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사주를 볼 때가 있다. 아니 꽤 자주 운명을 점쳐보며 지금 가는 길과 선택에 관한 확신을 얻으려 했다. 구태여 다른 이에게 답을 구한 건 겪어보지 못한 미래의 불안을 능숙하게 운용하는 것에 여전히 서툴다는 뜻일 거다.
역술인은 이곳에 오는 많은 이들이 각자 듣고 싶은 필답을 가슴에 품고 온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닌 연월일시에 따른 생애 주기와 운의 흐름에 대해 읊어줄 뿐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위안을 얻고 싶었던 마음은 동요했다. 내가 그간 사주나 타로를 봤던 건 돈을 내고 원하는 운명의 행로와 답을 이야기해 줄 사람을 매수하려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숨겨온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대개 나를 괴롭히는 건 통제할 수 없는 시간과 미래, 인연에 대한 문제였다. 어쩌면 난 막연한 말에 기대어 언젠가 올지도 모를 요행수를 바랐던 게 아닐까.
논리적 이유와 타당한 귀착점을 찾을 수 없는 조언 속에서 바랐던 소망은 평생 작가로 사는 것이었다. 꾸준한 노력을 들이면 지지부진했던 삶의 질곡을 넘기고 속개되듯 가야 할 길을 멈추지 않고 이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앞으로도 책을 쓸 수 있기를, 누군가 나의 책을 읽고 그다음 내가 할 이야기를 기다릴 거라는 확신으로 멈추지 않고 기록하는 미래를 그렸다. 그러나 책은 한번 내는 건 쉽더라도 두 번, 세 번 계속 내는 일이 더 어렵다. 비단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글쓰기뿐만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깊은 관계를 맺고, 마음을 여는 게 어려워지듯 경험이 누적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능숙해지진 않았다. 문학상을 받거나, 주목받으며 데뷔했던 작가 중 더는 차기작 소식이 없는 이들도 많다. 찬란한 재능과 필력을 가진 작가들에 비한다면 내 글은 자투리 천을 이어 붙인 듯 초라하다.
그럼에도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 나가는 것임을 알고부터는 내가 만든 것을 너저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건 지금의 글이 마지막이 아니며 다음, 또 그다음 쓰게 될 글이 좀 더 나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난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것을 만들려고 애쓴다. 더는 새로운 책으로 대중 앞에 서지 않고 침묵하는 작가들의 많은 사연을 헤아리려 애쓰며 부디 지금 쓰는 글이 마지막 책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상담이 마무리될 때쯤 역술인은 말했다.
"성취의 영역에 관심이 많은 당신은 성공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무관 사주예요. 한 번에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하거나 지지부진하게 오래 끌며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어요. 그 끝에 결과를 내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기준에 상응하지 않아 실망할 수도 있고요. 34살에 대운이 바뀌는데, 경쟁자들에게 시달리는 사주라서 이루고 싶은 욕망에 비해 결과가 부진하고 여기저기 치일 거예요. 원하는 만큼 작가로 성공할 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죠."
역술인의 건조한 답에 힘이 쭉 빠진 난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네요."라고 뇌까렸다.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어차피 제가 뭐라고 말하든 계속 쓰실 것을 알고 있어요.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는 끈기도 재능이에요. 그러니 버티세요.
당신은 본인이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있으니 그대로 정진하면 됩니다."
허황한 기대를 부여하거나 뜬구름 잡는 위로를 더 하지 않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의 짐을 해소하는 상담은 아니었지만 결국 내가 길러야 하는 건 계속 써나가는 글쓰기의 근력이 아닌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대화였다.
버티는 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미련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에, 미래에 붙들려 정신 팔린 집중력을
다시 현재로 돌리고 글을 써야겠노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