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시절부터 읽고 쓰는 일을 사랑했다. 당시에 난 스케치북을 반절로 접어 동화책을 만들고 수업 시간에는 공책 뒷면에 소설을 써 내려갔다. 직장을 다닐 적에도 글쓰기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퇴근 후 노트북에 띄워 둔 창백한 흰 페이지를 검은 글씨로 촘촘하게 채웠다. 그 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단어와 문장으로 엮은 것이었다.
당시에 이루지 못한 꿈은 전염병처럼 번져 자신을 쓸모없는 잡동사니로 느끼게 했다. 성취가 직결되어야 할 미래에 원하는 바를 형상화하지 못한 건 용납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부정적이었던 예측과 달리 난 지금 작가로 살고 있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모습을 본다면 꿈을 성취한 것에 기뻐할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원하는 글을 쓰게 된 지금 작가가 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장담하던 나는 사라지고, 또 다른 결핍에 목말라 있다. 원고 작업을 하면서도 미래는 불안하고, 기대한 것보다 결과가 좋지 못하면 자괴감이 이어졌다.
되돌아보면 나는 내가 가진 것보다 훨씬 근사한 것을 거머쥐고 싶어 했다. 이처럼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은
내면을 무기력한 패잔병으로 만든다. 꿈과 성취욕을 불태우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이룬 성과와 삶의 형태에
만족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내면의 탄탄한 울타리가 되어줄 만족감이 부족하면 부정적인 상념에 휩쓸리기 쉽다. 설령 내가 바랐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과정 안에서 배움을 얻고, 나만의 의미를 정의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춰야만 일상의 기쁨이 꺼지지 않는다.
결과에 대한 높은 기대를 허물고 마음의 여유를 두는 건 어떨까. 약간의 틈바구니가 있다면, 깊은 사유와 의미 있는 배움이 찬란한 햇빛과 바람처럼 가슴속을 오가며 내 안을 환기시켜 줄 테니까.