘의 히스토리를 우리가 다는 모르니깐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잖아.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술을 대하는 방식이나 태도, 사상, 가치들이 녹아 있는 문장은 오히려 공감이 되더라고. 이 책을 보면서 오히려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졌어. 그래서 책 읽는 동안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계속 찾아봤지. 예술품 수집가이면서 발레단 단장도 했고, 공연도 제작하면서 예술계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더라고. 그래서 내가 만약 이 사람을 알고 있었다면 과거에 전시를 열었을 때 무척 가보고 싶었겠단 생각이 들더라. (그렇지만 이미 늦었지 뭐.)

 
J: 생 로랑이 죽은 후에 피에르 베르제가 수집품 경매를 하잖아요. 그 경매가 '세기의 경매'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경매가 있었는지도 몰랐거든요. 그런데 알고 있었다면 실시간으로 흥미롭게 보면서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남았어요. 그래서 그때 경매를 찾아봤는데 대단한 작품들이 많더라고요.

 
B: 나는 그 물품들이 가득했던, 그들이 지내던 그 공간이 궁금하더라고. 갈 수 있다면 가보고 싶었어. (가봐도 이젠 많이 달라졌겠지만...)

예술작품이 가득했던 바빌론과 저택 @Musée Yves Saint Laurent Paris


J: 이 사람이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B: 나는 오히려 문체가 너무 들쑥 날쑥이라, 확실히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어.

 
J: 글이 매끄럽고 부드럽고 완벽하다 이런 것보다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시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B: 어떤 글은 정말 그랬어. 그런데 어떤 글은 정말 별로였어. 그런데 이건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우리가 원서로 읽은 것이 아니고 그들의 감성으로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어. 근데 찾아보니까 이 사람 되게 기고를 많이 하긴 했더라고.

 
J: 그래서 한 권으로 되어있는 수필 같은 책이 있으면 읽어보고 싶었는데 찾아보니깐 없더라고요. 그게 조금 아쉬웠어요.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책을 몇 권 썼고, 음악가는 아니지만 바이올린을 배워서 악보를 읽어낼 수도 있었지. 하지만 회화나 소묘를 배운 적은 전혀 없었거든. 그럼에도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 또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도, 내가 가장 잘 알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바로 회화였어.
-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중에서...


J: 이 책은 앉은자리에서 쭉 읽는 게 아니라 책장에 꽂아놓고 그때그때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열고 읽는 게 좋은 책 같아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몽글몽글한 감성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마지막 편지에 너무 사로잡혔나?


B: 나는 분위기는 약간 회색빛이었어. 딱 책 표지 같은 느낌?

 
J: 나도 그렇긴 했어요. 그런데 중간중간에 시적으로 느껴지는 좋았던 문구가 있었어요. 그런 것들은 좀 찍어 놨거든요. 오히려 스토리가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시집처럼 생각하면서 읽어서 그런지 문장 문장이 되게 좋았어요.

 

B: 나도 공감해. 그냥 이따금씩 꺼내서 어느 페이지든 상관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는 것.
 

J: 이거 읽고 좋아서 선물도 했어요.
 


J: 마지막 편지 읽을 때 너무 울컥하는 거야.
 
B: 응 중간중간에 되게 울컥했어. 그런데 울컥했다가 비난하고 비판하는 말이 나오면 '그래 이게 현실이지. 이것도 사랑의 감정이고, 이게 어떻게 보면 더 진정성 있는 표현일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라앉았다가. 또 사랑이야기가 나올 때는 울컥했다가. 그렇게 왔다 갔다 했어.

 
J: 나는 마지막 편지 읽을 때 감정이 너무 격해서 한 번에 못 읽고 덮어서 감정을 가다듬고 읽었다가 덮어서 감정을 좀 가다듬고 그러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편지는 뽑아서 붙여놓고 매일매일 읽어도 너무 좋을 것 같은 글이었어요.


B: 마지막 편지 때문에 우리가 이 책을 산 거잖아.
 
J: 그 마지막 편지를 기점으로 또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그 마지막 편지를 쓰고 모든 감정을 탁 털어버린 기분이어서 그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내가 이 사람의 입장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 다른 타인이 또 끼어들었을 때, 그 가족들이랑도 계속 연락하면서 관계를 이어가잖아. 그리고 나중에 죽고 나서 함께한 추억들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담담하게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나라면 못할 것 같아.


우리를 사로잡았던 뒷 표지


J: 그들의 안목이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를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사람들의 안목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유명한 작품도 수집했지만, 유명하지 않은 작품 중에 아름다운 작품도 많이 수집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대다수의 작품이 그때가 아니었더라도 굉장히 훌륭한 평을 받는 작품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옛날에 패션계에 종사하는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거든. '나는 명품을 구매할 때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가치 때문에 비싼 값을 주고 구매한다.'라고 했거든. 여성을 치마에서부터 해서 해방시키고, 어떤 가방을 만들어서 사회적인 이슈를 이끌어내는 것처럼 말이야. 근데 나는 이 둘이 수집하는 행위가 그런 것처럼 보였어. 내면에 있는 어떤 가치를 발견해서 수집하는 느낌? 그래서 앤디 워홀의 작품을 초기에 사들일 때도 그런 느낌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대단하더라고.

 
J: 우리가 어떤 한 시대의 예술가를 생각하면 그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지만 다 개별적으로 생각하게 되잖아요. 알고 보면 그들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그걸 미처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하는 거죠. 나는 이거를 읽으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다 개별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얽히고설켰던 관계라는 걸 알게 되니까 그것도 되게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나 봐요. 역사는 길고 그 안의 인물이나 사건이 굉장히 많은데, 도대체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이 알아야 할까 이 사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죠.


B: 맞아. 우린 아직 갈 길이 멀었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독서모임 열심히 하자.

 
J: 좋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참 잘 선택한 거 같아요. 우리가 여태까지 선택했던 책들이랑 결이 좀 다른 책이었어요.

 
B: 그간 우리가 독서모임을 통해서 에세이를 여러 번 접했잖아. 그런데 만족한 에세이가 없었는데, 에세이스러운 에세이었던 것 같아.  

 


B&J의 지극히 사적인 평점

B: 문장력 2점 + 구성력 2점 + 오락성 1.5점 + 보너스 1점 = 총 6.5점

J: 문장력 2.4점 + 구성력 1점 + 오락성 2점 + 보너스 1점  = 총 6.4점


함께 보면 좋을 작품 추천!

B: 이중섭 - 이중섭 편지 : 연인을 향한 편지라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것.
J:  Chet Baker 'Chet for Lover' :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서정적인 앨범

* 이 글은 B의 브런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bonaw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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