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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니야 Sep 12. 2024

안부를 물어주세요



걷기 좋은 밤이면 불쑥 전화해서 대화를 나누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연락의 이유나 용건 대신 “오늘 하루는 어땠어?”라고 물었다. 당시의 난 그 말이 멀리 있는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다정한 안부로 느껴졌다.

그 말 뒤에는 서로의 일상에 대한 특별한 것 없는 담화가 잔잔한 음악처럼 이어졌다. 그녀와의 연락은 외로움에 마비된 내면과 찌든 일상의 여독을 풀어주는 데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이젠 친구와 안부를 묻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그때의 대화를 떠올린다. 산발적 말들만 오가는 관계에 진력이 날 땐 특히나 그리워진다. 내면을 길어 올리는 따듯한 수다는 꽉 막힌 숨통을 트여주는 힘이 있다. 호흡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에는  숨을 가다듬는 듯한 단정한 이야기가 그리워지는 법이다.

그런 말들로 촘촘히 채워졌던 새벽녘의 통화는 이십 대 후반, 지쳐있던 나를 살게 했다.


지친 했던 사이는 멀어지고,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인연도 기진하여 서서히 맥을 다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주었던 안부의 말을 시간을 들여 숙성한 버터를  아껴 먹듯 떠올린다. 누군가의 안위에 관심을 주는 일이 거의 없는 요즘, 선뜻 건네는 안부가 그리울 땐 내가 먼저 용건 없는 전화를 한다. 몇 년 전 친구가 그러했듯  난 가까운 이들에게 부러 묻는다. 별 일 없이 오늘을 잘 보냈느냐고.

 '너를 이만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지 마.'라고 말해주는 듯한 연락은 삶을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한다.  힘든 티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던  하루를 보듬어주는 한마디,  그 말을 건넬 수 있는 여유가 몇 년 전보다는 생긴 것 같다.  앞으로도 난 기꺼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촘촘한 관계를 삶의 가장 안쪽에  소중히 비치해 두고 싶다.  그들의 한 마디가 메마른 하루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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